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비치 - 상처 받은 영혼들의 파라다이스
케이트 해리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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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은 자들이 머무는 환상의 파라다이스. 모든 것이 완벽하기만한 인터넷상의 가상의 세계, 소울 비치. 파란 하늘, 금빛 모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청록빛 바다. 그 아름다운 공간에 머물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는 어울리지 않게, 잔혹하게 살해 당하거나 자살하거나 의문스런 죽음을 맞이한 젊은 영혼들의 사연. 마치 실재할 것만 같은 소울 비치의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다.

 이야기는 열여섯 살의 앨리스가 언니의 장례식날, 그 죽은 언니로부터 메일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서 노래새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언니 메기. 그녀는 살해당했다. 그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앨리스는 아직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죽은 언니에게서 온 메일은 앨리스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누군가의 못된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니를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언니에게 메일을 보내는 앨리스. 이미 세상에 없는 언니이지만 언니에게 메일을 쓰면서 기분이 나아지던 앨리스에게 또 한 번 언니의 메일이 도착한다. ‘휴양지’ 개념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인 소울 비치로 초대하는 메일이.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의 랩톱 월페이퍼는 언니와 함께 했던 사진이 아니라 앨리스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으로 바뀌어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못된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누군지 모를 이를 비난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낸 앨리스에게 다시 한 번 언니의 메일을 도착한다. 오직 메기만이 부르던 ‘플로리’라는 애칭으로 앨리스를 부르며. 이미 죽은 언니이지만, 죽은 사람에게서 메일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플로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언니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메일의 주인공이 메기임을 확신한 앨리스는 가상의 공간인 소울 비치로 접속한다.

 앨리스의 눈앞에 월페이퍼에서 봤던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이 펼쳐진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보는 광경이건만 마치 실제인 것처럼 인공적인 느낌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해변. 자신의 방에 앉아서 랩톱을 통해 바라보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앨리스는 마치 해변에 와 있는 생생함을 느끼며 드디어 메기의 목소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앨리스는 묻는다. 그녀를 악몽 속에서조차 괴롭히는 질문. 언니를 죽인 사람이 누구이냐고.

메기를 만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 질문은 소울 비치 속 영혼들이 자신의 죽음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가로막힌다. <소울 비치>는 앨리스의 질문처럼 메기를 죽인 범인을 찾는 앨리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 또한 글을 읽어 가면서 메기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추측했다. 죽은 메기의 남자친구로 범인으로 가장 의심 받고 있는 팀이 범인일까, 메기의 친구인 서하라의 남자친구인 에이드리언일까, 아니면 앨리스를 도와주는 컴퓨터광 루이스가 범인일까. 그렇게 메기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지 추리하며 읽어나갔던 <소울 비치>는 예상 밖의 전개를 보여줬다.

 어느새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소울 비치 속 언니의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는 앨리스는 점점 소울 비치 속에 빠져든다. 서로 다른 세계, 컴퓨터가 가로막고 있는 가상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숨결을 느끼고 향기를 느끼고…… 실제인 것만 같은 소울 비치 속에서 메기와 보내는 시간이 더 좋은 앨리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언니를 만나기 위해 소울 비치에 접속한다. 그러면서 남자친구인 로비와도, 친한 친구인 카라라도 멀어지며 현재와 동떨어지기 시작한다. 반면, 언니의 소울 비치 친구이자 이미 죽은 사람인 대니를 사랑하게 되는데…….

소울 비치에서 언니를 만나면서도 소울 비치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풀지 못했던 앨리스는 소울 비치에서 만난 언니의 친구 대니와 하비에르가 실존 인물이자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울 비치가 진짜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첫 만남부터 이끌림을 느꼈던 대니의 살아있을 적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버린 앨리스.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앨리스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대니. 비록 소울 비치라는 공간에서 함께 머물 수 있지만 결코 손을 잡을 수도 입을 맞출 수도 없는 상대와 사랑을 하게 되어버린 앨리스. 과연 그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하면서 더 흥미를 가지고 글을 읽어갔다. 동시에 메기에 이어 앨리스까지 노리는 범인의 정체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까지 여전히 가진 채.

