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위한 명심보감 필사 노트
권희린 지음 / 생각학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 시간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과 함께한 저자의 필사 수업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지각한 학생에게 벌칙으로 <명심보감>의 한 구절 따라 쓰기를 시켰다. 무심히 옮겨 적던 어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말이 저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

​

선생님, 이거 옛날 이야기 같지 않아요.

그냥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 같은데요?

​

그 순간 낡은 책장에 갇혀 있는 고전이 교과서 속 글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아이들의 삶과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명심보감>을 처음 접한 아이들의 눈빛은 저자의 의지와는 달리 의문과 혼란으로 뒤섞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험에 나오는 정답 대신 삶을 관통하는 질문에 중심을 두고 필사를 이어가자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은 <명심보감>의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일상에 연결했고, 미래를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

​

​

착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향기가 나는 줄도 모르게 되고

결국 그 향기에 물들어 나도 그렇게 변하게 된다.

공자가어, 육본

사춘기를 위한 명심보감 필사 노프, 24쪽

​

​

​

요즘 '예쁜 말'의 전염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하려 노력했지만, 나의 미성숙함과 야생 동물같은 아이들과의 마찰로 인해 말이 거칠어 지고 있다. 하루에 열 두 번도 넘게 말을 아끼자, 조심하자, 후회할 말은 시작도 하지 말자 다짐해 보지만 한 번 잘못 들인 말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며칠 전 두 아이가 여느 때처럼 사소한 신경전을 시작했다. 수위가 점점 높아지더니 이내 공격적인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의 다툼에 끼어들지 않는데 그날은 아이들의 말이 참 거슬렸다. 그리고 들을수록 많이 부끄러웠다. 최근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말투와 태도를 닮아가게 된다.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특별히 결심해서라기보다 보고 들은 대로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명심보감>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난초에 비유했다. 그 향기가 은은해서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그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옷과 마음에 자연스레 그 향이 밴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랍시고, 어른이랍시고 가르침을 목적으로 했던 수많은 말들. 그 말에는 어떤 향기와 힘이 있었을까. 이제라도 함께하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힘써봐야겠다.

​

​

​

​

​

​

은혜를 베풀었으면 보답을 바라지 말고,

사람에게 주고 나서 후회하지 말라.

사춘기를 위한 명심보감 필사 노트, 206쪽

​

​

​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를 주고 나면 자연스럽게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문제는 그 기대가 쌓이고 충족되지 못하면 '섭섭함'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저 잠만 잘 자도, 밥만 잘 먹어도, 그저 한 번 웃어만 줘도 고맙고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노력하고 희생하는 만큼 아이들도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았으면 하고 바란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는 그저 학교에 오가는 일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을 제 자리에 앉아 재미도 흥미도 없는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려 애쓰는 일도 꽤나 피곤하다는 것을.

​

돌이켜 보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다. 그런데 가끔 못난 생각이 든다. 나는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아이들을 위해 종종대는데 녀석들이 내 노고를 너무 몰라줄 때, 나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 보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 혼자만 발버둥치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를 제자리로 돌려 세우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다. 아무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 주셨던.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의 방황을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셨던.

이제 내 차례다. 오늘도 세 시간 째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더위를 식힐 음료를 제공하고, 소진된 에너지를 채울 음식을 만들고, 꿀잠을 잘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

​

​

​

<명심보감>을 접할 때마다 이 좋은 글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사자소학과 함께 명심보감을 자주 읽어주곤 했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감동적이다. 아이들이 크고 부터는 필사도 함께 하고 있는데 괴발개발인 글씨를 보면 뾰족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완성도가 아닌 문장을 대하는 태도에 중점을 두고 느릿느릿 이어가보려 한다. 반복적인 느림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깊은 읽기인 정독으로 굳어지길 바라면서.

​

<명심보감>의 명심은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는 뜻이며, '보감'은 보배로운 거울을 의미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명심보감> 읽기와 따라 쓰기를 통해 삶의 갈림길마다 조용히 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랐다. 때로는 문장에 위로받고,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 앞에 멈춰 서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그 모든 시간이, 결국 여러분을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성장시켜줄 테니 말이다. 비록 끝까지 '명신보감'이라 쓰는 아이가 있더라도, 한자를 몰라 그림 그리듯 따라 쓰더라도. 그 모든 서툰 과정은 틀림이 아니라 배움의 일부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ESG 쫌 아는 10대 -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실천 키워드 ㅣ 사회 쫌 아는 십대 22
허정림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실천 키워드, ESG.

