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교육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만들기
박하식.임호순 지음 / 글로세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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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세 시간 동안 흥에 겨웠다.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떠난 교직에 대해 아쉬움은 잊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기획하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것처럼, 그래서 뿌듯한 성취를 느꼈다. 기업형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인 충남삼성고등학교가 개교해서 자리 잡기까지 4년의 노력과 성과를 담은 책이 <미래를 여는 교육>이다. 박하식 교장과 개교 TF 팀의 일원이었던 임호순의 분투기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삼성고등학교는 “성인의 세계로 들어갈 단순한 준비의 시기가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갈 준비를 하는 시기로 만들어주겠다.” 다짐한다. 이런 교육철학이어야 한다. MSMP(Miracle of Sixty six day Melting Pot ; 66일간의 신입생 교육 초기 적응화 프로그램)은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라면 벤치마킹할 프로그램이다.

 

분투기인 까닭에

1장 : ‘교육 불모지에 뿌리내리다.’에서 명문고 프로젝트나 귀족학교가 아니며, 몸집만 큰 나이가 아닌 예비 성인을 기르기 위해 대학을 넘어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고, 공부만이 아니라 미래를 가르치기 위해 3강 3무 학교, 교직원 회의 문화 개선의 사례를 만날 수 있다.

2장 : ‘66일 기적의 용광로에 열정을 태운다’는 이론과 실천이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신입생들은 66일간 기숙사 생활을 통해 휴대폰, 인터넷, 군것질, 게으름, 불규칙한 생활습관, 저질 체력을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준비를 마친다.

3장 : ‘체력을 바탕으로 예술의 혼을 심다’는 <운동화 신은 뇌>를 읽은 전 교사가 체육 선생님과 함께 ‘모닝스파크’를 운영한다. 모닝스파크는 아침 6시 20분부터 40분간 기숙사생 모두가 참여하는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다. 유도, 검도, 태권도 중 하나를 배우고, 악기를 배워 콘서트를 연다.

4장 :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든다’는 세계에서 인사를 가장 잘하는 학교, 전교생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는 교사, 80시간 봉사활동, 품격있는 학생이 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5장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한다’는 사교육이 필요 없도록 자기주도 학습에 의한 명품수업이 이루어지고, 적게 가르치고 많이 배우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사레를 볼 수 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1인 1능도 주목된다.

6장 : ‘꿈을 찾아 내 삶을 설계한다’에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려는 1인 5행, 진로교육, 위인 페스티벌, 17시간 진로 직업 체험 프로그램, 진학과정별 디플로마를 배울 수 있다.

 

