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지음, 김지안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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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7일.

145년 전 병인양요로 인해 프랑스에 강탈당했던 297권의 조선왕실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프랑스에 귀속된 채 대여의 형식이라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먼 타국에서 평생을 바치며 우리 문화재를 찾아 헤매고 연구한 박병선 박사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으리라.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은 타국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와 조선왕실의 행사 등이 기록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쇄문화를 세계에 알린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원서부, 중년의 한국 여성이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무슨 책인가를 찾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일은 찾게 될지도 몰라.’라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며.

 서울 중심가의 부유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박병선 박사는 어릴 적부터 병약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책벌레라는 별명답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나도 어릴 적 들은 적 있었던 ‘너는 주워온 아이’라는 어른의 장난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박병선 박사의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지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유년기부터 가볍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을 전공한 인텔리 신여성인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면서도 진지하게 바뀐다.

 스승인 이병도 교수의 ‘외규장각 의궤를 꼭 찾아오라’는 당부를 가슴에 품고 고국을 떠난 박병선 박사는 역사학, 종교학, 교육학 등 여러 과목을 두루 공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병도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를 찾기 위해 프랑스 곳곳의 도서관을 누비며 책과 씨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연구원이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외규장각 의궤를 찾는데 열중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고서를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를 바로잡게끔 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였다. 직지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동양의 작은 나라가 그것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서 금속활자본을 인쇄했음은 물론, 금속활자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을 직지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차리고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인정받기 위해 힘쓰지만 프랑스에게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서양보다 앞서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뿐이었다. 직지의 고증을 위해 고국의 서지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외면당한 박병선 박사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고증하기 위해 홀로 연구를 시작한다. 서지학자가 아니었기에 동양의 인쇄사 탐독은 물론, 다양한 활자를 만들어 직접 인쇄를 해보며 직지가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기 위해 힘쓴 5년의 시간 끝에, 마침내 직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받게 된다. 직지의 존재가 가치가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낮밤을 쉬지 않고 연구한 박병선 박사. 하지만 그 영광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게로 돌아간다. 애쓴 사람은 박병선 박사인데 타국이 그 영광을 차지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녀의 청을 거절하고 심지어 무시까지 했던 한국의 서지학자들까지 그 공로를 가로챘던 것은 더 어이가 없었다. 나 또한 이럴진대 직접 당했던 박병선 박사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고 허무했을까.

 그렇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대함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이병도 스승의 당부를 여전히 가슴에 새기고 있던 박병선 박사는 직지를 찾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를 찾기 위해 다시 기나긴 외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맨 끝에, 파손 되거나 파기 처분대상인 도서들을 모아둔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게 된 박병선 박사.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이미 파기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의궤들.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찾자마자 고국으로 반환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만약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의궤의 중요함을 깨닫기 전에, 박병선 박사가 반환을 추진했을 때 한국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외규장각 의궤가 좀 더 빨리 고국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대여가 아니라 이미 한국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미 늦어버린 일이지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의궤 환수 운동을 벌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의궤 해제 작업에 열중하는 박병선 박사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탄한 삶의 길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오직 사명감으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이뤄낸 박병선 박사의 삶은 귀감 삼아 마땅하다.

박병선 박사가 타국에서 문화재를 찾아 반환 운동을 벌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서 단연은 한국인들의 차가운 반응이었다고 한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할 한민족의 외면이 그녀를 더 힘들고 외롭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에게 빚을 진 것이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했을 문화재 환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다. 그녀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연구와 환수에 평생을 바치고, 한국문화 전파와 교육활동에 힘쓰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박병선 박사에게 직장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을 때는 가슴 아팠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사명감과 의지로 수술이 성공하고서도 편히 쉬지 않고 계속 고국을 위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자신이 남기고 간 일을 누가 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을 박병선 박사.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박병선 박사의 한없는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직지도 외규장각 의궤도 여전히 프랑스 국립도서관 깊숙이 잠들어 있거나 파기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가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숨을 불어 넣어준 존재가 바로 박병선 박사인 것이다.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환수 운동을 벌여, 대여의 형식으로나마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우린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외규장각 의궤의 영구반환은 물론, 직지 또한 환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국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환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재를 더 소중히 보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함도 물론. 그게 고귀한 문화재를 물려받은 우리 후손들의 몫인 것이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은 어린이 대상 도서인 만큼 박병선 박사의 삶을 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풀어나가며 중간 중간 적절한 삽화와 설명을 보충해놓았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읽는 남녀노소 누구나 읽고서 감동 받을 만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과 소중함, 박병선 박사의 헌신과 끈기를 깨닫고 배우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었다. 아무래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쉽고 짧게 풀어놓은 책이다 보니 박병선 박사의 삶의 이야기나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것이 단편적이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그녀의 삶을 집중 조명한 소설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개인적으로 가져본다. 이 책을 통해서 박병선 박사에 대해서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에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큰 맥락은 알 수 있었지만, 책을 덮으면서 세세한 것까지 더 많이 알고 싶다고 느꼈다. 그만큼 배울 게 많았던 책이었다.

 170 페이지 남짓에 담긴 박병선 박사의 일대기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절로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삶은,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어떻게 문화재를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이든 포기해서든 안 된다는 강인한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녀의 정신을, 그녀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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