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ㅣ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특히 스트레스 받거나 상처받는 일이 있을
때 쓰는 일기는 내 안정제다. 문보영 시인은 일기와 소설 그 사이 어디쯤 되는 글들을 묶어 이 책을
냈다. 글의 형식은 분명 일기이지만 이 안에는 상상의 친구 뇌이쉬르마른도 나오고 그 뇌이쉬르마른이 파
준 가상의 굴도 나온다.
그는 매일 손으로 쓴 일기를 배송해주는 일기 딜리버리 서비스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일기 매니아이다. 어떤 구독자는 일기 딜리버리 서비스를 받고 답으로 자신의 일기를 보내기도 한다. 이 글 안에 등장하는 그는 늘상 일기를 쓰고 있다. 카페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일기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되고 일기로 밥벌이도 한다.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p. 12)
그의 이십 대에 시에 빠지고 시를 배우고,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고, 등단을 하던 날들의 일을 쓴 시인기 시리즈가 인상적이었다. 무언가에
그렇게 깊게 빠진 사람의 이야기는 특유의 반짝거림이 있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어떤 것에서 큰 도움을 받고 나면 그것은 큰 안목을 준다. 시에서
큰 도움을 받은 이후에는 더 많은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시간을 한 번 통과하자 아플 때만
시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무탈할 때도 시를 읽는 사람이 되었다. 시를 내 삶에 심어 버린 것이다.
(p. 96)
그는 대학에서 한 시인의 소설 창작 강의를 들은 후 시를 배우고 싶어서 삼촌 뻘, 할머니 뻘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를 배웠다. 그리고 그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시를 배웠다. 그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나 문학을 사랑하는 또래를 만나고 싶어서,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며 그들을 흉내내고 또한
그들에게 시를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는 등단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누가 읽느냐, 혹은 누가 듣느냐, 가 아니라 누군가 끊임없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p. 247)
매일 도서관에 다니는 그의 일상, 불면증으로 밤을 새우던 날들의 기록, 운전면허를 따려다 고전하고 실패한 날들의 일들 등 그가 적은 일기들을 읽다 보면 그보다 더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오롯이 털어놓은 이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일기란 것이 더 좋아진다. 나도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일기장을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