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 작가정신 소설향 5 작가정신 소설향 23
배수아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여자가 철수ㅡ흔하디 흔한 이름일 수 있는, 초등학교시절 교과서에 영희와 함께 너무나도 친숙한ㅡ라는 한 남자와의 소통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다. 구성력이 돋보이는 단편보다는 장편에 어울릴만한 조금은 더딘 속도의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약간의 환상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환상성이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쓰여졌을 당시의 세기말적이고 격변적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 회의가 바탕이 되어 쓰여진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또 하나의 자기가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영화 <12 몽키즈>에서도 나왔던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장 긴박하고 인생의 절정에 놓여진 그 순간을 엿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심리가 드러나 있는 이 장면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유한한 인간 존재가 영원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는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자기 존재의 무한반복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존재를 마주한다는 마지막의 설정을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지금 어느 유령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영화 같은 한 장면을 연상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절대적으로 결백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꾸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원죄를 극복하고(인정하고) 인간이 현실에 단독자적으로 설 수 있을 때, 그 순간이 인간이 실존을 획득하는 순간이 아닐까.

사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배수아의 소설이지만 존재에 대해 심도한 인식을 갖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에 앞으로 주목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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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주스 2005-04-3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는 걸작이예요
10년 전쯤 MBC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소설의 분위기를 1/100도 재현해 내지 못했어요.
박상순이 소설을 쓴다면 바로 배수아가 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