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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진소라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표현력과 톡톡 튀는 대사들로 공감을 자아내게끔 하는 데 탁월한 데다 스토리 또한 흥미롭게 잘 구성해서 작가님의 출간작은 전부 읽어보았고 항상 만족했었다. 그리고 늘 다음 작품을 기대해왔다. 이번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또한 꽤 오랜 시간 언제쯤 출간될지 기다려 왔었다. 영화화 준비소식과 함께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말이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 확정 소식과 함께 드디어 이 책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또 얼마나 개성적이면서도 공감가게 풀어나갔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만나본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대 이하의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글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래퍼 데니스 장, 배우 장준헌으로서 톱스타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원달구청 공익근무요원이 된 장공달과 원달구청 복지문화과 소속으로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과 달리 공달의 사수가 된 것이 반갑지 않은, 고아 출신에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7급 공무원 김주은 주사.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공익과 사수로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어 과정을 그린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처음 책 소개 글귀를 봤을 때는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주은과 공달, 그리고 독거노인 할머니들의 삶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마냥 밝지만은 않은 글이었다.
주은은 성지원 출신이다. 공부를 잘해서 후원을 받아 의대에 들어가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도움 받길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립해 공무원이 되었다. 원달구청 복지문화과에서 독거노인들의 복지를 전담하고 있는 그녀가 마음을 여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마음 착한 동생 은진과 성지원 출신 친구인 춘호, 공달의 예명과 같은 이름의 벨기에 입양아 데니스, 그리고 그녀가 담당한 재순 할머니를 비롯한 독거노인들. 버림 받았다는 아픔 때문일까 그녀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이 서툴다.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고 홀로 있는 것을 더 편해 한다. 처음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 하고 따돌리고, 심지어 그녀가 행패 부리는 사람에게 멱살이 잡혔을 때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이부자리가 다인, 가전제품이며 제대로 된 가구도 없이 휑한 아파트에 홀로 기거하는 그녀를 보면서 느꼈을 공달의 심정이 그러했듯이, 가정의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지 못해서일까 집이 그저 잠자는 공간일 뿐인 주은의 메마른 삶이 안타까웠다. 마음을 열지 않고 독고다이의 길을 걸어가려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픔 하나 없이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공달, 그 또한 남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부모님이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제물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것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아픔이었다. 주은과 달리 부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의 삶을 위해 자신을 떠나보냈다고 생각한 어린 공달이 받았을 배신감과 서운함 등의 상처는 컸을 것이다. 그런 아픔이 있음에도 공달은 밝다. 그리고 순수하다. 숱한 스캔들이 있었고 실제 화려한 연애도 많이 한데다가 노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공달이지만 주은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가벼웠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데다 정도 많다.
모든 것을 닫고 살아가는 주은과 달리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는 공달. 환경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처음부터 잘 맞을 리 없었다. 공달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괜한 일 하나 더 맡았다며 그를 귀찮아했던 주은과 좋은 게 좋다고 그녀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주은의 따가운 말과 내처짐에 내심 심기가 불편했던 공달.
-2년은 금방 간다. 금방 간다.
2년만 참으면 된다고 되뇌며 지구 최고 아이돌 장공달의 ‘원달구청 돌 아이 김 주사 꼬이기 작전’이 시작되어진다.
처음에는 순전히 자신을 싫어하는 주은이 그를 좋아하게 하게끔 만들겠다는 공달의 유치한 심술 내지 복수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주은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공달은 주은의 외로움을 엿보게 된다.
-산이 좋으십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의지할 상대가 필요하니까.
‘위험지역, 포탄유실지역’이라는 표지판이 이끄는 금단의 구역인 주은의 아지트, 원달산 커다란 바위. 잠도 자고 책도 읽고, 집보다 더한 애정을 두는 그녀의 공간에 침입한 공달은 자신의 마음에 침입한 주은을 향한 감정을 깨달아간다. 처음에는 동정심이라 생각했지만 주은을 알아가고 이해해가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공달은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물론 주은의 그녀의 삶에 끼어든 공달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애써 피하고 거리를 두려고 한다. 공달을 거부하며 지금 이대로의 외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주은. 그런 주은이, 타인의 접근도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가던 그녀의 삶이 공달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렇듯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웠다. 독고(獨孤)공무원 김주은의 고독(孤獨)한 삶을 안타깝게 여기고 공달이 보여주는 유쾌함으로 즐거워하며 교감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캐릭터들과의 절실한 공감이나 여운 같은 건 없었다. 글 곳곳에서 작가님이 보여주고자 한 이야기 꽃씨들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쉽고 애정하는 작가님이기에 더 아쉽다. 평범한 이들의 삶과 사랑을 특별하게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친밀하게끔 그려나가는 작가님의 필력은 여전했지만, 공감도 몰입도 쉽지 않았던 글이었다.