 소울 비치에서 살고 있는―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죽은― 영혼들을 게스트, 그리고 그들의 초대를 통해 방문한 앨리스와 같은 이를 방문자라고 칭한다. 죽은 자에게서 메일을 받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앨리스가 처음에 메일을 보낸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 했듯이. 그렇듯 초대를 받는다고 해서 모두 응하는 것도 아니고 방문한다고 해서 앨리스처럼 오래 그리고 자주 소울 비치에 들르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앨리스의 존재는 소울 비치에 변화를 불러오고, 그들은 희망을 가진다. 어쩌면 앨리스의 존재가 그들을 소울비치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하는.

그런 희망의 첫 단추가 거식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인도 소녀 트리티이다. 트리티는 앨리스가 온 뒤로, 그리고 불꽃놀이를 본 뒤로 소울 비치에 있는 것을 괴로워한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해하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앨리스는 트리티를 위해 트리티의 죽음을 파헤쳐간다. 쉽지 않았지만 루이스의 도움을 통해서 트리티가 거식증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드디어 트리티는 자유를 찾는다.

 <소울 비치>는 앨리스가 트리티의 죽음의 의혹을 풀면서 소울 비치에 머물고 있는 게스트들에게, 그들도 트리티처럼 영원한 안식을 찾아 그곳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3부작의 시작인 <소울 비치>는 여전히 자신의 방에서 랩톱을 통해 소울 비치에 접속하는 앨리스가 그 동안 만질 수도 없었던 대니와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소울 비치>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울 비치. 사후세계를 소울 비치라는 가상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와 접목 시킨 점은 정말 새롭고 흥미로웠다. 사후세계조차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전한 느낌이랄까. 이 외에도 소울 비치와 접속하는 방법이라든지, 생동감 넘치는 소울 비치 속 세상과 마주하는 앨리스의 모습이라든지, 게스트가 방문자를 초대하는 방법 등 설정 하나 하나가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신비롭고 환상적인 소재를 만들어낸 작가의 창의적인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탁월한 심리묘사까지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가상의 공간에서 언니를 만나고 이미 죽은 이를 사랑하게 된 앨리스의 감정은 물론이고, 메기에 이어 앨리스를 다음 타킷으로 삼은 범인의 심리 또한 섬뜩하게 잘 그려졌다. 더불어 사람의 죽음조차 흥미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도.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발산되었던 만큼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을 앞으로의 이야기가 정말 기대된다.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가장 궁금한 메기를 죽인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당연할 것이다. 트리티가 자유를 찾자 소울 비치의 게스트들이 열광하고, 앨리스를 그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점을 봤을 때 어쩌면 앨리스가 메기뿐 아니라 다른 게스트들의 죽음의 의혹까지 밝히지 않을까 하고 예견해본다. 메기의 부름에 앨리스가 응답했듯, 또 다른 방문자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다로 편지를 띄우는 다른 게스트들을 보면 말이다.

 <소울 비치>를 읽으면서 메기를 죽인 범인만큼이나 궁금했던 건 소울 비치는 무엇이며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소울 비치의 바텐더 샘의 말처럼 지상과 영생 사이에 있는 일종의 대기실 같은 림보라고 할 수도 있고, 죽은 자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곳 또는 의혹을 품고 죽은 이들이 그 죽음의 진상을 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아직은 정의 내릴 수 없는 소울 비치에 대한 정체도 밝혀지지 않을까.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소울 비치>가 소울 비치 속 영혼들의 죽음의 의혹을 풀어가는 것뿐 아니라 로맨스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앨리스와 대니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도 궁금하다. 만질 수도 같이 있을 수도 없었던 대니와 드디어 접촉할 수 있게된 만큼 그들의 사랑도 더 깊어지겠지만,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그 끝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에, 앨리스와 대니의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미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신비로운 곳 소울 비치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앨리스의 생과 죽음을 넘나드는 여행이 어떻게 마침표를 찍을지 기다려진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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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지음, 김지안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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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7일.

