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악의는 있다. 나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내가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남이 잘못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들. 악은 진실에 등을 돌렸을 때 비로소 전면에 나타난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짧다는 걸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
악은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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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는이야기를 방송에서 보고 이 소설을 썼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이야기가 아직도 쓰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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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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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그 자체로의 어린이를 이야기하는 글이지만 역설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어린이를 대상화하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

아이에게 어려운 단어를 굳이굳이 풀어서 설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여섯 살 아이에게 무서운 속도로 옮는 병에 대해 이야기하니 ‘응, 코로나 팬데믹이 무섭긴해‘라고 답을 들은 적도 있다. 비슷한 일을 계속 겪고 아이는 내 생각보다 사회적이고 많은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한자어나 문어체 단어도 그냥 쓰는데 아이가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하거나 다시 단어를 물어오기도 한다. 역시 아이는 내 생각보다 학구적이고 합리적이다.

누구나 지나왔지만 잊어버리고 마는 어린이라는 세계.
대단한 배려보다는 한 명의 사람 그 자체로 보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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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나 사이의 우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없다.  - P157

가해자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을 범행을 정당화하는 데소비하는 것은 학대 피해 생존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학대 대물림‘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예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가정에서 아이를 학대해선 안 되는 이유는 아이를 아프게 하고, 존엄을 무너뜨리고,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이유는 충분하다. 가해자의 잔인한 범행을 나는 ‘악惡‘이라는 개념 말고 다른 것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악행의 기승전결은 전혀 알고 싶지 않고,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러니까 칼국수를 먹다가, 빨래를널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은, 다섯 살 어린이의 삶이다. - P162

대부분의 양육서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라‘인데, 어째서 부모의 개성은 존중하지 않는 걸까? 세상의 엄마 아빠는 다 비슷한가? 양육서니까 아이에게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지만, 양육자에게 이렇게 관심이없어도 되나? 그런 상태에서 ‘이럴 땐 이렇게‘ 식으로만 접근하면 결과적으로는 아이들도 비슷해지는 것 아닐까? - P177

한다는 것인가. ‘노키즈존‘이든 ‘노 배드 페어런츠 존‘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부모(실제로는 엄마) 인가가 다를 뿐이다.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  - P209

이런 태도가 차별과 혐오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의식적으로 어린이의 소음을 무시했다. 기차에서 아기가 울면 ‘아기가 피곤한가 보구나‘ 하고, 식당에서 아이가 보채면
‘집에 가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내가 편안해졌다. 눈살 찌푸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손님들‘이 이런 관용을, 내가 너무 늦게 갖기 시작한 이런 관용을 조금씩 갖는다면 어린이도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한 번씩 어린이의 고함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릴 때가 있고, 이 점이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공유하면서 어린이를 가르칠 수 없을까?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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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소영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어린이 김소영은선생님의 사소한 실수들을 쉽게 용서한 것 같다. 아마 내가자라느라 바빠서 서운한 순간들은 되도록 흘려보낸 모양이다. 대신에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 좋은 느낌, 행복한 감정은모두 남아서 나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  - P120

"위로가 됐어요"라고 할 때 주이는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 장면이 이따금 생각난다. 평소 주이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세계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네 식당에서 어린이 둘과 함께 와서 식사하는 어머니에게 사장님이 "아기들 덜어 먹을 그릇 따로 드릴까요?"라고먼저 물어보시는 것을 보았을 때, 아파트 1층 현관으로 자전거를 끌고 다가오는 어린이를 보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자동문이 닫히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아랫집 할머니를보았을 때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이들에게 세상에대한 좋은 인상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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