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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 별이 뜨다 - 소설가 방현석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여행
방현석 지음 / 해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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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트남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며있는 많은 역사적인 감정들과의 만남의 기록이다. 현재 이라크에 퍼붓고 있는 화력이 과거 어느 순간엔 베트남을 향해졌었으리라 생각해보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행위가 어떤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는 도발임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여하튼 작가는 꽤나 베트남이라는 곳에 대한 매혹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바바바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정취는 그야말로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백하자니 조금 부끄럽지만 여태까지 나의 머릿속에서도 베트남하면 영화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의 영화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베트남은 남부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그런 정글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찍지도 않은 영화를 두고 베트남전영화라는 말을 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 그 위대한 헐리우드적인 휴머니즘적 관점에 비춰본다면 더군다나.

그림자처럼 사랑하리라. 그리고 사는 동안 진실한 우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사는 자의 몫은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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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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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콜롬비아의 한 집안의 내력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기간ㅡ인간의 생의 한계치인 백년ㅡ동안의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독과 쓸쓸함 등을 견뎌내는 한 집안의 모든 성원들에 대해, 그들과 관계 맺어 결국 일가를 이루게 되는 과정ㅡ생성부터 최고의 번성 그리고 기울어짐까지ㅡ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결부시켜서 한 세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법까지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대 장편 서사에 어울릴만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욕망을 쫓아서 거기에 몸부림치는 과정과, 결국 그 뒤에 모든 삶을 간단한 세공품이나 수의를 만드는 데 소진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과 덧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러 인물들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성격들은 인간의 세계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잘 담고 있는 듯해, 마치 한권으로 읽는 발자크의 [인간희극]같은 느낌도 든다. 인간의 본성인 식욕, 성욕, 수면욕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잘 담겨져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 정도로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한 일가에 빗대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이 소설은 결국 사라진 이야기 혹은 소멸되어야 마땅한 이야기가 되살려진 것이기에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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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주스 2005-04-3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 동시에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소설,
유희 후의 망각, 소설의 본령이 아닐까요?
세상엔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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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인들의 찾을 수 없는 자기 존재에 대한 감각을 찾아보길 권하는 소설로 읽힌다. 윤대녕 특유의(몇권 안 읽어봤지만 느낌상) 단순하고 이미지적인 묘사가 잘 드러나는 이 소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큰 이야기를 가지고 정말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큰 도움을 입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슴벌레라는 곤충을 여지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이미지는 그닥 와닿지 못하지만, 라면만 먹고 사는 여자라든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사이보그 같은 인간들을 제시하면서 진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경계를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플롯으로 꾸며놓고 있다.

남자가 기억을 되찾지 않고 그 상태의 삶을 이어나가며, 가족을 버리고 다시 자신을 돌봐준 키가 작은 여자를 찾는다는 결말이 참으로 처연하면서도 쓸쓸하다.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가며 이 세상을 살기란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처음이기 때문에 얻어지는 매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이 흘러 만약 이런 기술이 발명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기계 앞에 줄을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끝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실명으로 거론될 때(인사동이나 세종문화회관, 덕수궁, 지하철 2호선 시청역 등),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구체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장소를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공간은 어떻게 상상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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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주스 2005-04-3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사가 1990년대의 타이틀로
김소진과 윤대녕 중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면, 당연히 윤대녕이겠죠?
김소진은 죽어버렸잖아요?
결국 살아남은 자는 슬퍼하는 기득권자 ;)
 
비평과 권력 청년에세이 6
권성우 지음 / 소명출판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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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강준만, 김정란 등을 필두로 한창 벌어졌던 비판적 글쓰기에 대하여, 그리고 권력과 비평가의 관계에 대한 논쟁의 기록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있다. 실은 이 논쟁들에 대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바라 흥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일단 비평 또한 하나의 텍스트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한 메타비평에 대해 나 또한 공감을 하는 터라 필자의 생각에 결국 동의를 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실명비판이라는 방법이야말로 한 사람의 논객이 모든 것을 걸고 그 대화, 결투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회피의 태도를 보인 <문학과사회> 동인이나, 그 외의 열린 대화를 진척시키지 못한 다수의 문학계의 인사들에 대해 대화를 위한 손길을 건넨다. 비록 논쟁이라는 것이 본래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극복, 성찰의 과정을 겪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로 보아서 저자 권성우에게서 충실한 지적완성(?)의 추구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문학판에서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 권력에 자기도 모르는 열망을 갖고 있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을 본인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는 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했던 말들과 지켜가고 했던 것들을 꼭 지켰으면 한다.

여하튼 논쟁을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외로운가에 대해, '매혹'과 '비판'이라는 두 개념 속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비평이란 작업에 대해 내 자신도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여기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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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 작가정신 소설향 5 작가정신 소설향 23
배수아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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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철수ㅡ흔하디 흔한 이름일 수 있는, 초등학교시절 교과서에 영희와 함께 너무나도 친숙한ㅡ라는 한 남자와의 소통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다. 구성력이 돋보이는 단편보다는 장편에 어울릴만한 조금은 더딘 속도의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약간의 환상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환상성이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쓰여졌을 당시의 세기말적이고 격변적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 회의가 바탕이 되어 쓰여진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또 하나의 자기가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영화 <12 몽키즈>에서도 나왔던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장 긴박하고 인생의 절정에 놓여진 그 순간을 엿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심리가 드러나 있는 이 장면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유한한 인간 존재가 영원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는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자기 존재의 무한반복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존재를 마주한다는 마지막의 설정을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지금 어느 유령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영화 같은 한 장면을 연상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절대적으로 결백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꾸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원죄를 극복하고(인정하고) 인간이 현실에 단독자적으로 설 수 있을 때, 그 순간이 인간이 실존을 획득하는 순간이 아닐까.

사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배수아의 소설이지만 존재에 대해 심도한 인식을 갖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에 앞으로 주목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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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주스 2005-04-3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는 걸작이예요
10년 전쯤 MBC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소설의 분위기를 1/100도 재현해 내지 못했어요.
박상순이 소설을 쓴다면 바로 배수아가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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