145년 전 병인양요로 인해 프랑스에 강탈당했던 297권의 조선왕실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프랑스에 귀속된 채 대여의 형식이라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먼 타국에서 평생을 바치며 우리 문화재를 찾아 헤매고 연구한 박병선 박사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으리라.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은 타국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와 조선왕실의 행사 등이 기록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쇄문화를 세계에 알린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원서부, 중년의 한국 여성이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무슨 책인가를 찾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일은 찾게 될지도 몰라.’라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며.

 서울 중심가의 부유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박병선 박사는 어릴 적부터 병약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책벌레라는 별명답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나도 어릴 적 들은 적 있었던 ‘너는 주워온 아이’라는 어른의 장난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박병선 박사의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지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유년기부터 가볍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을 전공한 인텔리 신여성인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면서도 진지하게 바뀐다.

 스승인 이병도 교수의 ‘외규장각 의궤를 꼭 찾아오라’는 당부를 가슴에 품고 고국을 떠난 박병선 박사는 역사학, 종교학, 교육학 등 여러 과목을 두루 공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병도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를 찾기 위해 프랑스 곳곳의 도서관을 누비며 책과 씨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연구원이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외규장각 의궤를 찾는데 열중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고서를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를 바로잡게끔 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였다. 직지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동양의 작은 나라가 그것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서 금속활자본을 인쇄했음은 물론, 금속활자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을 직지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차리고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인정받기 위해 힘쓰지만 프랑스에게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서양보다 앞서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뿐이었다. 직지의 고증을 위해 고국의 서지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외면당한 박병선 박사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고증하기 위해 홀로 연구를 시작한다. 서지학자가 아니었기에 동양의 인쇄사 탐독은 물론, 다양한 활자를 만들어 직접 인쇄를 해보며 직지가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기 위해 힘쓴 5년의 시간 끝에, 마침내 직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받게 된다. 직지의 존재가 가치가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낮밤을 쉬지 않고 연구한 박병선 박사. 하지만 그 영광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게로 돌아간다. 애쓴 사람은 박병선 박사인데 타국이 그 영광을 차지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녀의 청을 거절하고 심지어 무시까지 했던 한국의 서지학자들까지 그 공로를 가로챘던 것은 더 어이가 없었다. 나 또한 이럴진대 직접 당했던 박병선 박사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고 허무했을까.

 그렇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대함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이병도 스승의 당부를 여전히 가슴에 새기고 있던 박병선 박사는 직지를 찾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를 찾기 위해 다시 기나긴 외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맨 끝에, 파손 되거나 파기 처분대상인 도서들을 모아둔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게 된 박병선 박사.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이미 파기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의궤들.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찾자마자 고국으로 반환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만약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의궤의 중요함을 깨닫기 전에, 박병선 박사가 반환을 추진했을 때 한국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외규장각 의궤가 좀 더 빨리 고국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대여가 아니라 이미 한국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미 늦어버린 일이지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의궤 환수 운동을 벌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의궤 해제 작업에 열중하는 박병선 박사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탄한 삶의 길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오직 사명감으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이뤄낸 박병선 박사의 삶은 귀감 삼아 마땅하다.

