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생 다인이 작가정신 소설향 23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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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짧은 분량에 다양한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루즈하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재미있다. 마치 연작소설을 읽는 듯, 한명의 인물(다인이)을 그려내는 여럿의 화자는,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남들에게서 다 듣게 된다는 면에서 객관적인 기록에 적합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점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80년대를 이어 90년대를 그리기에 적합한 면모를 분명 지니고 있다. 나로서는 이젠 그 이름마저 생소한 '전대협'이나, 이젠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동세대인 나도(사실 그닥 관심도 없었지만) 잘 모르는 '한총련'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이제는 관심조차 갖질 않는 문제다. 그런데 결국 지난 90년대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이 소설을 한 인간의 회상으로 일관했을 시 벌어지기 딱 좋은, 감상적인 회고로 끌고갈 수도 있었던 것을 객관화의 장점을 살렸기에 그 다양한 화자의 입지가 분명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그러한 문제들이 현재, 이 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그렇게 가열찬 학생운동을 벌였던 다인이라는 인물도 나이가 좀더 들어 사회라는 안정된 시스템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듯이, 이 소설을 다 읽고서는 결국 그런 개운찮고 씁쓸한 뒷맛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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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7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손장순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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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은 현재 우리 나라 TV 드라마를 보면 지겹게 볼 수 있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가진 아내가 화자이다. 그녀는 처음엔 남편의 외도가 순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순정적인 중년부인의 태도를 취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게 불리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정신적인 위기를 겪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란 자신의 친구와, 그리고 두 딸, 남편, 그리고 그의 정부인데, 이 소설은 그 인물들의 관계에서 얽혀진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기 형식이라는 것의 묘미는 사실을 다 기록할 수 있다는 것과, 또 자신의 임의로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에 매일 매일 쓰여지는 일기가 아니라, 기록되어진 며칠간의 간격이 소설의 한 형식으로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공백에 따른 축약에 능란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소설은, 대부분의 중년의 가정이 겪을 수 있는 외도라는 문제에 근접해 있으면서 결국 중년의 여성으로서는 도저히 그 위기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그런 비극에 한 여자의 삶이 함몰되지 않길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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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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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소송이라고 한다. 허나 우리 나라에선 심판이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번역이 되어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은 미완성작이다. 허나 완성작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가가 완결된 채로 출간하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미완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중간의 몇 부분이 빠져있을 뿐이라고 가정하고 버젓한 결말을 보면 결국 이 소설은 완성된 하나의 뼈대를 이루고 있기에 완성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카프카가 쓰긴 했지만 친구 막스 브로트가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처음으로 읽는 카프카 문학이었는데, 일단 처음 든 생각은 원제목 그대로 소송에 대한 얘기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ㅡ다만 서른번 째 생일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특이한 점이 없는ㅡ 느닷없이 요제프 K는 어떤 소송에 걸려 체포를 당한다. 허나 어떤 잘못 때문에 기소를 당한 것인지 본인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요제프는 본인이 무죄라고 생각한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 느닷없이 소환을 당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요제프의 편이 되어주질 않는다. 다만 그 죄를 인정하고 가벼운 죄를 받거나, 아니면 계속 판결이 나는 것을 연기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얘기할 뿐이다.

아주 요상한 사회이다. 그렇기에 마치 꿈같은 이야기다. 현실에선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법 집행이 지속되고, 요제프는 조금씩 힘이 빠진다. 부조리한 세계에 결국 지고 마는 것이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을 가질만한 대목이 있다. 그건, 만약 요제프가 죄가 있다면? 이다. 실제로 그가 소송을 당한 걸 알게 되는 30살을 맞는 생일 날 아침 이전에 그가 어떤 죄를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만 생각하기 싫어서 생각을 안하는 것뿐이니라면? 물론 그렇게 되면 이 소설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헌데 만일 그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인텔리에 부르주아의 한 전형으로 볼 수도 있는 요제프야 말로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인 셈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에게 잘못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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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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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전락>은 희곡으로 보자면 모노드라마이다. 물론 그 대화를 하는 상대의 말이 생략되어 있는 셈이지만, 소설의 전부를 주인공 장-바티스트 클라망스의 말로 꾸려가고 있기에 이 소설을 읽고 모노드라마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다.

파리에서 전직 변호사로서 과부와 고아들의 소송을 전담했던 바티스트가 지금은 암스테르담에 와 있다. 그리고 한 술집에서 파리 출신의 여행자인 한 남성을 만나면서 그의 넋두리는 시작된다. 변호사답게 달변의 말솜씨로 독자들을 유린하며 자신의 얘기를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풀어가는 바티스트. 그러나 결국 이 소설에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자신의 도덕적, 사회적 전락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어떤 다리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신고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던 그 순간으로 귀결짓는다. 이는 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한 사내의 타락의 원인을 자신도 제정신이 아닌 채로 쏴버린 총에 맞고 죽은 한 소녀로부터 그의 삶의 어떤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규준이 무너지게 되어버리는.

마찬가지로 바티스트도 그 이후(자살하는 한 사람을 방치한 뒤)의 삶이란 온통 그 기억을 씻지 못한 채 오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음과 다름이 아닌 것이다. 그렇듯 이 소설은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덕목인 도덕성에 대한 존경을 얼핏 내비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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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음에 관하여
함정임 지음 / 이마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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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하찮음에 관하여>는 유려한 미문으로 하찮음에서도 아름다움을 포착하려는ㅡ소설가라기보다는 시인의 가까운ㅡ사물 관찰력이 아낌없이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탐미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는 작가의 감수성이 드러나는 글들과, 남편 김소진을 떠나보내고 아이와 함께 남겨진 그녀의 생활에 대한 궁금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해소가 될만한 삶의 성찰에 대한 글들, 그리고 역시나 문학, 미술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여러 시각들이 섬세한 언어로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다.

이제까지 함정임에 대해서 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느낌이나 감정이란 건 고작, 그녀의 소설 두권을 읽어봤다는 것과, 이대 불문과 출신, 김소진의 아내, 끝으로 인상적인 외모에서 가진 선입견 뿐일 것이다. 특히나 결코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쩐지 불세출의 예술가가 남긴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용모에서 특별함이 느껴진다고 믿어왔기에 그녀의 산문을 읽으며, 남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건 또 한차례의 오해에 불과했다. 어쩌면 강인한 듯한 외모를 지닌 그녀가 이리도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너무 겉모습만을 가지고 따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나의 최근 삶에 대한 반성이랄까. 또한 너무 화려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것에 내 눈이 혹해서 눈을 뜨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을 망각한 채, 찬란한 빛만 비추는 것이면 눈길을 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여튼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감성적인 느낌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를 알게되어 기쁘다. <철도원>을 쓴 아사다 지로의 힘인 '순정'을 눈치챘다는 것만 봐도 그녀는 정말 대단히 좋은 감성을 지녔음이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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