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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스페인 프랑코 총통의 목숨을 구하고,
미국의 핵폭탄 개발에 기여해 트루먼 대통령과 친구가 되고,
그 기술을 빼내려는 소련의 공작으로 스탈린과 만찬을 하다 잘못돼 블라디보스톡으로 유배가고,
그러다 북한으로 탈출하면서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을 만나고,
거기서 우연히 모택동을 만나 과거 그의 세번째 아내 강청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알고 도움을 받게되고....
이 쯤되면 우리가 아는 20세기 현대사를 좌지우지한 대단한 인물이겠지요???
그는 바로 스웨덴 소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입니다.
이 얘기는 100번째 생일날, 갑갑한 양로원 생활이 싫어 몰래 창문 너머로 도망친 노인의 일대기입니다.
우연히 엄청난 돈이 들어있는 조폭의 트렁크를 훔치게 되면서 일어나는 추격 소동이 이 소설의 큰 줄기이지만,
20세기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이나 사건들과 주인공 노인이 얽힌 가상의 에피소드가 또 하나의 큰 줄기입니다.
현대사의 주요사건과 인물에 대해 작가의 시니컬한 시각을 엿볼 수 있지만, 주인공의 삶과 절묘하게 연결시켜내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감칠맛이 납니다.
한 마디로 참 유쾌하고 참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바로 전에 읽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변호사가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그가 꿈꾸던 사진작가로 성공해가는 「빅 픽쳐」 라는 소설이 너무 칙칙해서 더욱 그럴지도...)
우리 주변에, 말과 행동이 의도적이지 않은데 괜히 그 사람과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노인이 그런 캐릭터인데, 아마 작가가 그런 사람아닐까 싶습니다.
주인공이 분명 나쁜 짓을 하는데도 나쁜 짓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잘 되길 기대하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인생의 목적이나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것 같지 않은데도, 이 노인의 삶이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인생철학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로 부터 들은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는 말을 떠올릴 뿐 입니다.
무슨 일이든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지난 일을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냥 현 상태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몰두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어떻게 보면 "카르페 디엠"이기도 하고, 자연에서 배우려는 노장사상의 맥이 집히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서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그의 일생은 수많은 죽음의 공포와 번민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놀이하 듯, 관조하듯 그 역경을 헤쳐 나왔습니다.
아마 쓸데없는 걱정이나 후회할 시간에 "피할수 없으니 즐기듯이" 매순간을 유희하듯 살아온 삶이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심각한 메시지를 던지거나 심오한 철학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읽고나서 "참 괜찮은 소설 한 편 잘 읽었네"하는 기분이 듭니다.
상쾌하고 행복한 생각마저 드는 훈훈한 소설입니다
요즘처럼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할 때 이런 상큼한 소설 한편 읽으면 마치 시원한 물줄기에 샤워하는 느낌일 겁니다.
곰곰히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문장도 없으니, 출퇴근길에 짬짬이 읽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