박병선 박사가 타국에서 문화재를 찾아 반환 운동을 벌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서 단연은 한국인들의 차가운 반응이었다고 한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할 한민족의 외면이 그녀를 더 힘들고 외롭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에게 빚을 진 것이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했을 문화재 환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다. 그녀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연구와 환수에 평생을 바치고, 한국문화 전파와 교육활동에 힘쓰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박병선 박사에게 직장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을 때는 가슴 아팠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사명감과 의지로 수술이 성공하고서도 편히 쉬지 않고 계속 고국을 위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자신이 남기고 간 일을 누가 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을 박병선 박사.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박병선 박사의 한없는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직지도 외규장각 의궤도 여전히 프랑스 국립도서관 깊숙이 잠들어 있거나 파기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가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숨을 불어 넣어준 존재가 바로 박병선 박사인 것이다.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환수 운동을 벌여, 대여의 형식으로나마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우린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외규장각 의궤의 영구반환은 물론, 직지 또한 환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국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환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재를 더 소중히 보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함도 물론. 그게 고귀한 문화재를 물려받은 우리 후손들의 몫인 것이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은 어린이 대상 도서인 만큼 박병선 박사의 삶을 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풀어나가며 중간 중간 적절한 삽화와 설명을 보충해놓았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읽는 남녀노소 누구나 읽고서 감동 받을 만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과 소중함, 박병선 박사의 헌신과 끈기를 깨닫고 배우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었다. 아무래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쉽고 짧게 풀어놓은 책이다 보니 박병선 박사의 삶의 이야기나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것이 단편적이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그녀의 삶을 집중 조명한 소설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개인적으로 가져본다. 이 책을 통해서 박병선 박사에 대해서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에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큰 맥락은 알 수 있었지만, 책을 덮으면서 세세한 것까지 더 많이 알고 싶다고 느꼈다. 그만큼 배울 게 많았던 책이었다.

 170 페이지 남짓에 담긴 박병선 박사의 일대기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절로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삶은,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어떻게 문화재를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이든 포기해서든 안 된다는 강인한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녀의 정신을, 그녀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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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한의 취업 적성검사 불패노트
이시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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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실업자 32만여 명.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빼놓지 않고 대두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청년실업, 심각한 취업난이다. 일자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30%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보니, 취업문이 더욱 좁아지고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일명 스펙 쌓기, 취업 대비에 열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기업에 지원하든 중소기업에 지원하든 대게 비슷한 스펙의 소유자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는 만큼 하나라도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취업 준비에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지원자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가 뚜렷해지자, 기업들은 자사에 맞는 인재를 찾기 위해 스펙보다는 자기소개서와 적성검사, 면접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자기소개서를 통해서 1차로 기업에 맞는 인물을 거르고 적성검사를 통해서 실질적인 능력을 파악, 최종적으로 면접을 통해 지원자들을 집중 탐구한다.

 한때는 적성검사를 두고 평소 실력으로 치르면 된다 생각하며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적성검사에서 한두 문제에 당락이 좌우될 수 있는 만큼 그러한 생각은 안일할 뿐이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만큼, 갈수록 적성검사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고 그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 만큼 적성 검사에 대한 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만 한다. 막막하게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 어떤 유형으로 나오는지 알고서 시험에 임하는 게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고, 더 파고들어 공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준비를 하는 만큼 더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성검사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준비해야할 다른 것들도 많다. 그럼 적성검사는 어떻게 대비해야하지? 라고 막막해하는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책이 바로 <이시한의 취업적성검사 불패노트>―이하 적성검사 불패노트―이다. 적성검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지 그 훈련법을 알려주는 <적성검사 불패노트>는 ‘해커스 챔프스터디’ 이시한 강사의 <이시한의 취업자기소개서 불패노트>, <이시한의 취업면접 불패노트>에 이은 취업준비서 3탄으로서, 단권이지만 취업 적성검사에 대한 핵심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저술된 알찬 대비서이다.

 그 구성을 살펴보자면, 적성검사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를 ‘PART1. 적성검사의 기본 다지기’에서 알려주고, 나머지 네 파트를 통해서 적성검사에 중요한 ‘언어’, ‘추리’, ‘수리’, ‘공간’의 네 영역을 각각 나누어 다루고 있다. 각 영역별 어떠한 추세로 나오는지 유형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각 영역에 필요한 개념과, 핵심 스킬 또한 꽤 세분화해 다루고 있기에 한층 이해를 돕게 구성되어 있다.

