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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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소설도 좋아해서 많이 읽었지만, 에세이는 그보다 더 좋아해서 안 읽은 책이 없다. 세월호 사건을 다루며 여러 작가들이 함께 쓴 산문집 <눈먼자들의 국가>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역시 감탄하며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월호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신화 이야기만 나왔지만 그 에세이는 세월호 사건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거의 구조되지 못하고, 유족들마저 외면당하고 비난 받는 일들을 겪어왔던 어떤 시절에 김연수가 남긴 글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남은 우리에게 부탁할 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자신들을,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자신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닐까. 부디, 그러니까 기어이, , 아무쪼록
(p. 108)


김연수 작가는 <눈먼자들의 국가>라는 산문집에 에세이를 하나 실어서,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와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출판사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많은 세월호 관련 서적이 출판되고, 무료 대여 형태나 할인 형태로 쉽게 보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 역시 다시 한 번 <시절일기>로 한 시절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역사의 흐름은 아무리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막을 수 없었다.
김연수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다른 산문에서 익히 읽어왔다. 대학에 입학하고, 왜 그런 것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김연수 작가는 항상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읽었으며, 읽다 보니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게 된 소설 쓰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단 한 번의 불꽃, 뒤이은 그을음과 어둠, 그리고 평생에 걸쳐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는 것을. 그게 바로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은.
(p. 54)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 왔고, 목소리를 냈으며, 앞으로도 평생에 걸쳐 헌신하며 글을 쓸 것 같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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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 내 인생을 바꾼 365일 동안의 감사일기
제니스 캐플런 지음, 김은경 옮김 / 위너스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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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하루가 한 일 없이 지나간다는 느낌에 시달리던 어느 날, 한 번 칭찬일기를 써 보기로 했다. 그 날 열심히 해낸 일들을 적다 보니, 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칭찬일기에다가 감사일기까지 더해 6개월쯤 꾸준히 쓰고 있다. 이제는 하는 일이 없다는 느낌에 시달리지 않고 지내며,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자주 들어 훨씬 행복해졌다.

제니스 캐플런은 감사에 대해 일 년 동안 연구했다. 남편에게 감사할 만한 점을 찾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에게 감사하기, 일에 대해 감사하기, 감사의 건강에 대한 효과 연구하기 등을 매달 진행하며 일 년을 감사하려 노력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감사하기의 효과에 대해서도 생생히 적어 내려갔지만, 각 주제에 대해 저명한 연구자를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인터뷰하여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해주는 과학적인 사실 역시 같이 담았다.
감사의 최초 효과는 부부관계가 좋아진 것이었다. 먼저 남편에게 자주 감사하기 시작하자 남편도 제니스 캐플런에게 감사하기 시작했고, 부부 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십 대 아이들은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많은 아이들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해 주는 것을 감사하며 받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아이들은 사사건건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안다.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상적인 사실이었다.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흔든다. 걱정,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은 백혈구가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백혈구가 특별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가 습관이 되어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낀다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아주 힘든 상황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사람들의 실화도 감동적이었다. 불치병에 걸린다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도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안다면 고통의 시간도 견딜 만 하게 변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는 사람이 있고 불평하고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의 문제이다. 어차피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지금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도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또는 최소한 지금보다 견딜 만 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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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구 여행기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문경연 지음 / 뜨인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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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문구 덕후의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신학기가 되어 부모님이 학용품을 사준다고 하면 엄청난 양의 문구를 골라 부모님을 당황하게 했다. 서점에 책을 사러 가서는 갑자기 고급 샤프를 사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자 내가 제일 먼저 산 것은 고급 볼펜이었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사다, 그 다음에는 서점으로 가고, 나중에는 전문 펜샵에서 구입했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보여준 사건은 내 문구 덕심을 폭발하게 했다. 그 날 이후로 난 고급 또는 보급형 만년필과 고급 볼펜, 색색깔의 잉크, 종이 질이 좋은 노트를 모았다. 심지어 노트 제본을 할 A49000장씩 쟁이기도 했다. 노트 제본법을 독학해 해외 직구한 종이로 노트를 예쁘게 디자인해 만들고, 온라인 만년필 동호회에서 나눔하며 열심히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
이런 내게 <나의 문구 여행기>의 저자 문경연은 너무나 부러운 이력을 가졌다. 대학 졸업 후 전 세계로 문구를 탐방하는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 아날로그 키퍼라는 문구 브랜드를 만들었다. 지금은 크루도 있는 아주 인기 있는 문방구 주인이다. 온라인에서 아날로그 키퍼를 검색하니, 나와 비슷한 문구 덕후들의 제품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대형 업체에서 만든 브랜드가 아니라서 제품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특색 있는 제품들이었다. 더러는 나도 구매하고 싶은 메모지가 있었다
.
저자는 파리, 베를린, 바르셀로나, 런던, 뉴욕과 도쿄, 상하이를 여행하며 수집한 문구 사진과 문방구들의 사진, 문구를 구매하고, 선물 받고, 멋진 공간을 구경한 경험을 써내려 가기도 했지만 취업을 미루고 여행을 떠나 온 불안감을 적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으나, 지지부진한 모습에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하도 많은 문구를 사서 짐도 무겁고 여행길도 고되 짜증스러워 하기도 했다. 또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문구를 탐색하러 여행을 하며, 난 문구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
그러나 각국의 문방구 주인들이 번거로움을 감수해가며 문구를 소중히 다루고 사랑하는 모습에 감명받고, 문방구 구석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빈티지 문구를 발견하는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
여행에서 돌아온 저자는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다가, 문구 여행을 했으니 문구 디자인도 하자 싶어 몇 가지 시제품을 만들었다. 과연 잘 된 디자인인지 궁금해 친구들에게 돌렸다가, 쓰고 싶으니 좀 더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리고 아예 몇 가지 제품을 판매하기로 하고 취업 시즌 전까지 시한부 문구 사업을 했다
.
취업 시즌이 되고, 시한부 문구 사업을 하며 너무 행복했던 저자는 아예 문구 사업에 정착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비난까지도 새겨 듣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 사랑했다. 그래서 만든 아날로그 키퍼. 이제는 독립 사무 공간이 있고 크루가 있는 사업체가 되었다
.

