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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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책장 한 쪽에 <파이 이야기>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제목만으로는 그리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려 꺼내 보았다. 표지에 파란 바다와 하얗고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배 주위로는 상어와 물고기가 맴돌고 있었고, 선상에는 커다란 호랑이와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누군가가 그려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읽어나간 이야기는 이랬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주인공 파이의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동물을 팔기 위해 대양을 건너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만다. 이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파이뿐이었고, 하이애나와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호랑이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후 태평양을 표류하는 가운데 약육강식에 따라 호랑이만 남아 파이와 생사의 기로를 함께하게 된다. 배고픈 뱅골호랑이와 단 둘이 작은 보트에 타고 있는 소년.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고, 끝내는 살려낸 것이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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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해양과학자이다. 그의 주된 활동처는 연구실이 아닌 '바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와, 바다다!"의 그 바다가 아니라 저 너머의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 <바다 위의 과학자>는 저자가 인도양에서 이사부호를 타고 탐사를 하던 도중 쓰여진 책이다. 길고 짧은 승선 조사 중에는 출퇴근이 따로 없다. 떄문에 항상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며 말 그대로 운명까지 같이 한다. 잠시도 멈춤이 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서로를 향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무장한 동지애가 얼마나 끈끈할 지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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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비치는 잔잔한 달빛의 잔상은 어찌나 환상적인지. 그 어떤 예술가가 와도 그 아름다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그려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눈에 잘 담아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갑판에 한참을 누워 있곤 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세상의 일들이 멀게 느껴지고, 나와 세상에 관대해지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만 같다.

바다 위의 과학자,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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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목숨이 위태로웠던 탐사 일지도 인상적이었지만 오직 배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일들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2013년 저자가 독일 연구선 메테오어호에 승선했을 때의 일이다. 배가 한 번 출항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다양한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때는 유럽의 여러 나라 연구원들과 함께였다. 그 중 독일팀의 학생 연구원인 S씨는 저자의 룸메이트였다. 저자보다 최소 20cm는 더 크고 매우 훤칠했던 이 청년이 승선 내내 가장 즐겼던 취미는 주갑판보다 두세 층이나 더 높이 위치해서 바람이 꽤 부는 상갑판에 올라가 기둥에 해먹을 걸어두고 수영복 차림으로 음악을 들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야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저자는, S씨를 보며 자신감을 얻어 연구선 주갑판의 중앙부에 있는 대형 수조에서 수영을 즐기게 되었다. 열대 대서양의 따사로운 햇살, 파도에 흔들리는 연구선과 풀장의 또 다른 파도를 타면서 하는 물놀이. 물놀이를 하다 지친 학자들이 큰 타올을 나무 갑판 바닥에 깔고 누워서 발끝에 걸리는 해와 바다를 내려보며 몸을 말리는 모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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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힐링에 진심인 유럽인들과의 일화는 더 있다. 그들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만들어서까지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정도로 파티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독일 뮌헨에서는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 축제가 열린다. 이 기간 인도양의 어느 한 배 위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연상케 하는 작은 램프들로 까만 밤 선박 전체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갑판에 설치한 거대한 앰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 쪽에 차린 야외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맥주와 바비큐를 즐겼다. 열대 바다 위를 달리는 선상에서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해 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각종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즐거운 파티라니.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드레스와 신사복을 입고 댄스파티까지 벌였다는 부분에서는 당장 짐을 챙겨 배 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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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양학자니까 '인생사 모두 파도'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어울리겠다. 마루가 있으면 골이 있고, 폭풍이 치면 해일이 일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이보다 고요할 수가 없는 바다는, 널리 쓰이는 말처럼 인생을 닮았다.

바다 위의 과학자,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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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해양학자로 살며 삶의 많은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낸 저자가 전하는 낭만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출항 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 졸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저자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니 더욱 뭉클해졌다. 이에 저자는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오히려 애틋함이 커지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가 육지에 발 디디고 종종거리며 사는 것도, 바다 위를 출렁거리며 떠다니는 사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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