 

 <적성검사 불패노트>는 적성검사에 필요한 공부 방법을 훈련시키고, 유형을 익히고, 그 유형에 맞는 풀이 솔루션을 습득한 후 그 솔루션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도록 돕게끔 구성되어 있는데, 단순히 개념만을 설명하거나 문제만을 나열한 대비서가 아니라 개념 이해를 도우면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켜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들이 딱딱하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마치 강의를 듣듯이 저자의 경험을 적당하게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개념을 이해하도록 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림, 도표, 그래프 등을 적절히 매치시켜 설명이 더 잘 눈에 들어왔고, 각 영역별 주제별 샘플 글과 문제들을 통해서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해보고 부족한 점을 쉽게 파악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이 저자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핵심 스킬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유형을 잘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주고 있는데,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훈련법을 제시하였기에 쉽게 따라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흥미를 더했다. 적성검사를 떠나 책을 읽거나 부족한 상식 공부를 하는 데, 독해력과 논리력을 기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 대비서, 참고서라는 생각보다는 작가의 노하우가 담긴 수기 같아서 부담감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양질의 학습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성검사를 한눈에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비해는 데 취업준비생들에게 <이시한의 취업적성검사 불패노트>가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 같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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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짓
안정은 지음 / 동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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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남자 대 여자로 사랑하는 게 나쁜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서연과 한서. 그들은 서로를 깊이 갈망하고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자락 내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남녀보다 다정하고 친밀했지만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그들은 사이좋은 오누이였기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서연과 한서는 한 집에서 남매처럼 지내왔다. 서연이 열 살, 한서가 열일곱일 때부터. 서연의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면서 비관자살을 하자, 서연의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자신의 딸과 함께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다행히 두 사람 다 살았지만 서연의 어머니는 마음의 병으로 딸의 존재를 잊고, 서연은 어린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짊어지고 한서의 집으로 오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로 그녀를 딸로 받아들여준 한서네에서도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 큰 집을 쓸고 닦고 하던 서연의 모습이 생각난다. 안쓰럽기 그지없었던……. 무뚝뚝한 한서에게도 그런 서연의 모습은 애처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몽유병처럼 벚꽃나무 아래서 잠든 서연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각인시켰는지도 모른다. 서연을 지켜주고자 함과 동시에 사랑의 마음을 말이다. 서연의 엄마를 만나고서는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서연을 누구보다 소중히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잊어버렸는데도 어미의 품에 안겼다는 것에, 언젠가는 엄마의 마음의 병이 다 나아서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는 서연의 모습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를 죽이려고 했던 어미인데도. 그게 가족이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로에게 어떠한 잘못을 해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게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한서의 집에서 사랑 받으면서 예쁘게 성장해가는 서연. 그런 서연을 향한 한서의 갈망. 애써 동생이라며 되뇌며 스스로를 억누르던 그와 마찬가지로 서연도 더욱 남자다워지고 멋있어진 한서를 남자로 느낀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을 내비쳤다가 혹시나 동생으로서도 그의 곁에 있지 못할까봐 마음 깊숙이 감춰두고 혼자서만 열어 보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향한 마음은 애틋하기 그지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누이로 자라온 서연과 한서이기에 그들은 결코 서로에게 남자일 수, 여자일 수 없다. 어느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감춘 채 사이좋은 오누이 행세를 해오던 그들의 관계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열아홉 서연의 수줍으면서도 대담했던 고백으로 인해. 그와 같이 서연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에 한서는 기뻐하지만 그녀의 고백에 답하지 못한다. 서연의 어머니로 인해서. 그 후로 그들 사이에는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누이로 지내오지만……. 그랬던 그들의 관계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는다. 한서의 절친한 친구인 현제로 인해서.   

