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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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일어난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의 [경성기담]은 이상야릇할지는 모르나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4건의 살인사건과 근대조선을 발칵 뒤집어놓은 6건의 스캔들을 다룬 논픽션 소설인 이 책은 ‘꼼꼼하게 복원된 사생활의 역사’를 부제로 달고 있다. 그렇다면 10건의 이야기들은 저자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한낱 흥미거리로 치부할 수 있는 가벼운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목이 잘려진 어린아이의 시체, 참혹히 살해된 일본 순사, 난자 당한 젊은 여인의 시체, 사교집단의 314건의 살인 등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일맥상통할 수도 있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매일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연쇄살인, 존속살인 등의 엽기적 사건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일면에는 식민지하에 있는 조선인들의 아픔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조선인이라서 일본 경찰들의 강압적 수사에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억울한 구금 생활을 한 청년들은 미비한 보상금만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조선인 하녀 마리아를 죽인 일본인 여주인과 정부의 무죄 판결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의 힘 없는 조선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오버랩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한때 울분을 토하며 목소리 높여 미군을 비난하던 미선이와 효선이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미군에 의한 처참한 죽임을 당한 미선이와 효선이의 일만 하더라도 약소국인 대한민국의 실체 모습만 느낀 채 가슴속에 묻어야 했다. 대표적인 예로 든 이야기지만 이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돈과 권력과 힘에 기생해 불합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그 시절의 감춰진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은 아닐까?

살인사건 이외에 다뤄진 명사들의 스캔들은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꺼림칙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 속에 자리잡은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들의 비극적 생애에 먹먹한 아픔을 느끼며 함께 울분을 토함으로 인해 그런 기분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가부장적인 제도에 얽매여 가정을 돌보고 사회 생활을 병행하며 원더우먼처럼 살아야 했던 신여성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들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이 없이 내치기에만 급급했던 조선인과 조선이라는 나라에 몸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조선을 위해 바치겠노라 다짐하며 스웨덴에서의 안정된 미래와 명예, 사랑을 등지고 돌아온 최영숙 애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콩나물 장수뿐이었다.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채 27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최영숙 애사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여성이었다.

사람 냄새 나는 인문학을 쓰고 싶다던 저자의 말대로 그는 정말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쓴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맡은 사람 냄새는 너무나도 지독하고 향기롭지 못해 읽는 내내 코를 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에 대해 진저리가 쳐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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