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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을 들여다보니

 

 

                            카르마

 

 

개울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너의 눈속처럼 깊숙이

그 속에 내가 있다.

오랜 여행에 지친

피곤과 외로움에 앞으로 쏠린 얼굴로

깊숙이 숨어든 물고기

어디선가 태어나

어디론가 떠다니다가

그쯤에 나타나

시방 나뭇잎을 쪼고  

돌틈에 얼굴 하나

물 속에 일렁이다가

네가 아니었던가

물 속에 일렁이다가

바람에 꺽여 떨어진 나뭇잎들처럼

물 속에 썩은

작년 한해의 기억을 쪼던

물고기 간데 없고   

물을 꺽어 다른 흐름을 만드는

그곳에 박혀있는 돌 하나 있다.

물고기 간데 없고

 

20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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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김 지하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참으로 이제 가겠다.

손짓해 부르는

저 큰 물결이 손짓해 나를 부르는

망망한 바다

바다로

 

없는것

아득한 바다로 가지 않고는

끝없는 무궁의 바다로 가는 꿈 없이 없는 것

검은 산 하얀 방 저 울음소리 그칠 길

아예 여긴 없는 것

 

나 이제 바다로

창공만큼한

창공보다 더 큰 우주만큼한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만큼한

끝간 데 없는 것 꿈꿈 없이는

작은 벌레의

아주 작은 깨침도 있을 수 없듯

가겠다.

 

나 이제 가겠다.

숱한 저 옛 벗들이

빛 밝은 날 눈무신 물 속의 이어도

일곱 칩 영롱한 낙토의 꿈에 미쳐

가차없이 파멸해 갔듯

여지없이 파멸해 갔듯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백방포에서 가겠다.

무릉계에서 가겠다.

아오지 끝에서부터라도 가겠다

새빨간 동백꽃 한 잎

아직 봉오리일 때

입에 물고만 가겠다

조각배 한 척 없이도

반드시 반드시 이젠 한사코

당신과 함께 가겠다

혼자서 가지 않겠다

 

바다가 소리 질러

나를 부르는 소리 소리, 소리의 이슬

이슬 가득 찬 한 아침에

그 아침에

문득 일어서

우리 그 날 함께 가겠다

살아서 가겠다

아아

삶이 들끓는 바다, 바다 너머

저 가없이 넓고 깊은, 떠나온 생명의 고향

저 까마득한 화엄의 바다

 

가지 않겠다

가지 않겠다

혼자서라면

함께가 아니라면 헤어져서라면

나는 결코 가지 않겠다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이라도

하늘보다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라도

화엄의 바다라도

극락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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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나는

 

                         김 정란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날개와 매미날개에 머무는 햇살과

그 햇살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언젠가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죽어가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과

이제 막 태어나는 어린 생명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될 것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이며 너이며 그들이다.

사랑으로 나는 중심이며 주변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 위에 겸손하게 포개놓는다.

세계, 나의 아들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의 상처 위에

나처럼 아프고 불행한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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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성숙으로 가는 능선을 넘는 것이다. 많을 것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하지만 관계에 소원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관계를 통해서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지만, 관계를 통해 존재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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