 

  “녀석에게 좋은 오빠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세상과 척을 지고, 하늘과 척을 지고, 운명과 척을 져서라도 서연이게만은 좋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 약속만은 꼭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이 녀석을, 서연이를 제가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쁜 짓> 251쪽 중


 돌아가신 서연의 어머니 앞에서 서연을 향한 진심을 내보이는 한서. 그의 저 절실한 고백처럼 그들의 절실하고 애틋했던 사랑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재확인한 두 사람에게 남은 숙제는, 한서 부모님으로부터의 허락. 서연을 친딸처럼 여겼던 그들에게 서연과 한서의 사랑은 충격일 것이다. 그 어느 오누이보다 사이좋았던 아들과 딸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 어느 부모가 충격 받지 않을까. 그렇기에 한서 어머니가 바로 허락을 했을 때 놀랐었다. 내심 눈치를 채고 마음을 준비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단번에 허락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역시나 허락은 했지만 혼란스러워하던 한서 어머니의 모습이 현실성 있게 느껴지고 공감이 갔다. 좀 더 고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혈연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가족이 아니었지만 가족처럼 살아왔던 그들, 그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나쁜 짓>에서 서연과 한서가 보여주는 사랑은 조금 위험스럽지 않은가 하고 반문했었다. 오누이 같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집에서 오빠 동생 하며 지내왔던 그들이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공감이 갈 수 있을까 의문도 가졌었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이들 사이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보다는 서연과 한서의 어려운 관계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더 궁금했었다. 아울러 공감이 가게 그려낼 수 있을지도.
 작가 또한 이 점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서연의 다이어리를 통해 그녀의 마음을 엿보게 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연의 다이어리를 통해서 어린 서연이 점점 성장해가면서 한서를 마음에 담고서 고뇌하는 심리가 잘 전달이 되었다고 할까. 또한 글의 주 전개를 한서의 시점에서 그려나감으로써 그의 심리가 잘 드러났고, 서연에 대한 그의 진심도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보통은 여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반해 <나쁜 짓>은 한서를 전면에 내세우며 점점 성숙해지는 서연에 대한 그의 커져가는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이러한 설정이 있었기에 한서와 서연의 관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응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쁜 짓>은 다소 무겁고 어려웠던 글이었던 것 같다. 서연이 가진 아픔과 더불어 그녀와 한서의 사랑이 결코 쉽지 않은, 어려운 것이었기에. 작가가 잘 그려냈기에 다행이지, 앞으로도 이러한 소재는 내게 어렵기만 할 것 같다. 실제로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서연과 한서였다면 그들이 좀 더 쉬운 사랑을 할 수 있게끔 충고했을 것 같다. 법적으로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기에 객관적으로 보면 충분히 사랑을 할 수 있는 사이이지만 그러한 구속력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남매로 한 가족으로 지내왔었기에 그냥 남매처럼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조언했을 듯싶다. 소설처럼 해피엔딩이 되기에는 쉽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에필로그에서와 외전에서 보여주는 한서와 서연의 행복한 모습이 마냥 보기 좋은 이 아이러니한 마음이란! <나쁜 짓>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현제였다. 한서의 절친이자 서연을 이성으로 좋아했던 그. 한서와 서연의 위태로운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쿨하게 응원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현제의 모습을 보면서, 현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신혼여행을 즐기는 한서와 서연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그 나쁜 짓이…… 가장 아름다운 짓이었다’는 현제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아서는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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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다정한
이유경 지음 / 하얀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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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 건너 건너 누군가가 겪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내겐 너무 다정한>의 주인공인 도자람과 강태웅 두 사람의 이야기는 꿈같은 로맨스가 아닌 진짜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평범한 연애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끔 했다. 물론 자람과 태웅의 배경이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았지만…….  