역사 공부를 통해 우리 이전에 살던 조상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가끔 다음 세대가 있다는 것은 잊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잠시 머물다 갈 뿐, 지구는 지속된다는 것을 말이다.

​

​

​

​

ESG는 기업과 국가가 얼마나 환경을 보호하며 정의롭게 운영되는지 평가하는 성적표인 셈이야. 예전에는 기업의 성적을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나?'로 판단했어. 하지만 이제는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어. 환경과 사람과 조직을 나쁘게 하는 기업은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게 된 거야.

ESG 쫌 아는 10대, 27쪽

​

간단히 말하자면 양보다 질이라는 것이다. 뭘 먹든 배만 부르면 되는 게 아니라 적게 먹더라도 무엇을,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독일 기업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폭스바겐은 차에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친환경 차인 척 속여왔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기업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주가도 폭락했으며 수십 조원의 벌금까지 포함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미국 기업 애플은 공장 뿐 아니라 부품을 만드는 협력 업체에도 ESG 성적표를 요구한다. 탄소 배출을 관리하지 않은 협력 업체와는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다. 또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만들 때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

기업과 국가의 ESG 성적표 중 E는 환경으로 지구를 아끼는 마음이다. 회사가 물건을 만들 때 환경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를 기본으로 탄소 배출량, 물 사용량, 쓰레기 배출량 들을 평가한다. 개인이나 가정으로 보면 분리수거를 잘했는지, 물과 전기를 아껴 썼는지를 점수로 매기는 것과 같다.

두 번째로 S는 사회로 모두와 함께하는 마음이다. 기업이 직원, 고객,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한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일한 만큼 정당한 월급을 주고, 안전한 일터를 제공했는지, 고객의 의견을 잘 듣고, 발생한 이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는지 등을 고려한다. 마치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고 서로 잘 지냈는지 살피는 것과 같다.

세 번째로 G는 지배구조로 정직하고 투명한 마음이다. 기업이 거짓말하거나 속임수 없이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했는지 평가한다. 경영진이 뇌물을 받지 않았는지,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정직하게 경영했는지 등을 살핀다. 학교에서 시험볼 때 컨닝하지 않고, 실력으로 정당히 평가받는지, 반장 선거를 공정하게 치렀는지를 점수로 매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항을 평가한 ESG 성적표를 통해 소비자들은 때때로 불매 운동을 펼치고, 돈쭐을 선물한다.

​

​

​

​

푸드마일리지란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이동하는 거리를 뜻해. 이 거리가 길수록 에너지 사용이 늘고 환경오염이 일어나 식품 안전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돼.

ESG 쫌 아는 10대, 57쪽

​

​

운이 좋아 도시를 떠나 농촌 생활을 하고 있다. 덕분에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먹던 식재료들을 직접 길러 먹게 됐다. 토마토, 오이, 상추, 수박, 참외, 고구마, 감자, 호박, 배추, 무 등등. 씨를 심고 물을 주고 가꾸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줄기에 주렁주렁 열린 먹거리들을 수확하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이 아는 중독성이 있다.

"비도 오는데 부추전이나 부쳐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당에 나가서 부추를 슥슥 베어 온다. 그러면 그 부추의 이동 거리는 왕복 20m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석유 같은 에너지 자원이 쓰이지도 않았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식품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뿌리는 방부제나 살충제처럼 해로운 화학 물질을 뒤집어 쓸 필요도 없다.

​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푸드 마일리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식재료 배달 횟수를 줄이거나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또 지구 환경에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며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골라 사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

ESG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모두 ESG 가치를 실천하는 행동이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결심과 실천 경험은 나 뿐 아닌 모두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든든한 초석이 될 것이다.

