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3개월이 아니라 3년, 누군가에게는 30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 사실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최고의 공부 비결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읽고 쓰며, 누군가는 읽지도 쓰지도 않는다. 26년차 독서 교육 전문가인 김수미 선생님은 12세 이후 '공부 포텐'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습관'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 할 때, 외출 후 손을 씻을 때, 화창한 주말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결심'한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들은 어떠한 흐름의 물길을 거슬러 바꿀 필요 없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흐름으로 행해진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몸이 저절로 행동하고 있는 것. 이 '습관'이 바로 대치동에서 재원생 5000명, 대기자 15000명이라는 위엄을 떨치고 있는 '논술 화랑'의 핵심 교육법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지내도록 돕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일단 집안에 마트에서 파는 장난감은 최소화하고, 책을 읽어주고 읽어주고 또 읽어줬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책, <곰 사냥을 떠나자>.
곰 잡으러 간다.
큰 곰 잡으러 간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린 하나도 안 무서워.
어라! 강이잖아!
깊고 차가운 강물.
그 위로 넘어갈 수 없네.
그 밑으로 지나갈 수 없네.
아, 아니지!
강물을 헤엄쳐 건너면 되잖아!
다음 장면에서 엄마, 아빠와 세 아이, 그리고 강아지는 곰 사냥에 대한 부푼 기대를 한 가득 품은 채 강을 건넌다. 이후로도 숲, 진흙탕, 눈보라 등 누군가는 곰 사냥을 포기할만한 근사한 핑계 거리를 만나지만 '뚫고, 밟고, 헤치고'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동굴에서 곰을 만난다. 커다란 곰과 마주친 가족 각자의 표정과 몸짓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 장면부터가 이 책의 묘미다. 가족들은 반대로 곰의 사냥감이 되어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도망친다. 그 모습을 보고 들으며 히죽히죽대던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나는 최고의 동화 구연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맘 때 아이들은 흥미있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랐다. 진짜 있는 그대로, <곰 사냥을 떠나자>를 200번은 읽었을 거다. 첫째때도, 둘째 때도. '오늘의 장면'은 매일 달랐는데, 한 쪽을 열 번, 스무 번 넘게 읽은 날도 허다하다. 매번 그만 읽고 다음 장으로 넘기자며 지쳐 떨어져 나간 건 내 쪽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큰 선심을 쓰듯 책장을 넘기며 한 마디 했다. "네, 그럼 이따가 또 읽어요."
그렇게 자란 첫째 아이가 김수미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시환이와 닮아 있다. 시환이는 활자 중독 수준의 독서광이다. 선생님과 엄마의 상담이 길어지자 자꾸 보채던 시환이에게 저자는 가까이에 있던 <말의 미소>라는 책을 건네 준다. 그랬더니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책을 다 읽었다고 돌아왔다. 시환이의 독서력 잘 알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20분 만에 읽을 수 있는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지루한 기다림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우기는 아이의 태도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기 나오는 말 이름이 뭐야?"
"비르 아켕이요."
"어른들이 시위를 한 이유가 뭐지?"
"낙농 할당제 때문에요."
낯선 발음 때문에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이름 문제를 쉽게 맞히는 걸 보고 저자는 다소 치졸한 마음을 품는다.
"그럼 백작 이름은 뭐야?"
<말의 미소>에서 '드빌셰즈' 백작은 주요 인물도 아니거니와 그 이름도 스치듯 몇 번 지나간다. 보다시피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이름이지만 시환이는 단번에 정확히 백작의 이름을 말했다. 아이들의 독서서 시간, 아무 말 안 하면 주구장창 만화책만 들여다 보는 것이 부글부글 끓어 한 번씩 줄글 책을 적극 권장할 때가 있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듯 골고루 읽으라는 의미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 보면 또 만화책을 들고 있다. 내가 권해준 책을 벌써 다 읽고 만화책을 보는 거라는 뻔뻔함에 거짓말하는 나쁜 버릇을 고쳐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단순 독후 문제와 나름 심도 있는 문제까지 술술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곧 할 말을 잃고 돌아선다.
독서가가 되던지, 습관을 만들던지, 성적 초격차를 만들던지 일단 시작은 책을 좋아해야 한다. 좋아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독서에 대한 흥미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결국은 또 사랑이다. 훗날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언젠가 내가 곁에 없어도 엄마 냄새와 목소리, 다정한 손길을 기억하며 책장을 넘기는 독서가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