독서노트에 여러 가지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내용, 효과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책을 읽어보고 가능하다면 학교 방문도 해보면 좋겠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학교장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할 분투기다. 교육은 머리띠 두르고 떼를 지어 소리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여는 교육>은 글로세움에서 2019년 4월에 본문 271쪽 분량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연산중학교  교장 선생님께 큰 고마움을 드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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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책의 정신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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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가? 나는 잘 팔리는 책과 좋은 책은 다르다고 본다. 팔리고 안 팔리고는 시장과 돈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물러나서, 좋은 책과 많이 읽는 책도 다르다고 본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카프카의 말대로 의식을 깨우치게 하든, 지식을 얻든,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좋은 책이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때로는 감춘 슬픔이 보여 안타까운)을 보고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분의 책이다. 이미 그의 글에서 <본성과 양육>,<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사 읽었다. 좋은 책을 추천하는 안목을 믿고 강창래님이 2013년에 내놓은 <책의 정신>을 읽는다. <책의 정신>은 메타북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 행위는 무엇인가, 책에 담긴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룬 책"이 메타북이다." 강창래님의 말이 글로 남아있다. 쉽게 말하자면 메타북이란 ‘책에 관한 책’이다.
졸저 <독서로 말하라>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간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실천 기록이다. 이런 독서의 기쁨을 느끼기에 <책의 정신>은 독자에게 좋은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커피 한잔 마시며 읽어 교양과 상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말한 달콤한 독서라면 세 가지를 충족하여야 한다는데, 두 번째 ‘독후감을 끝낼 때’가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공유’의 정신에 공감한다. 첫 번째 ‘즐겁고 행복한 일’은 그렇기도 하고, 배우려 정독할 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첫 번째 이야기,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대혁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보다 그의 연애 소설 <신 엘로이즈>가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계급과 상관없이 섹스가 ‘호환’되는 것이라면 지배계급 역시 하층민과 같은 종류의 인감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귀족들만이 천부적인 특권을 가진다는 사회제도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p.57) 이런 걸 알고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나는 교직을 떠났으니 다행이다. 푸르노그라피의 역사와 계몽사상가 테레즈, 포르노그라피의 긍정성에 대한 글도 재미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는 “어떤 종류의 고전은 원전 읽기보다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p.104)고 말한다. 루터의 경직성, 갈릴레오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할, 번역의 중요성, 노이즈가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세 번째 이야기, ‘고전을 리모델링 해드립니다’에서는 고전은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란 소크라테스의 글이 남아 있지 않고, 해석이 남아있어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논어>도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지닌다. 고전은 시대에 맞는 것에 편집자의 의도가 담겨 있기 쉬움을 주의하자고 한다. 예로 이 땅에서 ‘악법도 법이다.’가 악용된 사례를 보여 준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보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를 더 읽었으니 다행이다.(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제자 플라톤의 기록에서 존재하고, 크세노폰이 기록한 소크라테스가 덜 알려졌음을 예로 들었다.) <논어>가 싱겁다는데,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로 그 맛을 알아보려고 주문한다.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는 <책의 정신>에서 약 50% 비중(20개 챕터 중 9개다)으로 다룬다. 본성과 양육이란 역사적 갈등과 교육, 심리학,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을 정리한다. 양육이 대세인 시대(사범대학, 82학번)에 배웠으니 강창래님이 소개한 <본성과 양육>은 정독하며 흩어진 퍼즐을 맞춰보는 기쁨을 느꼈다.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윤리 도덕 교사, 세계사 교사뿐만 아니라)이라면 읽어 보길 바라는 책이다. 베스트 셀러였던 리처드 디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그리고 <진화 심리학>은 물론 최재천 교수의 번역서인 <통섭>까지도 본성에 치우쳐 있음을 알게 된다. <본성과 양육>을 읽지 않았다면, 앞 네 권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하거나 모르고 지날 수 있다.
마지막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은 이야기 제목에 딱 맞는 이야기다. ‘책은 지혜이지만 적의 책은 두려움이다’는 관점에서 책의 학살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21세기에도 진행되는 일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방화는 서구에 의해 윤색됐을 거라는 이야기, 17세기 이전의 문맹과 책의 권력화, 20세기 책의 학살, 도서관은 감옥일 수 있다는 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다섯 가지 이야기가 저자의 혼자 생각을 풀어놓은 것이 아니다. 모두 관련된 책을 읽고, 근거를 대며 쓴 글이다. 저자 이력(1995년에는 <전문가가 투표로 선정한 한국 최고의 대중문화기획자-출판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을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 너무 늦게 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책의 정신>은 알마에서 2013년 12월에 본문 375쪽 분량으로 세상에 나왔다. 광주에 사시는 S태동 선생님이 독서노트를 보시고 읽어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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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ㅣ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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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

2019.7.16. 화

 

17세기 프랑스 모랄리스트 프랑스아 드 라로슈코프의 ‘잠언과 성찰’을 번역한 책이다. 시공간이 달라서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의 잠언과 솔직한 그라시안,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글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시공간을 떠나 울림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이 기준에 비출 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는 부족하다. 인간의 심성에 대한 사색과 성찰의 결과가 염세적이라는 역자의 평가 보다, 독자의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504개의 잠언 중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를 골라본다.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우리 마음대로 생명을 연장할 수 없듯이 열정도 그렇다.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명하지만, 현재의 불행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우리에게 의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정신력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우리에게 결점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에 눈이 머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에 새로운 눈을 뜨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다. 행동에 품위가 있어야 하듯이 생각에는 상식이 있어야 한다. 침묵은 자신 없는 인간이 택하는 가장 안전한 방책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억력의 부족에 투덜대지만 판단력의 부족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는다.

