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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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유튜브를 통해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파친코>를 읽고 싶었다. 문장이 짧아서 좋다. 원고 작성 기간만 생각한다면 700여 남은 쪽을 쓰는데 30년이라니. 아마도 소설을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 확인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훈이와 양진이 낳은 선자를 거쳐 노아, 모자수의 솔로몬에게 이어지는 피에 고한수와 이삭의 피가 섞이고, 요셉과 경희의 도움이 이어진다. 니가카에서 북송선을 탄 김창호의 삶도 선자의 삶과 다르지 않겠지. 부산 영도를 떠나 오사카와 요코하마로 이어진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기록한다.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묻힐 사람에겐 남의 이야기로 여길 수 있을 테다. 미국의 독자들이 더욱 공감하는 까닭은 대다수가 이민의 역사를 공유하기에 이민자의 아픔을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작품 해설과 옮긴이의 말이다.

재일교포들의 슬픈 디아스포라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재일교포의 삶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기형적 삶의 상징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민자의 설움

재일교포들의 눈물과 희망 그리고 극복의 역사

이주를 넘어선 트랜스내셔널리즘의 시대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

차별받는 자이니 세상에서도 빛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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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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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8코스와 9코스를 걷다가 숙소에 들어와 읽는다.

 

과학자가 쓴 소소한 에세이다. 천문학자가 천문학을 안내하기보다는 꾸려가는 삶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일을 텍스트로 바꾸었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삶을 풀어 놓은 행간에서 그의 성실함을 본다. 학위를 받고 긴 시간을 비정규직 행성 과학자로 살다가 교수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앎과 삶을 연결하여 그려 낸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관측보다 측정 자료의 분석과 해석이 천문학자의 주된 일임을 밝힌다고 본다. 1, 2, 4부에 마주하는 일상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풀어두었고, 3부의 천문학 수업만이 천문학에 관련 있고 공개된 명제적 지식을 몇 가지 소개한다.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가 이렇게 살아왔고 여성으로 버텨왔으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방식이라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계몽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희귀한 여성 행성 과학자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성실함이 꾸준히 이어질 때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재확인할 뿐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소소한 이야기라서 지적이 호기심이 강한 독자가 밑줄 치며 읽을 내용은 찾기 힘들다. 천문학자를 꿈꾸거나, 천문학 입문서 격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적합도가 높지 않을 듯하다. 영화 ‘92년생 김지영을 보고, 공감하는 사람과 우리 때는 시집살이와 육아를 포함한 삶이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듯이, 책을 읽으며 느끼고 받아들이기는 독자 나름이다.

읽고 보니 20216월에 17쇄가 세상에 나왔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30, 40대 여성 독자층이 대다수라더니 저자나 출판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타겟팅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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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1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바로 여기 교실에서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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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 핀 백동백꽃

 

타임머신이 내려놓은 강의실에 앉아 있다.

남의 학교 강의실에서 청강하는 중이라 아는 사람 없이 수업에 집중한다.

실루엣만으로는 교수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어도 메시지는 잡음 없이 들린다.

때는 이 땅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들여오던 90년대 초다.

 

강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삶에서 식민지성을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식민지성이란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을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한 사회를 식민지적이라 한다. 풀어보면 삶과 지식이 겉도는 현상을 더 만들지 말자는 목적에 동참하라 한다. 이론에 치우쳐 그 속에 담긴 자신의 삶에 대한 암시를 외면하기, 자신의 삶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글 읽기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기, 책 읽기를 너무나 지겨워하는 것 등은 식민지성을 재생산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때때로 유학파 교수의 강의를 들을 때, 외국은 이걸, 이렇게 한다. 우리는 이걸 못하니 따라 해야 한다는 방식의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간혹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무지개를 좇으라 한다. 이런 사례는 조혜정 교수 친구의 말을 빌리면 오퍼상 역할이다. 오래전에 오리엔탈리즘을 읽으며, 번역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은 그가 오퍼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의 글로 받아들인다.