ESG, 쫌 알고 보니 선한 영향력의 주인공이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시험장에서 바로 써먹는 한자어 문해력 80
김진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과 영어 원서를 읽다 단어에서 막히는 일이 있다. 앞뒤 문맥에 맞춰 유추하고 넘어가도 글의 흐름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단어 하나로 인해 작게는 한 문장, 크게는 한 단락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단어는 징검 다리 역할을 한다. 단어의 진짜 의미를 알아야만 물에 빠지지 않고 강물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

​

​

​

이 80개는단순히 빈도수가 높은 단어가 아닙니다. 지문의 뼈대를 세우고, 문맥의 흐름을 바꾸며, 출제자의 의도를 관통하는 '결정적 어휘'들만 남긴 정예 부대입니다. 두꺼운 어휘 사전 대신 이 얇은 책을 선택한 여러분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압축적이고 강력한 리스트를 완성했습니다.

시험장에서 바로 써먹는 한자어 문해력 80, 7쪽

​

책을 받았을 때 좀 의외이긴 했다. 벽돌책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작고 얇은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한자어의 의미와 쓰임, 이 단어가 시험에 나올 때의 추세를 읽어 보니 저자의 자신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시험의 판도를 바꿔주는 '전략적 문해력'과 세상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교양인의 안목'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글은 사실 단어들의 정교한 논리 게임이다. 이 책을 통해 단어의 어원을 살피고 그 단어가 시험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훈련하다 보면 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자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교복을 입고 시험장에 앉아 있을 때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마주할 법률, 경제, 정치, 예술의 세계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사고의 깊이와 품격 있는 언어를 갖추도록 돕는다.

​

​

​

​

비판 - 옥석을 가려내는 논리의 날카로운 틀

​

논증의 취약점을 파고들듯 내면의 중심을 바로잡는 사람만이 타인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의심과 정교한 검열을 거쳐 남겨진 생각들은, 세상이라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여러분을 구해낼 보호막이 될 것입니다.

시험장에서 바로 써먹는 한자어 문해력 80, 33쪽

​

어원으로 보면 비판은 잘못된 것을 손으로 밀쳐 바로잡고, 칼로 나누듯 시시비비를 명확히 판가름하는 과정이다. 이는 정보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논리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내용의 적절성을 가려내는 '평가적 사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비판은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 뒤에 숨은 논리적 결함을 찾아내어 옥석을 가려내는 분별의 원리인 셈이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순간 중 하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와 마주할 때다. 그의 경력과 아우라에 눈이 부셔 그의 말과 글에 무조건 동조하기 쉽지만 이럴 때야말로 비판이라는 촘촘한 거름망을 들이대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불순물이 제거된 선명한 지식이야말로 타인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보호막이다.

​

​

​

​

​

관조 - 감정에서 물러나 고요한 눈으로 비춤

​

어원으로 본 관조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마음의 조명으로 대상을 환히 비추는 것입니다. 대상을 소유할 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대상이 품은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시험장에서 바로 써먹는 한자어 문해력 80, 62쪽

관조는 대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둔 채 고요한 마음으로 그 참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성숙한 태도이다. 또 황새가 높은 하늘에서 땅 위를 세밀하게 관찰하듯 사사로운 감정에 빠지지 않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시선이다. 동시에 만물을 환히 비추듯 내 마음의 거울로 대상을 투명하게 비추어 보며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길 기다리는 명상의 깊이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도를 닦는 일이다.

​

교과 지문에서 관조는 주로 자연친화적인 시나 수필에서 화자가 대상을 대하는 핵심적인 어조이자 태도로 등장한다. 이때 화자는 어떤 일에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마치 풍경을 묘사하듯 담담하게 진술한다.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되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의지인 셈이다.

​

​

​

이 외에도 거대한 운명에 맞서는 장렬함을 뜻하는 비장, 다 채우지 않아 무한한 뜻이 담긴 여백, 이치의 잣대로 가장 큰 이득을 취하는 합리 등 알찬 한자어로 곳간을 채우다 보면 혹독한 계절도 두렵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담긴 80개의 정예 어휘들은 시험지 위에서는 날카로운 '정답의 열쇠'가 되고, 인생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지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책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든든하다.' 이 책의 한 줄 평으로 알맞은 말이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내가 온라인에 포스팅한 글과 사진을 본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꼭 모네의 그림 같아요."

내가 사진을 찍고 함께 나누고 싶어 포스팅했던 이유와 정확히 일치해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 클로드 모네, 그가 더욱 좋아졌다.

