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책장 한 쪽에 <파이 이야기>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제목만으로는 그리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려 꺼내 보았다. 표지에 파란 바다와 하얗고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배 주위로는 상어와 물고기가 맴돌고 있었고, 선상에는 커다란 호랑이와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누군가가 그려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읽어나간 이야기는 이랬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주인공 파이의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동물을 팔기 위해 대양을 건너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만다. 이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파이뿐이었고, 하이애나와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호랑이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후 태평양을 표류하는 가운데 약육강식에 따라 호랑이만 남아 파이와 생사의 기로를 함께하게 된다. 배고픈 뱅골호랑이와 단 둘이 작은 보트에 타고 있는 소년.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고, 끝내는 살려낸 것이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직업은 해양과학자이다. 그의 주된 활동처는 연구실이 아닌 '바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와, 바다다!"의 그 바다가 아니라 저 너머의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 <바다 위의 과학자>는 저자가 인도양에서 이사부호를 타고 탐사를 하던 도중 쓰여진 책이다. 길고 짧은 승선 조사 중에는 출퇴근이 따로 없다. 떄문에 항상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며 말 그대로 운명까지 같이 한다. 잠시도 멈춤이 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서로를 향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무장한 동지애가 얼마나 끈끈할 지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