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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람의 시간
김희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0월
평점 :
잠깐 책 소개를 읽었는데 끌려서 읽게 된 책 <스페인, 바람의
시간>! 마흔넷의 생일날, 한 남자가 아내의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숨 쉬기조차 권태로울 때, 남자는 스페인 건축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뭐, 20대의 모습, 30대의 모습, 40대의 모습... 이런 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뭐랄까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나보다. 40대가 어느 날 갑자기 유학을 떠난다? 그것도 가정이 있는데? 부인이 화내진 않으셨나?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 무엇이 이 저자를 그렇게 숨 쉬기조차 권태롭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 스페인이었을까? 그곳에 다녀오니 이제 다시 열정이 생기고 숨
쉬고 싶어졌을까? 여러 가지가 궁금해서 천천히 읽어봤다.
왜 하필 스페인일까 했더니, 저자는 이미 <스페인은
건축이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등의 책을 통해 스페인 건축과 문화를 전해준 건축가였다. 이 책 <스페인, 바람의
시간>이 그의 첫 여행 산문집이고. 그랬군. 저자는 이 책 속에 자신이 스페인에서 보낸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바르셀로나, 톨레도, 부르고스, 그라나다 등을 따라가며 나도 스페인을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페인의 건축 이야기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신기했고 재밌었다. 느낌이 좀 다르다. 다른 여행 에세이와는. 아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저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살다보면 숨 쉬기조차 권태로울 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떨쳐내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러한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한발 내딛어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꿈만 꾸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자의 사람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나는 40대면, 게다가 결혼까지 했으면 가슴이
이끄는 대로 하기엔 늦은 나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뭐라고 감히 그런 생각을 ㅋㅋ 근데 그냥 그랬다. 그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포기하는 게 더 많을 때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40대는 그랬다. 막연히 그런 느낌. 근데 인간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자기의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사는 존재이다 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꿈들을 미루기만 한다면 과연 그게 좋을 것일까 생각도 하게 됐다. 평균 수명은 계속
높아지는데 40대부터 포기하면 얼마나 더 포기하고 누르고 살아야 하는 거지. 죽을 때까지.
저자에 비하면 아직 한참 어린 내가 다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쉽지
않기도 했다.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잠시 중년의 남자의 생각을 조금 살펴본 정도. 왜 그랬는지 읽으면서 아빠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
아빠도 40대였을 때 어느 순간 권태로움을 느끼고 숨 쉬기조차 힘드셨던 순간이 있었겠지. 철없던 10대의 나는 우리 아빠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을까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만약 우리 아빠가 훌쩍 어딘가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면 그때의 나는 무척 놀랐을 것 같다. 예전에
아빠께서 꽃보다할배 스페인편을 보시며 아빠도 가고 싶다고 말씀 하셨었는데 언제 모시고 가고 싶다. 가서 같이 축구 보자
아빠!
처음엔 늦은 나이에도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나도 스페인 가보고
싶은데 읽어보면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던 책이었다. 근데 다 읽고 나니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은
느낌이다. 나이듦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에 대해 또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 도전하는 것의 가치, 자유로움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