​

​

​

​

다른 계절, 다른 시간, 다른 날씨 속에서 동일한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자, 건초더미는 빛의 산란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

모네, 빛의 순간들, 179쪽

내가 주로 앉는 식탁 의자 옆에는 신문에서 오린 모네의 그림이 붙여져 있다. 그 유명한 수련 연작도 아니고, 해돋이도 아닌 건초더미 그림이다. 혹시 누군가 나에게 그 그림이 왜 좋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

모네는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마음을 빼앗긴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그리고 평화로운 여름을 보내던 어느날 집 근처 벌판에 쌓인 건초더미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붓을 들었다. 파리보다 위도가 높은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보통 7월 말에서 8월 사이에 밀을 수확한다. 베어낸 밀은 탈곡하기 전까지 충분히 건조해야 했기에, 농부들은 비를 피할 짚 지붕을 얹은 거대한 더미를 들판 곳곳에 쌓아 두었다.

그림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리던 색채가 불과 몇 분 만에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단 한 점의 그림으로는 대상의 온전한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모네는 그날부터 여러 개의 캔버스를 들고 나갔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기록하는 대장정, 즉 '연작'의 시작이었다.

건초더미는 매우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채 움직임 없이 고정된 대상이다. 복잡한 세부 묘사가 필요 없는 이 육중한 덩어리는, 역설적으로 그 표면에 내려앉는 빛의 변화를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실험 도구가 되어주었다. 또 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며 수평적 구도가 강조된 화면은 지베르니에 정착하며 삶의 안정을 찾은 모네의 심리적 평온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농부의 아내가 된 지금 나는 이 건초더미 그림에서 풀 냄새를 맡는다. 수확기를 거친 뒤 마른 풀에서 나는 먼지 냄새. 그리고 안심한다. 여름 내내 땡볕 아래서 땀 흘리며 일한 뒤 맛보는 수확의 기쁨과 또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 여전히 지옥철에 낑겨서 집과 직장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었더라면 이런 건초더미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겠지. 떠나길 참 잘했다.

​

​

​

​

​

​

이미 존재하는 자연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빛과 색채를 구현하기 위해 풍경 자체를 설계한 모네는 이제 '창조자로서의 화가'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얻으며 다시금 독보적인 거장의 입지를 다지게 됐다.

모네, 빛의 순간들, 200쪽

​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중 모네에 관한 것이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던 모네는 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곳이 모네가 정착해서 살던 지베르니다.

지베르니에 자택과 정원을 매입한 지 3년 뒤인 1893년, 모네는 집 앞 철길 너머의 부지를 추가로 사들였다. 자신만의 '물의 정원'을 구현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그는 엡트강의 지류인 루강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릎쓰고 당국으로부터 행정 허가를 받아냈다.

​

이후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수련, 녹색의 조화>의 모델이 된 연못이 조성되었다. 당초 모네가 정원에 수련을 심은 것은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수면 위로 펼쳐지는 빛과 색채의 변주가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예술적 이상향이었음을 깨달았다.

​

매일 아침, 모네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정원사는 나룻배를 타고 연못으로 나가 수면 위의 낙엽과 부드러운 천으로 수련 잎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아내며 식물 본연의 선명한 색깔이 드러나도록 관리했다. 당시 물의 정원 바로 옆으로 루앙과 지베르니를 잇는 철길이 지나고 있었는데,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검은 석탄 연기가 수시로 정원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 회색 먼지가 빛의 반사를 방해하고, 색의 순도를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방해 요소였는데 빛과 색의 관계를 추적하는 모네에게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

클로드 모네는 아마 앞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일 것이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환히 밝히는 찬란한 빛의 예술인 그의 작품 어디에도 모네가 평생토록 짊어졌던 지독한 가난과 고통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빈곤이라는 현실 앞에 미적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그 누구보다 철저히 경계했기 때문이다.

​

건초더미를 그리기 위해 매일 그 시간 그 자리를 지켰을 모네를 생각하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한 남자는 13년 동안 아침마다 사진을 찍었다. 배경은 같지만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매일 다르다. 누군가에겐 지겨운 반복일 뿐이겠지만 어떤 이에겐 매번 경이로운 순간이 될 수 있다니,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승인율 99.9% 움직이는 이모티콘 만들기 with 프로크리에이트 - 국내 최다 이모티콘 승인 작가 씨엠제이가 알려주는
씨엠제이(최민정) 지음 / 한빛미디어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해마다 사라지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모티콘 작가가 후자 중의 하나다.