지극히 내 주관(主觀)으로 봤을 때 전개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는 소설보다는 영화, 드라마와 같이 영상 스토리텔링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은 이미지, 대사, 인물들의 표정이나 제스처, 배경음악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받아들임으로써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지만 소설은 다르다.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들을 모두 글로써 표현해 독자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장면 전환 과정에서도 영상물은 장면의 연속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만 소설에서의 장면 전환이나 이야기 전개는 활자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물 흐르듯이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는 마치 씬 넘버 00의 대본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도 장면도 띄엄띄엄 전개되고 인물의 심리나 상황도 두드러지게 묘사되지 않아서 상황과 인물을 이해하고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글의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를 보면서 이러한 대사가 이야기가 나올 만한 상황이 앞에서 등장했었나 하고 중간에 끊고 앞 페이지들로 되돌아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글 속의 인물 자기들끼리는 알고 있었는데 글 읽는 사람은 상황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경우라고 할까. 그러면 인물들끼리라도 알고 있었다는 뒷받침되어야 할 상황 설명이라도 있었다면,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라도 갈 텐데 그런 게 없는 경우도 꽤 있었고, 주 이야기 안에 작은 이야기 꾸러미 몇 개가 있는데 그 이야기들에 살을 붙이다가 만 듯한, 세밀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상황만 던져 놓고 이해하라는 듯, 꽉 채워진 글이 아닌 곳곳이 비어 있는 듯한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었다.
물론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가 드라마로 제작할 계획이고, 오랫동안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준비해오셨다고는 하지만 대본은 대본이고 소설은 소설이다. 영상이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그만큼 독자가 받아들이는 이해도도 높을 수밖에 없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는 소설만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드라마로 만날 것과 달리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의 매력을 느끼고자 기대했는데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
한 권에 주은과 공달의 모든 이야기를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은의 아픔이나 주은과 공달이 어느 커플들처럼 연애하는 모습, 독거노인들의 애환도 단편적으로만 함축적으로만 그려진 듯해서 그 점도 아쉬웠다. 앞서 언급했듯이 톱스타 공익근무요원 장공달과 7급 공무원 김주은의 러브스토리라는 주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확장될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수박 겉핥기식으로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은이 그녀가 지내온 성지원을 싫어하고 왜 꺼려하는지도, 그곳에서 아픈 일을 겪었다는 것도 성지원 원장과의 대화로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추측할 수 있었기에 좀 더 사연을 이끌어 내서 주은이 왜 삭막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지 더 이해할 수 있게끔 이끌어줬으면 싶었고, 주은과 벨기에 입양아 데니스와의 이야기도 좀 더 나와서 주은이 왜 데니스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재순 할머니를 비롯한 독거노인들의 애환도 더 깊이 다뤘더라면 글이 좀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싶었고, 공달과 주은 두 사람이 연애하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일반인인 주은이 뭇사람들의 시기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들로 인한 주은의 심리 등도 더 디테일하게 다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아쉬움들 때문에 주은이라는 고독한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녀가 사람들을 배척하고 문을 닫고 사는 것은 알겠지만 왜 그런지 아는 것이 어려웠다고 할까. 그녀를 따돌리고 독설을 퍼붓던 심 과장을 비롯한 동료 직원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주은의 태도에도 사실 못마땅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주은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의 심리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심도 깊게 다뤄졌더라면 주은을 더 잘 이해하고 이입해서 글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원래 겉으로는 강하면서 속은 여린, 까칠하면서도 당차고 제 할 말 다하는,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약자에게 잘해주는 여주 정말 좋아하는데…… 그녀의 상황이 공감이 가지 않아서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더 애정을 줄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가 바로 공달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천성적으로 밝은 공달이 주은을 ‘김 주사님~’ 하며 따르며 이것저것 챙기려고 하는 모습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때때로 보여주는 어수룩함도 좋았다. 할머니들의 통장을 정리해오라는 주은의 명령에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가나다라 이름순으로 통장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일명 ‘통장정리 사건’처럼 글의 곳곳에서 풍겨오는 공달의 어수룩함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여자 주인공이 아닌 공달의 매력과 사랑스러움을 보는 재미로 글을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때때로는 좀 진지했으면 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해맑아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중에 주은과 스캔들이 터졌을 때 나서서 수습하며 남자다움을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리고 기존 작가님의 소설을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캐릭터도 확실한 데다 글에서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이번 글은 글쎄…… 조연보다 주인공들에 포커스가 맞춰진다고는 해도 조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달의 연인이었다가 헤어지는 연우 캐릭터도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고, 이 글에서 감초역에 딱 어울릴 재순 할머니 외 독거노인들의 활약도 미비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글이었지만 바라건대, 앞으로 만나게 될 드라마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에서는 이러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소설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드라마가 채워줄 수 있도록 주은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며 주은을 응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표현되고, 공달도 귀여움 속에 때때로 남자다움과 진지함을 덧입혀서 더욱 멋지게 그려지고, 조연들의 활약도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속 캐릭터들에 온전히 몰입하면서 스토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백일홍>처럼 작가님의 매력적인 필력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신작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 이야기 꽃씨들이 활짝 꽃을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보는 이들도 그 향기를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