내가 사랑하는 문구는 온기가 머무는 것이었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나의 디자인도 결국 온기가 머무는 것이다.
(p. 187)


아날로그 키퍼 주인으로 떠나는 도쿄와 상하이 문구 여행에서는 문구점을 구경하고 와서 문구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올라 숙소에서 디자인 스케치를 할 정도로 열중했다.

온기를 담아 오래도록 남기는 일. 시간이 흘러도 나의 찬란한 시절을 내내 간직해주는 믿음직스러운 존재. 문구란 무엇인가. 이전에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p. 261)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세계로 떠나고, 실패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일로 만드는 것.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를 낸 그의 모습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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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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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미술과 물리학이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예술과 과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화와 무려 물리학이라니! 그러나 미술과 물리학은 많은 접점에서 얼키고 설켜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빛의 성질에 대해 물리학자 맥스웰이 맥스웰의 방정식을 세우고, 외젠 슈브뢸이 색의 병치에 대해 연구하고, 헤르만 폰 헬름홀츠가 감산혼합과 가산혼합을 발견했을 때, 마침 화가들은 광학과 색채학에 바탕을 둔 연구를 기반으로 신인상주의를 발전시켰다. 조르주 쇠라의 그림은 한 면에 여러 색의 점을 병치하여 찍는 기법으로 그려, 멀리서 보면 그 점들의 색이 혼합되어 보이도록 그려졌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점의 나열이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멋진 그림이 된다. 그것을 위해서 조르주 쇠라는 가로 3m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이렇게 회화 안에 과학이 녹아 있다
.
교회에 가면 볼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과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 옛날 사람들이 퀀텀닷 기술을 구현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니 놀랍다. 퀀텀닷은 지름이 수 나노미터 정도의 작은 물질로 빛이나 전압을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낸다. 퀀텀닷의 크기에 따라서 다른 색을 낼 수 있고 재료 조성을 바꿈으로써도 다른 색을 낼 수 있다. 현대에는 TV, 태양광발전, 바이오 분야에 쓰이는 이 기술의 핵심을 성당이나 교회를 지으면서 썼던 것이다. 그들은 투명한 유리에 금속 산화물을 넣어 색유리를 만들었다. 고온에서 유리와 금속을 녹이면 화합물의 입자 크기가 수 나노미터가 되어 일종의 퀀텀닷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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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색의 과학을 가장 잘 쓴 화가는 반 고흐다. 그가 즐겨 쓴 노란색과 남색은 정확한 보색으로 이 두 색이 결합하면 반발하는 두 색의 영향으로 각각 노란색과 남색이 채도가 더 높아져 뚜렷하고 두드러져 보인다.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고 많이 봐왔지만, 그림의 그 강렬한 느낌이 갖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되기는 처음이다. 좋아하는 그림인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에 그려져 있는 노란색의 휘황찬란한 밤 카페 조명과 남색의 어두운 밤하늘이 달리 보인다
.
좀 더 본격적으로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술은 옵아트이다. 흰 바탕에 화면 가득 검은 점을 찍어 그 검은 점이 가운데에서 모여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브리지트 라일리의 작품은 뇌의 인지 작용만을 자극하여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미술인가 아닌가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새로운 예술인 것만은 확실하다
.
프랙털이라는 구조가 있다.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각형 속의 삼각형, 정육면체 안의 정육면체가 반복되어 전체를 이루는 구조이다. 이 구조로 그려진 <원형의 극한 4>라는 작품에서는 천사와 악마가 반복되며 프랙털 구조를 이룬다. 우리 마음에 공존하는 선과 악을 그렸다는 점에서 과학 모형이 예술로 변하는 지점을 본다
.
핵 실험에 크게 충격을 받아 그린 작품도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는 핵실험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비키니 섬을 그렸다. 세 개의 머리를 그림으로써 핵실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
문화유산 복원과 분석은 대표적으로 미술이 과학의 도움을 받는 부분이다. 각각 파장이 다른 테라헤르츠파, 엑스선,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을 그림에 쪼여 각각 다른 깊이로 그림을 분석할 수 있으며 그림에 차례대로 그려진 밑그림과 채색, 덧칠해진 부분을 분석할 수 있다. 그림에 숨겨진 밑그림이 분석되기도 하고, 서명이 없어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그림의 숨겨진 서명을 발견하기도 한다. 뭉크의 <절규>에 묻은 정체 불명의 흰 점이 촛농임을 밝히기도 했으며 물감의 성분을 분석하여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추정하여 모작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
저자는 과학자이면서 주말에 그림을 그린다. 학창시절에는 미대 수업에 들어갔을 정도로 그림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했다. 과학을 선택한 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책에 수록된 저자의 수채화를 보니 수준급이다. 과학자이면서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
그림으로 떠난 물리학 여행이 어렵지 않고 즐거웠다. 더불어 명작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할 만 하다. 혹은 어디에도 관심이 크게 없다 하더라도 미술과 물리학의 연결 고리에 놀라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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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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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디렉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바로 병원, 백화점, 카페, 기업에 서가를 만드는 직업이었다. 볼일을 보러 나가서, 서점이나 서가를 만나면 반가워지곤 해서 한 두 권씩 뽑아 들고 읽곤 했는데, 바로 그런 서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바 요시타카는 서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오프라인 환경인 만큼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물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서점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몰랐던 책과 우연히 만나는 기회를 일상 속 여기저기에 흩뿌리고 싶어서다.
(p. 9)