이모티콘이 등장과 동시에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아마 백 마디 말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나 사랑해? 나 사랑하냐고?"라며 압박해 오는 연인에게 영혼 없는 일자 눈과 일자 입을 한 캐릭터가 두 팔 벌려 사랑한다고 외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간 다가오는 여름 휴가와 길게 봐서는 크리스마스까지 혼자 보낼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

​

​

​

​

너무 정교하고 잘 그려진 그림보다는 연습장에 휘갈겨 그린 듯한 투박하고 미완성된 느낌의 그림체가 오히려 힙하고 개성 있는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승인율 99.9% 움직이는 이모티콘 만들기 with 프로크리에이트, 29쪽

​

이모티콘의 가장 큰 장벽은 뭐니뭐니 해도 그림이다.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다. 하지만 대세는 다르다. 얼마 전부터 대충 그린 듯한 이모티콘이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도구를 쫙 깔아놓고 각 잡고 앉아 손을 벌벌 떨며 시작하는 것은 요즘 세대를 거스른다. 막 그린 그림체는 캐릭터에 자유롭고 솔직한 느낌을 더해주며 이는 MZ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

그림체가 정해졌다면 다음 순서는 메시지 구성하기다. 이모티콘은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때문에 감정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더 큰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시간에도 휴전 합의문에 서명을 하네마네하는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고구마 100개 먹은 기분'이다. 또 이모티콘 한 세트를 제작할 때는 각각의 메시지를 서로 연관성 있는 흐름으로 구성하면 더욱 좋다. '손님이 안 오네'라는 원인이 '심심해 놀아줘'라는 결과가 되고, 짧고 굵게 살자와 가늘고 길게 살자처럼 상반된 구성도 좋다.

​

이모티콘에서 사용하는 말투는 반말, 존댓말, 반존대 등 다양한데 이는 타깃 연령층과 캐릭터의 콘셉트에 따라 유연하게 달라진다. 10~20대는 친근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주로 반말 위주가 많다. 반면 30~40대 이상의 사용자는 공손하고 정제된 표현의 존댓말을 선호한다. 때에 따라서는 하나의 말투만 고집하지 않고, 캐릭터의 상황, 성격, 스토리에 따라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기도 한다.

​

​

​

​

돌이켜보면 제 길은 남들보다 느렸기 때문에 막막하고 불안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승인율 99.9% 움직이는 이모티콘 만들기 with 프로크리에이트, 5쪽

​

​

책날개에 나와 있는 작가의 주요 활동과 수상 이력에 입이 떡 벌어졌었다. 어찌나 많은지 깨알 같은 글씨로 썼는데도 한 면을 빽빽하게 채웠다. 간단히 살펴 보자면 2019년 카카오톡에 이모티콘을 출시한 후로 대구FC 브랜드 이모티콘 제작, 청소년 생명 존중 공모전 이모티콘 심사위원, 넷마루 이모티콘 온라인 클래스 제작, EBS 라디오 정승제의 경청 출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그러는 동안 부산 텍스타일 디자인 대전 특선, 서울 특별시 콘텐츠 공모전 입선, 학교 재난 안전 콘텐츠 공모전 입선, 국립 고궁 박물관 캐릭터 공모전 당선 등 누구보다 부지런히 지냈다.

사실 저자는 이쪽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의류학을 전공하고 운 좋게 대기업 인턴십을 두 번 경험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안정적인 직업인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20대 후반 수능을 다시 치러 교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인생이 그녀를 우연한 기회에 이모티콘이라는 세상으로 이끌었다.

​

지금이야 국내 최다 이모티콘 승인 작가라지만 어디 처음부터 그랬겠나. 작가는 긴 터널을 이만큼 지나온 뒤에 돌아보니 인생이 준비한 선물인지 알 것 같았다.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비록 지금은 서투르고 어색한 낙서일지도 모르지만 그 낙서가 쌓여 훗날 멋진 이모티콘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도전!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