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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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늘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왜 항상 초조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을까?

요즘 이런 생각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겁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질병이 있다고 합니다.
대략 근대까지는 박테리아의 시대이고, 현대는 바이러스의 시대라고 합니다.
맞는 말 같지 않나요? 중세나 근대의 흑사병을 떠올리고 현대의 감기바이러스나 AIDS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무렵까지를 "면역학적" 시대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외부로 부터 방어가 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좀 있어보이는 표현을 하면, 이 시대는 "이질성"과 "타자성"으로 부터 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통제사회"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21세기를 넘어오면서 이 상징하는 질병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바로 신경정신성 질환으로 말입니다.

면역학적 요법으로는 치료가 안되겠지요?? 현대인의 우울증, 신경쇠약 같은 걸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왜 이렇게 됐나 분석해보니 사회가 "통제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바뀌어서 그렇답니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뭐던지 "하지 말아라" 간섭하는 "부정성"의 통제사회였습니다.

근데 21세기는 이제 반대로 뭐던지 "잘 할수 있다"고 하는 "긍정과잉"의 성과사회가 된 것이지요.
"Yes l can"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사회지요.

그러다 보니 그전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면 되는데, 이제는 내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후기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이 랍니다.

다시 유식하게 표현하면 "자유로운 강제"를 부여하고, 일이 잘 안되면 예전에는 남을 억압했는데 이젠 자신을 억압하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죽자살자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각종 정신신경학적 질병에 시달린답니다.

대표적으로 일중독 현상을 생각해 보면 되겠지요.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이렇게 현대사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만히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거의 매일 야근하고 수시로 휴일 근무도 하지 않나요?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나요?
스스로 일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나요?

회사는 달성해야할 성과 목표만 알려줍니다. 예전과 달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간섭하지 않습니다.

다만 연말에 성과 달성도만 평가합니다. 짜증나게 승진에 연계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니 개인적 자유와 가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몰두했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가 이럴려고 야근을 밥먹듯이 했나??"하면서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참 답답합니다.

그래서 한병철 교수의 다른 책 「시간의 향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이 무척이나 향기로워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피로사회는 시간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합니다.
"피로한 성과사회"에서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아갑니다.

시간을 쪼개가며 틈이 없이 사는 데도 늘 바쁘고 정신이없지요.

휴가나 휴일이라고 해도 항상 머리속은 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휴식이 휴식이 아니라 일의 연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이란게 한편의 서사시 같은 "스토리"가 없고, 조각조각난 채 순간을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한병철 교수의 표현대로 삶에서 "시간의 향기"를 잃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이제 그 향기를 다시찾는 삶을 살자고 합니다.
어떻게요??

늘 시간에 쫒기듯 사는 "활동적인 삶"에서 가끔은 "사색적인 삶"도 살아보자고....

그래서 이제 조각난 우리 삶의 시간을 이어붙여 한편의 서사시로 향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두 책 모두 200쪽도 안되는 문고판 크기의 작은 책입니다.

그런데도 독일어 특유의 딱딱한 문장과 조어성 단어가 많아 읽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읽는 동안에 이해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읽은 후에 여운이 많이 남고 자꾸 내 삶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번 책은 읽어보라 권할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장 아파하는 상처를 들추어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렇게 잠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사색적인 삶"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문턱에 최소한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이라도 초대하고 싶습니다. 가끔 그 문턱에서 만나 서로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나누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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