그가 만든 서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치매 환자 병원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치매 환자에게 책이 필요할까 싶지만, 그는 그림책, 사진집 등 그냥 아무 데나 펼쳐서 잠시 동안이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서가에 두었다. 그것도 치매 환자의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옛날에 모두가 쓰던 물건을 찍은 사진집 등을 놓아두었다. 그 도서관은 일상에 지친 환자의 가족에게도 환자가 진료를 보는 사이 이런 저런 책을 들추는 달콤한 20분 간의 휴식을 선사했을 것이다.
몸을 씻어도 되는 책. 기노사키 온천에 비치한 책도 흥미있었다. 기노사키에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소설의 배경에 기노사키 온천이 들어간다. 또한 놀랍게도 표지를 타월지로 만들고, 본문 용지도 물에 젖지 않는 스톤페이퍼를 사용했다. 그래서 온천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고 몸도 씻을 수 있다
(!)
북 디렉터의 독서관이나 책에 대한 생각, 책을 향한 열정은 어떨까. 어린 시절, <점프>가 서점에 들어오는 날, 몇 부 안 되는 책이 다 팔리기 전에 사려고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달려 동네 작은 서점에 가는 레이스를 동네 소년들과 했다는 저자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독서는 몇 시간 공상 속을 여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읽은 책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꽂혀서 피와 살이 되고 하루하루 실제 생활에 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 아침에 십 분 일찍 일어나려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저녁 반찬 레시피를 떠올렸다고 하는, 사소하지만 일상을 만드는 조각에 책이 관계하면 좋겠다.
(p. 12)


그가 한 이색적인 일 중 하나는 도쿄 국제문예 페스티벌을 도운 일이었다. 소설가, 만화가, 번역자, 편집자, 북 디자이너가 등장해 낭독과 대화, 라이브 소설을 펼치는 축제로 세계 삼십 개국, 팔십 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책 축제였다. 그는 책 따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는 시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백화점 구내방송에서 뜬금없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삼 분 정도 낭독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주의를 기울여 듣곤 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백화점 지하 이 층 매장에서 사전 공지 없이 게릴라 라이브 낭독을 하기도 했다. 이 날의 행사는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낭독을 들은 사람들이 책을 사가기도 했다.
신간 서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동네 서점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는 마지막 남은 보루처럼 책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다
.

독서의 핵심은 많은 책을 독파하는 것도 아니고 서가를 자랑하며 많은 책을 가지런히 장식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 콕 박혀 계속 빠지지 않는 한 권을 만나는 행위다. 그런 당신의 책 찾기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 275)


어쩌면 이 시대에는 그 같은 사람들이 좀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마트폰만 보던 사람들도 자신의 내면에 콕 박히는 책을 만나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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