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의 부모 탓은 명준이 봐도 너무한 데가 있었다. 물론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자란 것이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든 데 일조를 했을 수는 있지만, 자유분방한 집안을 시선 혼자 만든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어느 지역 사람들이 더 잔인한 건 아닌 것 같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겐 기본적으로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어. 함부로 굴어도 되겠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걸 인정할 줄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한 집단의 역겨움 농도가 정해지는 거고.

"우리, 괜찮은 거지?"
명준이 다시 물었다.
"응, 당신은 괜찮은 벽이야. 내가 생각을 던지면 재밌게 튀어돌아와."
"나는 우리가 라켓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쪽은 벽이었어?"

어떤 시대는 지나고난 다음에야 똑바로 보이는 듯합니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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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에게 시선은 어른 그 자체였고, 그 어른이 무겁고 더러운 사슬 같은 것을 앞에서 끊어줘서 화수에게까지 오지 않도록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여겼던 듯했다.
나도 어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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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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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의 작은 여행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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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시인의 소송과 관련해서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소송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어내리는지 알고 있는만큼 이 에세이는 우울에 허덕이던 작가가 일상을 찾아가는 이야기. 개인의 우울을 끝없이 늘어놓아 초반부는 좀 힘들었으나 곧 작가와 함께 독자도 극복하게 된다.

다만, 3세계 여행자가 아무 곳에서나 카메라를 들이댄 이야기를 자성 없이 하는 건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힘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허겁지겁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들이 렌즈를 볼 때까지 기다려 셔터를 누르고 ‘독서에 방해가 될까봐 다른 걸 찍는 척 하며‘ 몰래 촬영하고. 세상은 이런 걸 도촬이라 하고 무례하다 한다. 그들에게 웃어주었다는 말로 포장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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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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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청소년 소설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나는 선한 사람이 강인하게 무언가를 이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두 친구 중 현재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지만 그때엔 알 수 없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늘 바라보게 되는 미래와는 달리 묵묵히 옆에 존재하던 현재는 언젠가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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