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온다 리쿠 지음, 이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품절



이러니저러니 해도 봄이다. 길고 무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맞이한 온다리쿠의 <스프링>은 봄 기운을 맞이하기에 알맞았다. 먼저 겨우내 움츠려있던 생명들이 깨어나고 싹터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듯한 표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붓의 터치를 따라가다 보니 '누군가'를 발견했다. 뒷모습의 그는 왼 손은 사선으로 아래쪽을, 오른손은 반대로 위쪽을 향해 뻗고 있다. 무엇을 하려던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빈약한 상상력을 나무라며 책장을 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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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에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만 안무가에게 춤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그에게는 우연찮게 춤이 수단이었을 뿐,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또 다른 수단이 되어 목적을 이룰 것이다.

스프링, 55쪽

요로즈 하루.

누군가는 그를 '할'이라 부른다. 또 누군가는 '알', '하루'라고도 부른다. 발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천재'라 칭할 것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 보통과는 다른 질감, 갸냘프지는 않고 굵은 뼈대로 낭창낭창하게 서 있는 하루의 모습은 스프링을 연상케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하루의 존재가 궁금했다. 여러 시선으로 그를 그려내고 있지만 특히 절친인 준의 시점이 더욱 아리송했다. 준 역시 말한다. 지금껏 하루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든 녀석을 말로 표현해 보려 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끙끙대며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고. 그래, 한 마디로 하루는 좀 이상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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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형태'를 찾는 하루는 분명 능력자다. 난다 긴다하는 유망주 사이에서도 그는 뾰족 튀어나왔다. 급기야 그는 그저 춤을 추는 것에 그치지 못하고 안무를 짜기 시작한다. 그것도 주인공에 딱 맞는,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안무를. 그렇게 시작된 것이 하루와 준의 <야누스>이다.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로마 신화 속 문의 수호신. 둘은 무대 위에서 등을 마주한 채 섰지만 한 번도 마주서는 일 없이 끝까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준은 <야누스>가 차후에도 공연이 되는 작품이 되길 바랐지만 하루는 달랐다. 초연으로 끝나도 좋으니 하루와 준 단 둘만의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열다섯 살 여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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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이치? 운명? 뭐라도 불러도 상관없어. 아마 너희들은 따로 따로라도 언젠가는 나타났겠지만, 둘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데 의미가 있지.

스프링, 116쪽

하루와 준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조차 그들의 관계를 딱 잘라 정의내리지 못한다. 분명 두 사람이 어디든 함께 있으면 서로가 의식하든 아니든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라이벌 의식이나 보완, 흔하디 흔한 운명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때마침 우연히 그 곳에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준의 말에 의하면 문자 그대로 서로를 본 것이다. 준은 하루를 찾아내어 보았고, 하루는 준을 찾아내어 보았다. 찾아내어 보지 않았다면 흥미를 가지는 일도 없었을 테고, 하루가 준에게 '첫 안무'를 짜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만났고, 접촉했고, 뛰어올랐다. 서로가 서로를 스프링보드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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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숙제처럼 이 책의 독후감을 쓴다면,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지 전에 나부터 누군가를 찾아내어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라고 쓰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스프링보드를 밟고 뛰어올라 우리만의 무대에 서서 갈채와 환호성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주변부터 둘러봐야겠다. '그'는 이미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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