 

인간과 일은 각기 고유한 관점을 갖는다.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가까이에서 보아야 할 것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야만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상대에게 아첨하는 일이 절대 없다고 일부러 말하는 것 역시 아첨하는 것이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자신이 누구보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강이 바다에서 모습을 감추듯이 미덕도 이익 앞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행을 미리 염려하는 것보다 당장의 불행을 참고 견디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이미 손에 넣은 명예는 앞으로 명예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담보물이다. 선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은 악인이 의외로 많다.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에게 가하는 학대는 사랑하는 상대의 매정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면 무작정 비난해 댄다. 우리는 온전히 백지상태로 새로운 연령층을 맞는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세월을 살았어도 새로운 연령층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법이다. 재주를 지닌 어리석은 사람은 있어도 판단력을 지닌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우리가 게으른 것은 육체가 게으른 이유도 있지만 정신이 게으른 이유가 더 크다. ”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는 나무생각에서 2003년 초판이 나왔고, 나는 2016년 재판 1쇄를 읽었다. 본문 252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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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 - 주자학의 마음훈련매뉴얼 ㅣ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 1
권오영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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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6.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자학을 본래의 이념대로 자기실현을 위한 방법적 지침으로 접근하고, 동서의 철학적 자원을 ‘삶의 기술’이자 ‘지혜의 과학’으로 읽으려 시도한다. <心經> 을 내놓은 뜻이다. 다섯 명의 연구자들이 <심경>을 다각도로 접근했다. ‘체제 점검과 기본 내용 해설’, ‘16세기 조선에서 심경이 가진 정치적 함축과 사상사적 의미’, ‘주자학의 본체론 과 공부론에 대한 철학적 질문’, ‘‘經 수행’의 현대적 적용 가능성‘, ’비교철학적 관점에서 서양은 심을 어떻게 보나‘ 등을 담고 있다. 한형조의 ‘<심경>의 구성과 내용, 그리고 조선 유학의 논점’은 <심경>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이창일의 ‘경 수행과 그 현대적 적용’을 읽어 주자학에서 공경할 敬 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비교철학 부문에서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탓에 흥미를 갖기 어렵다.

 

<심경>은 13C 주자의 제자인 진덕수가 四書와 三經, 북송 유학자들과 주자의 잠명(箴銘) 가운데 마음의 수련에 관한 대표 구 37조를 골라 만들었다. 여기에 15C 명대 황돈 정민정이 진덕수의 <심경>의 주석에 손대지 않고, 보충하는 방식으로 주를 덧붙여 <심경부주>를 만들었다. 이후 조선에서 퇴계가 비평적 <후론>을 덧붙여 유포시켰다. 결국 조선에서 유통된 <심경>은 <심경부주>에 퇴계의 <심경후론>이 병기된 판본이다.

 

“<심경>은 마음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수양해야 하는지를 적은 도학의 매뉴얼이다.”(p.12) 한형조는 삼경이 역사와 문학, 우주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사서는 사회관계에 치중하는 외면적인 성향을 띠고 있고, 비록 주자의 <근사록>이 심학에 집중했으나 이론적 체계라서 ‘훈련으로서의 심학’을 다룰 무엇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평가한다. 그 결과로 <심경>이 나온 것으로 본다.

 

순 임금과 우 임금이 주고받은 16글자인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 人心은 위태롭고, 道心은 은미하다. 다만 精하고 또 一하여, 삼가 그 中을 잡으라)을 心學의 기반에 둔다.

진덕수의 심학과 정복심의 심학도는 ‘人心과 道心을 가르고, 인심을 유의 제어하여 도심을 함양해나가는 것을 心學의 요점으로 정의하고, 그 방법으로 지속적 敬을 제시했다.’(p. 28) 경을 중심에 두고 심학의 훈련 방법으로 ‘알인욕(遏人慾)’ 라인에 중용의 신독, 논어의 극복, 대학의 심재, 맹자의 구방심, 대학의 정심, 맹자의 부동심을 배치하였다. ‘존천리(存天理)’에는 중용의 계구(戒懼), 맹자의 조존(操存)과 심사(心思), 양심(養心)과 진심(盡心),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를 배치했다. ‘알인욕(遏人慾)’은 차단해야 하고, 존천리(存天理)는 발양에 중점을 둔다.

