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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문장들 - 여행자의 독서, 세번째 이야기 ㅣ 여행자의 독서 3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이란 참 묘합니다.
현지에 가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떠나기 전의 설레이는 시큼한 맛도 좋고, 돌아와서 생기는 아쉬움과 또 떠나고픈 갈증의 쓴 맛도 참 좋습니다.
이렇게 모두 세번의 단계를 거쳐야 여행이 완성되나 봅니다.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픈 생각이 불뚝불뚝 드는 걸 보면 나에게 이번 여행은 아직 진행중인가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진한 여행이었다 해도 시간이 흘러 흘러 그 기억들이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또 가끔 그 기억들을 다시 꺼집어 낼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고작 여행지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과 진열장속의 먼지앉은 기념품 나부랭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일 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짧은 여행기라도 남겨놓았더라면 그 때의 생각, 느낌, 감각, 그리고 추억들이 풍성하게 되살아 났을텐데 하는 후회를 매번 하게 됩니다.
요즘 여행기나, 기행문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자꾸만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책을 통해서라도 여행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입니다.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여행의 의미를 찾아 보기도 하고,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을 읽으면서 인류와 세계사적 관점의 수준 높은 여행기를 접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딱 한마디의 문장때문에 내 마음에 강렬하게 꽂힌 책이 있었습니다.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머리로 하는 여행이다"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무엇에나 금방 싫증을 느끼는 성격이라 남에게 내세울 만큼 오랫동안 몰입한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그래도 좀 남다르게 해보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 여행과 독서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어렴풋이 여행과 독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독서은 내안으로의 여행이고, 여행는 내 바깥으로의 독서이다"
그러니 저자의 그 문구가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내몸이 얼마나 전율을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나요?
이 책은 여행한 도시와 그에 어울리는 책을 통해 저자가 사색한 삶의 편린들로 엮어 놓았습니다.
정여울이나 박웅현의 책처럼 "책을 소개하는 책"도 많고, 류시화나 김훈의 책 처럼 "방랑의 여행기"도 많지만 여행과 독서를 한꺼번에 전해주는 책은 흔치 않습니다.
물론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이 비슷하지만...
요즘은 모든 분야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모호한 때입니다.
오죽하면 "덕후"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광고회사 월급쟁이지만, 아마추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틈이 생기는대로 아니면 불현듯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광인가 봅니다.
하지만 삶의 깊숙한 곳을 꺼집어내는 철학적 화두의 글과 여행지마다 발견해내는 남다른 시선의 장면들은 무언가 많이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이미 가보았던 프라하, 쿄토, 방콕, 파리가 그리워 졌고, 쿠바의 아바나와 인도의 바라나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또 「죄와 벌」과 「안나카레리나」, 「노인과 바다」, 「오이디푸스왕」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천개의 찬란한 태양」과 「빙점」, 그리고 「창문너머로 도망친 100세의 노인」이 궁금해졌습니다.
어제 터어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을 빌려온 것도 다 이 책 탓입니다.
「여행자의 독서」는 연작인데 「여행의 문장들」로 이름을 바꾼 세번째 책까지 나왔습니다.
간결한 글들이라 틈틈히 조각조각 읽을 수 있지만, 삶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이 마치 에소프레소처럼 진한 맛이 납 니다.
벌써 다음 책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