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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합본]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전2권/완결)
원주희 지음 / 로코코 / 2017년 11월
평점 :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원주희, ★★★)
키워드 : 시대물, 제인 에어 모티브, 다정녀, 까칠남, 부자, 미친놈, 글쓰는 여자, 아픈 과거, 복수, 잔잔물
송정연
정연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댁에 얹혀살았다. 외숙부가 세상을 떠난 뒤 외숙모의 구박이 심해지고, 결국 엄 판서댁 딸의 놀이 동무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진정한 친구 홍주를 만나고 글을 익혀, 홍주와의 이름을 합친 '홍연랑' 이름의 소설 작가가 된다. 홍주가 죽은 뒤 과천의 소문난 부잣집에 들어가 글선생이 된다. 여러 소문이 떠도는 집에는 주인인 허 진사는 없고 집안 살림을 챙기는 먼 인척 김씨 부인과 허 진사의 어린 여동생 채희 그리고 채희의 글선생 정연이 머문다. 정연은 연하당이라는 이름의 별당에 머물러 '연하당 아씨'로 불린다. 항시 바깥으로만 떠돌던 허 진사가 돌아오고, 관문동 고택에 봄바람이 살랑인다.
허인우
소과에 합격해 허 진사로 불리는 허인우. 어인 일인지 대과에 응시하지 않고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인우의 삶은 12년 전 일어난 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아버지를 죽게 하고, 여동생을 뛰어내리게 한, 어머니의 원망은 인우의 가슴에 깊이 박혀있다. 복수를 끝내기 전까지 결코 안주하지 않으려 했는데... 처음 봤을 때 다리를 다치게 하더니, 어느 새벽에는 돌로 이마를 찧는다. 글선생이라고 하더니 행동이 귀엽고 시선이 머물러 짓궂게 놀리고 싶은 여자 때문에 마음이 꽃길이다.
작가는 후기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모티브로 한 글이라 밝힌다. <제인 에어>를 읽지 않아 어느 부분이 유사한지는 모르겠으나, 가정교사인 여자와 비밀을 가진 남자라는 설정은 같다. 중간까지는 유사하게 전개되다가 후반은 다르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주인공 둘 다 부모가 없다. 정연은 외숙모의 미움을 받으며 남의 집 놀이 동무로 보내졌다. 쇠락했다고는 하나 양반집 자제인 정연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글쓰는 작가이자 채희의 글선생으로 있는 이유다. 인우는 복수를 위해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돈을 번다. 마포나루에 큰 창고를 소유하고, 광산업에 손을 대며 과천지역 최고의 부자가 된다. 하지만 오늘을 살면서도 과거에 묶인 채 사는 죽은 사람의 인생이다.
남을 미워하기 보다 자신의 길을 가는 정연과 돈을 벌어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인우. 고요한 연못과 퍼붓는 소나기처럼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품으면서 점차 변해간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날뛰던 인우가 하루에 한 모금씩 아픔을 덜어낸다. 분노도 슬픔도 복수도 내려놓는다.
조선시대 배경을 촘촘히 설명한 건 마음에 들었으나, 주인공의 감정이입에는 실패했다. 실제 그 시대에 사는 것처럼 인물이 행동하지만, 이 부분에서 인우가 왜 화가 났는지, 정연은 왜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고백하는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선을 조금 더 세밀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잔잔하다가 인우가 폭주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러다 맥없이 탁 풀어지기도 하고, 다시 위기가 닥치는 등 감정선이 덜컥하는 구간이 존재한다.
조선시대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쇠락한 양반가 여성이 일을 하는 모습이나 여러 세시 풍습, 과천지역이 붓으로 그린 듯 펼쳐진다. 이런 배경을 선호한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