 

정복심의 ‘心學圖’를 두고 퇴계(68세)와 율곡(33세)가 벌인 논쟁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수년 전에 퇴계의 <성학십도>를 읽을 때는 심학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형조의 해설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퇴계는 심학도를 그린 정복심(원 인종 때의 인물)의 의도를 수용하는 자세로 공부했고, 율곡은 大人心, 求放心, 心在와 心思의 위치를 놓고 퇴계를 해명을 요구하거나 비판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를 읽는 것 같은 분위기다. 21세기를 살면서 우리는 퇴계, 율곡, 고봉이 편지로 나눈 논쟁의 멋을 절대 느끼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이다. 조선 지식인의 품격을 당쟁이란 범주에 넣고 비난만 해선 절대 안 될 일이다. "퇴계와 율곡은 사단칠정에서만 아니라 심학의 텍스트를 보는 안목과 해석의 방식에서도 매우 다른 노선을 걸었다."(p.34) 율곡의 본심은 공부를 ‘알인욕’과 ‘존천리’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단칠정론에서 理發-氣發을 인정하지 않고 氣發만 인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율곡은 퇴계와 달리 人心도 道心도 하나라고 본다.

정리하면 퇴계는 인간의 마음에는 인심과 도심이 있어 기원에서 인심과 도심의 갈림길을 찾는다. 理氣二元論/主理論이다. 율곡과 고봉은 인간의 마음은 하나로 본다. 인심과 도심의 갈림은 추후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理氣一元論/主氣論 이다.

 

<심경>에 대한 퇴계의 평가 “심경을 얻은 이후에야 비로소 심학연원과 심법의 정미함을 알겠다.”, “초학이 공부하는 바탕은 이 책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p.65) 이처럼 조선유학사에서 이황에 의해 <심경>이 성리학의 주요 학습서로 인정되었다. 17세기에 <심경>은 조선 학계와 정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책으로 떠 올랐고, 중반 이후에는 <심경석의>를 지은 서인 송시열과 남인의 당쟁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심경>의 핵심은 敬으로 불교의 禪定에 대체할 만한 것이었다.(p.108)

권오영은 “조선 사회가 궁극적으로 富國을 이루지 못해 근대화에 실패한 이면에는 이같이 天理를 보존하고 善을 확충하기 바란 반면, 人欲을 막고 이를 멀리하는 <心經>의 理學 지향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p.112) "주자학의 본체론이 理 한 글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공부론은 敬 한 글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p.116)

 

무위란 ‘작위하는 바 없음’으로 주체도 없고, 대상도 없고, 행위도 없다.

거울은 미래에 대한 기대, 과거에 대한 집착 없이 늘 텅 비어 있어 다가오는 물들을 비출 수 있다. 거울 같은 무위, 무심, 무욕, 미발의 마음이 곧 성인의 마음이다.

敬 공부, 경 수행에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첫 번째다.

- 선불교의 일화 : “자네는 아직도 젊은 여인을 업고 있나? 나는 강을 건너자 업은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 도가의 일화 : 공자가 묻기를 “물에서 헤엄치는 데에도 도가 있는가?” “없다” 자신이 헤엄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 주자의 분석 : 조금이라도 상황과 사물에 얽매이면 마음이 곧 동요하고 만다. 일이 생기기 전에 마음에 두거나, 일을 마치고 가슴속에 두는 경우, 일에 응할 때 뜻이 한 곳으로 치유치는 경우가 사물에 얽매이고 속박당하는 것이다.

 

敬聽한다는 것은 진지함, 주의 깊음, 사려 깊음, 공감하고 동정하고, 타인 속으로 향하며 부드럽게 침투하는 배려의 마음으로 듣는 것

 

‘주자학의 마음 훈련 매뉴얼’이란 부제가 붙은 <심경>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57쪽 분량으로 2009년 초판을 내놓았고, 나는 2012년 인쇄본을 읽었다.< 심경>의 해설서라고 봐야 한다. 카피처럼 ‘마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수양해야 하는가’를 알려면 <심경>보다는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심경> 본문은 분량이 원주를 합쳐도 28장뿐이라 너무 간략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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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집 -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 ㅣ 한국고전선집
김창협 지음, 송혁기 옮김, 최채기 감수 / 한국고전번역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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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 8월에 독서 시간을 줄여야 할 일로 마음이 급하다. 어제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책 읽기를 독서 노트로 남기며 매듭을 짓는다. 김창협의 글을 모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내놓은 <농암집>을 이틀에 걸쳐 읽고 새긴다. <농암집>을 통해 조선 시대 사대부가 지녔던 정신의 깊이와 품격을 만날 수 있었다. 김창협은 후학이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더불어 격을 견줄 수 있다고 평한 17세기 정통 유학자다. 논변, 편지글, 제문, 상소 글, 묘지문,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글 등을 담았다.