 최소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부러운 언어능력의 소유자인 자람은 꽤 알아주는 프리랜서 번역가이다. 낮잠 바뀐 생활에 마감에 쫓기듯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제 자신을 가꾸고 챙기기보다는,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하며,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고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는 한 달치를 한꺼번에 모아서 하는 등 전형적인 건어물녀가 바로 자람이다. 엄마를 버리고 재벌가로 새장가를 들고서 뒤늦게 아버지 노릇하겠다고 나타나 재벌가에 시집 보내려는 아버지에, 마찬가지로 외할머니에게 자신을 맡겨두고 새 삶을 찾아간 엄마로 인해 부모에게 별다른 애정을 느끼기 못하고 결혼, 사랑이라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자람은 어릴 적의 상처로 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심하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기억력 장애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으며 챙겨주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공간건축 건축사인 태웅은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주호를 만나러 갔다가 제 신경을 건드리는 한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가 흘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돌반지 같은 금붙이를 주워 고이 모셔둔다. 우연이 세 번이면 반드시 만나야 할 인연이라고 했던가, 우연히 마트에서 부딪치고 사촌동생 아진이 소개 시켜주려고 했던 소개팅녀가 자람인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진행 중인 공사현장이 자람의 집 근처이다 보니 오가며 그녀를 목격하게 되는 태웅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자신의 어두운 일면을 내보이는 자람이 더욱 신경 쓰이게 된다. 사사건건 그의 신경을 건드리며 말싸움에서지지 않고, 마치 밤길 조심할 일 생기라는 어투로 ‘밤길 조심하세요.’라는 살벌한 굿바이 인사를 날리는 자람에게. 그리고 신경 쓰이는 자람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데……. 

  까칠한 듯하면서도 제 여자에게 그렇게 다정할 수 없는 세심한 모습의 태웅을 보면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외모도 준수하고 능력 있지, 조금은 강박증까지 의심되는 깨끗함에 요리도 수준급. 거기다 제 여자 늦은 밤 홀로 택시 태워 보내기 싫어 제 집에서 재우는 다정함(?)을 보이는 그. 깁스한 팔로 운전해 잠적한 자람을 찾지 않나, 또 잠적한 그녀를 찾아 몽골까지 날아가는 열정을 보이는 태웅의 모습이 좋았다. 특히 어머니의 수술로 미국으로 날아가기 전 잘 챙겨 먹지 않고 인스턴트로 연명할 자람이 걱정 되어 갖가지의 반찬을 손수 만들어 놓고 가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의지할 누군가가 없는 데다 제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하는 자람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도 들었고. 

  자람과 태웅의 캐릭터를 봤을 때 이게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로맨스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남녀가 우연하게 스치듯 만난 후 우연의 반복이 인연이 되고 원수 보듯 툭탁거리다 어느새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는 모습이,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열고 설렘을 이어가는 남녀의 평범한 로맨스가 시나브로, 잔잔하게 그려져 나가는 것에 정말 세상에 또 다른 자람과 태웅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장애랄 것도 없었고 자극적인 설정이나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글의 절정이라고 할 부분도 약했고. 그렇기에 조금은 밋밋하고 지루하다고 느낄 법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친근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공감이 가고 눈길을 사로잡았다. 허황되고 멀게만 느껴지는 로맨스보다 원래 친구의 소소한 연애스토리가 더 흥미로운 법 아닌가. 자람과 태웅의 이야기가 그랬다. 잔잔한 로맨스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글에게도 흥미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좋게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람의 부모님 이야기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초반 고압적인 자람의 아버지의 모습에, 그리고 힘들어 하는 자람의 모습에 그녀가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부모님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살짝 내비쳐 지면서 그러한 감흥이 날아갔다고 할까, 진실을 알고서 힘들어하며 몽골로 떠났던 점도 공감이 가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자람과 같은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공감이 갈 수 있게끔 부모와 관련된 이야기도 좀 더 설득력 있게 다뤄졌다면 좋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없지 않아 있기에. 이점만 더 신경을 쓴다면 다음에 어떤 글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더 공감 가는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은 지금도 떠오르는 한 장면, 잠든 자람이 제 가슴을 조몰락거리는 것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염불하듯 외며 참는 태웅의 모습. 그 밤 피고 진 수많은 무궁화가 훗날 결실을 맺으며 그의 자제력이 해방되기는 하지만 그때 그렇게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다정함이 계속 떠오른다. 웃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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