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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작가의 첫 책
토머스 울프 지음, 임선근 옮김 / 걷는책 / 2021년 10월
평점 :
무명작가가 첫 책을 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막연히 내 책을 내는
것에 대해 로망이 있는 내게, 이 책은 토머스 울프의 경험을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들려준다.
사실 토머스 울프란 작가는 국내에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소설 작품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번역된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절판되었다. 그의 유일한
한국 번역본이 이 책인 셈이다. 그의 소설 작품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에세이만으로도 그의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토머스 울프는 소설을 쓸 때,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 아주 많은 양의 글을 써 내려갔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메모, 묘사,
정보 등을 엄청나게 써대며 소설을 준비했기 때문에 편집자 퍼킨스는 토머스 울프의 글을 대량으로 잘라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잘라내지 못한 듯 하다.
그의 이 에세이도 아주 문학적인 문장이 많고 만연체가 많다. 반 페이지 정도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었다.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니지만, 나름 매력있는
문장이 많았다.
토머스 울프가 첫 책을 성공적으로 내고, 드디어 행복해졌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었다. 그의 경험에 기반한 소설을 썼는데, 그의 고향에서 토머스 울프를 맹비난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 고향 사람들이 자신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고향 사람들의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다가 다음 작품에 대한 초조함까지 느껴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차기작을 내지 못하고, 차기작에 대한 질문만
받아도 예민해지는 지경이었다.
첫 작품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경우, 평론가들은 종종 그 작가는 더 이상 쓸 게 없을
거라고 단정하는 듯 하다. 그게 얼마나 토마스 울프에게 상처가 되고 신경쓰이게 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토머스 울프의 작품 세계관은 단연코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길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진지한
창작물은 그 바탕에 자전적 요소를 깔고 있으며 작가가 실질적인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창작하려 한다면 자기 삶에서 얻은 소재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p. 32)
자신 안에 해야 할 이야기들이 차오르는가? 그것이 작가의 작품 활동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결정짓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중노동이라는,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중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구든 좋은 작품을 완성하려면 온 힘을 다해 집중해야 하며, 간혹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우연한 영감에 의지하지 말고 목적 달성을 위해 열심히, 끊임없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144)
그 속에서 급류처럼 흘러 넘치는 글을 모두 적고, 그 다음에는 그가
쓴 많은 것들을 줄이고, 잘라내고, 버리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듯 하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글을 대량으로 잘라낼 때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을 듯 하다.
작가가 되는 건, 요즈음 많은 사람의 꿈인 것 같다. 작가의
길이 모두 토머스 울프의 것과 꼭 같지는 않겠지만, 한 진지한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대리체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내 안에서 급류처럼 글이 쏟아질 지는 잘 모르겠다. 글쓰기 강의를 가끔 수강해보기도
했는데 글 쓰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쉽지 않았다. 무명 작가가 첫 책을 낸다는 것. 이런 커다란 사건 속에서 토머스 울프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느꼈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아주 진지한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