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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가족
오에 겐자부로 지음, 오에 유카리 그림, 양억관 옮김 / 걷는책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는 나이던, 가족들이던, 기껏해야
감기 정도에 걸릴 뿐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도, 가족들도
병이 늘었다.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하기도 하고, 난치병에
걸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저 작은 수술이더라도, 가족의
병 수발을 참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아무 것도 못 하고 쉬기도 하고, 큰 병원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 때마다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이런 질병들을 껴안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전적 소설을 쓰기로 유명하다. 첫 아들이 뇌에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자, 오에는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소설로 적었다. 그
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의 이야기 등 자신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꾸준히 소설로 적어 내려갔다.
그의 소설을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자전적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에세이라니, 소설의 실제 배경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에세이에 끌렸다. 그리고 난 오에의 소설에서 접하던 친숙한 캐릭터들을 에세이에서 실존 인물로 만날 수 있었다.
오에에게는 장애가 있는 큰 아들 히카리와 치매에 걸린 장모님이 있다. 그리고 그 장애를
가진 아들과 큰 질병을 가진 장모님과 공생하는 이야기를 이 에세이에 남겼다. 언뜻 생각하면 그런 가족의
일상이란 전쟁 같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기쁨이 있다. 히카리가
음악에 재능을 보여, 틈틈이 작곡한 것을 자비로 출판하고, 훌륭한
연주가들과 함께 CD를 두 장이나 발매하며 콘서트까지 연다. 히카리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테마로 하는 유럽 여행을 떠나고, TV 프로그램에서 소설가 아버지와 작곡가 아들의
공생을 방송하기도 한다. 물론 그 사이에 히카리의 간질 발작도 겪고,
가족 간에도 팽팽한 긴장이나 다툼이 있기도 하다. 사실은 그러한 넘어야 할 산이 산더미인
것이 오에의 가족의 일상이지만, 그들은 히카리를 기쁨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괴로운 병을 앓는 가운데서도 이른
봄의 햇살처럼 짧지만 따스한 회복이 있기에 가족에게 밝은 활력이 샘솟는 것이다.
(p11)
치매에 걸린 장모님 역시 골절 사고를 두 번이나 겪고, 지적 능력이 쇠퇴하여 대화가 불가능하지만, 건강했을 적 히카리와 가깝게 지내고 히카리의 뜬금없는 한 마디에 용기를 얻기도 한다.
장애나 질병을 끌어안고 함께 공생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에세이기도 했으며 그 문장들에서 위로를 얻는 힐링
에세이이기도 했다.
인간이 또는 그 가족이 병에 걸리고 거기서
회복해가는 과정에 진정으로 인간다운 기쁨과 성장과 달성이 있다고 믿는다.
(p10)
특히 이 에세이집 안의 삽화는 오에 겐자부로의 아내 오에 유카리가 그린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오에 유카리의 취미가 식물 스케치였는데, 오에 겐자부로가 삽화 작업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그림들도 상당히 아름답다.
오에 겐자부로를 처음 접한 것은 유명한 헌책방에 특별히 진열된 절판된 3부작에 호기심이
동한 것이었다. 그 이후 최근작을 많이 읽었지만, 다시금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작이 읽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