하나,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글에서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과 퇴계의 이기이원론을 조목조목 평가한 글에서 후학들이 김창협의 수준을 율곡과 퇴계 못지않게 평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유가의 도를 앞장서서 밝히고 학문이 순수하고 덕을 갖추었으며 성현의 깊고 은미한 뜻을 드러내 후세를 열어 준 공으로 말하자면 정암, 퇴계, 율곡, 농암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p. 322) 이는 18C 말~19C초 오희상이 평한 것이다.

둘, 문장에 대해서 김창협의 시를 읽으면 “마음속이 영롱하고 투명해져서 양생 양생할 만할 뿐 아니라 무병장수하기에도 충분하다. 속세의 때가 낀 오장육부를 깨끗이 씻어내어 세속의 명리를 제거해 줌은 말할 나위도 없다.”(p. 325)

 

6개 장으로 편집된 <농암집>은 ‘김창협은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김창협은 병자호란 척화파 대표인 김상헌의 후손으로 숙종에게 아버지와 스승 송시열을 잃었던 서인 계열의 유학자다. 이후 처사의 삶을 살았으나 정교한 사유와 치밀한 논리, 섬세한 언어 구사로 주자학의 단계를 한 단계 심화시켰다고 평가된다. 일제 이후 근대 학문의 시각에서 사라진 17세기 이후 주자학 발전은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성과라 한다. 또한 문장가였고,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여 18세기 동아시아의 지적 수준의 최고봉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가족사는 슬픔의 연속이어서 부친과 스승은 사약을 받았고, 두 아들과 두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굴곡진 김창협의 삶에서 “정치적 좌절과 개인적 슬픔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산수와 학문의 즐거움 덕분이었다.”(p.19) 好學했던 공자와 농암의 삶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평생 공부다.

 

덧붙인 雜多 :

장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것은 근대 교육에서 상정하지 않는다.

책선해 주는 벗이 있어 : 책선 責善이란 잘못을 지적하고 좋은 일을 권하는 것, 부모와 자식 간에는 해서는 안 되고 절교가 가능한 벗 사이에서나 해야 한다.

시험에 떨어진 동생에게 : 분발은 용기를 끌어 내고 실패는 성공의 계기가 된다. 분발하지 않으면 용기를 북돋을 수 없고, 실패해 보지 않고서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버들잎은 백발백중할 정도로 치밀하게 공부한 이들과 비교한다면 어림없는 실력이다. 평가 기준에 좌우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실력을 넉넉하게 키우고 결과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야말로 인을 행하는 자세이며, 과거 시험 공부는 그런 자세를 기르는 과정으로 의미를 지닌다.

성악설 비판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맹자를 직접 만나 토론할 기회도 없었고, 또 시대를 내려와 그와 동시대를 살며 설을 듣고 자신의 오류를 철회할 기회도 가지지 못했다.

금강산 유람기 :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이내 몸이 이 산 안에 있어서라네. (蘇軾)” 금강산을 보고서 반평생 보아 온 산은 모두 흙무더기나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다. 18세기 후반 몇몇 가문을 중심으로 증가한 금강산 유람은 18세기 이후 유행한 풍조였다.

환경을 탓한 것인가 환경을 바꿀 것인가 : 처지를 한탄하고 근심하는 것은 뜻을 어떻게 갖는지 달려 있을 뿐이다.

고관 자제의 곤궁한 은거 : 자신이 선택하고 나서 또 그것 때문에 후회한다면, 목욕하는 자가 젖기를 꺼리고 불 쬐는 자가 뜨거움을 꺼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부귀와 빈천 역시 그저 거기에 맞춰 적절하게 대처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는 이를 편안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다.

나귀를 빌려주어 고맙네 : ‘건네준 솜옷만도 따스하다’- 범저와 수가의 고사

자신의 깨달음이 없으면 : “사람의 마음은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되니, 욕심이 일어날 때를 만나면 반드시 철저하게 이겨 내야 한다. 이는 뱃사공이 배를 젓다가 험한 여울을 만나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저어 올라가야지 조금도 밀려서는 안 되는 경우와 같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수백 수천 보를 떠내려가 다시는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이곳을 지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 93)

祭亡妹文 : 네가 오래 살고 복을 누리리라는 것을 마치 어음 가지고 가서 꿔 준 돈 받는 것처럼, 좋은 곡식 심어 두고 가을걷이 기다리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 : 평소에 제대로 가르치고 양성하지 않으면서 나이가 차기도 전에 관례를 올리고서는 관례만 끝나면 바로 어른으로서의 덕이 완성되기를 바라니 이렇게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사라지고 ‘어른다움’의 의미도 퇴색해 가는 오늘.

慶筵講義 : 임금이 질문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Q: 왕의 학문이 높아 남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 A: 안연의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질문하고, Q: 신하의 학문이 보잘것없어서 질문할 가치가 없어서? A: 종을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소리가 나듯 자꾸 던지다 보면 그래도 그것이 촉발하여 깨닫는 실마리가 있을 수도, Q: 애초에 의문점을 보지 못해서? A: 만약에 의문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참으로 의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문점을 아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 만약 이와 같다면 매일 경연을 한다 해도 끝내 학문의 진보가 없을 것.

어리석은 뒷집 부인의 충고 : ~. 그러나 ~. 하지만 ~. 이제 ~.

아버지의 묘표를 스승에게 부탁하다 : 김창협은 사약을 받은 아버지의 묘표를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한양으로 압송 중이던 때에 작성하고, 송시열은 장성에서 묘지문을 지었다. 닷새 뒤 송시열은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으니 김수항의 묘지문이 송시열의 마지막 유작이다. 평상심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김수항, 그리고 자신 역시 죽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먼저 간 동지의 묘지명을 써 주는 송시열의 모습에서 오늘날 쉽게 만나기 힘든 거대한 인간상을 마주한다. (p. 171)

마음을 잠재우다 : 그림자를 없애고 거울에 비친 상을 없애고 싶다면 잠들어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폭포를 찾아서 : 아름다움이란 본디 사람에게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다.

벼슬할 수 없는 이유 : 엄정한 형식과 치밀한 논리를 갖추면서 ‘감정의 절절한 토로’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기’가 조화를 이룬.

아버지 대신 지은 동생의 묘지명 : 어떤 슬픔은 더 큰 슬픔 앞에서 차라리 즐거움(슬픔이 한없이 증폭된다)

조선의 문장을 평하다 : 구상에 기초하고 구조를 수립하며, 제재를 연결하고 수식을 덧붙이며, 마지막으로 법칙과 규례에 엄격하게 맞추었다.

시 벗 아들을 잃다 : 내 모습이 가지 없는 썩은 나무 같고, 불기 없는 재와 같다. 이런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었겠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밥을 찾고 추우면 옷을 찾고 병이 들면 약을 찾으면서 구질구질하게 수명을 연장해 왔으니, 나의 무딤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지나치게 슬퍼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생각이야 어찌 안 할 수 있겠느냐? 천명과 인사는 본디 어쩔 수 없는 것

덧붙일 말을 잃을 만큼 슬프다.

퇴계와 율곡을 넘어서 사단과 칠정을 논하다 : p.283~291에서 이이와 이황을 보완하다,

청의 지배와 중화 문명 : 가문이 척화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청나라가 이적의 나라라고 해서 그 학술 문화마저 무시하고 아예 보지 않으려는 편협하고 경직된 시각을 넘어서서, 오히려 우수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의식을 가졌다.

조선의 학자를 평하다 : 허심탄회하게 이치를 보지 않고서 다만 先儒의 설로써 남을 압도하여 입을 열지 못하게 한다면 강학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농암집>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2016년 8월에 338쪽 분량으로 새 옷을 입혀 내놓았다. 

"사람의 마음은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되니, 욕심이 일어날 때를 만나면 반드시 철저하게 이겨 내야 한다. 이는 뱃사공이 배를 젓다가 험한 여울을 만나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저어 올라가야지 조금도 밀려서는 안 되는 경우와 같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수백 수천 보를 떠내려가 다시는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이곳을 지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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