 

강좌는 문화이론이다. 문화이론이 말하는 이론과 개념은 서양 학자들이 그들의 역사적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직접 적용하기 쉽지 않다. 적확한 예로 든 것을 옮겨본다. “문화상대주의라는 개념은 긴 역사 속에서 이방 문화와 접촉하고 문화 간의 교류가 실제적 효과를 거두어온 서양 역사 제국주의 팽창 속에서 나온 개념이다. (중략) 이 개념을 부모와 자식 세대 간 문화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방법론적 태도로 상대주의의 개념을 부각해 학생들이 감을 잡게 한다

주입식 교육 시스템에서, 받아 암기하는 수준은 명제적 지식에 중독됨으로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가진 사회에 팽배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미 세상은 일상적 삶이 식민화되어간다는 위기감, 중심과 주변, 타자화된 주체와 권위적 설명의 해체 등이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주요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라고 본다. 이 문장은 강의하는 교수가 배우던 시기에 풍미하던 네오마르크시즘이라는 학풍에 따라 연구한 스승으로부터 배운 인식이리라.

 

당신은 누구인가? 등으로 나에게 질문하지 말아 주십시오. 언제나 똑같은 채로 있으라는 식으로 질문하지 말아 달란 말입니다라는 미셸 푸코의 부탁으로 시작해 저자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저자가 계몽주의적이지 않고 명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지라도, 독자는 책을 읽을 때 국정교과서나 성경을 읽듯이 수동적으로 읽지 말고, 저자와 대화하듯 적극적인 행위로서 책을 읽자 한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담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텍스트란 사회화의 과정, 저자와 독자가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강조해왔음을 소개한다. 그러하기에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좋은 책이다.

 

글쓰기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다시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례 이링 페쳐의 누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깨웠는가?를 들어 텍스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적극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는 명제를 풀어간다. 주체적 책 읽기는 시대의 특권이 아니라 짐이자 의무라는 소결론을 내리며.

 

문화 읽기의 어려움을 토론을 통해 느끼게 한다. 맑스와 푸코는 인간 해방에 관심을 두었고, 미셸 푸코는 난해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열어 두었다. 길들여진 사고 경향 탓으로 돌리며 경전읽기방식을 고수하지 말고, 성서에 적힌 것이라면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자근본주의적 습관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번역서를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을 멋지게 표현했기에 옮긴다 누구의 글은 소화불량기가 남아 있는 번역투가 아닌 우리 말로 매끄럽게 쓰여 있어 잘 읽힌다.”(p. 48)

 

30년 전에 이 강좌를 수강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은 현실에 돌아와 든 생각이다. 수강하며 메모한 것을 정리하니 글이 체계적이지 않지만, 결론은 뚜렷하다.

 

#글읽기와삶읽기<1> #조혜정 #도서출판또하나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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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나를 울리다 - 마음을 울리는 지혜로운 고사성어
박찬근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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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분류하는 공통된 기준이 있지만, 독자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구분하기도 한다.

가볍게 읽는 책, 배우려고 읽는 책, 감동을 주는 책, 취업을 위한 책, 시험을 치르려 보는 책, 쓸모없는 책 등

 

저자에게 한학을 공부하는 것과 학생을 가르치는 것 중 본업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대 수준이 거기까지인가?” 라며 웃을 듯하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책 읽기를 주로 하는 나에게 고서, 나를 울리다는 길을 가다 잠시 서서 생각하라 말한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고. 하여 자주 몇 장씩 읽고 읽은 날의 화두로 삼는다. 다시 읽어도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를 옮겨 본다.

 

任重道遠(임중도원)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의 속 내용이 평생을 두고 실천할 ()이라한다. 인을 죽을 때까지 저버리지 못할 책임으로 받아들이니,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라고 풀어준다. 나는 인을 떠올리지 못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잠재능력을 실현하려는 자기실현성을 가진다 보고 있다.

 

獨遠實(독원실) 실제와 멀리 떨어져 있지 마라, 여기서 실제란 자기 마음 속의 현명함으로 이해한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떨쳐낼 때 타인의 지혜와 행동을 보고 나의 기대가 동기화 되는 것이라 할 때 반두라가 말하는 대리강화의 효과일 듯하다.

 

初心(초심)에서 창업과 수성을 말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 권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 동기가 생기면 마지막까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自得爲貴(자득위귀)란 스스로 이치를 터득함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주입식 교육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고, 루소가 말하는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교육, 아동 중심 교육,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을 떠올린다.

 

括囊無口(괄낭무구) 주머니의 입구를 잘 닫아 함부로 내놓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는 의미로 풀어준다. 자기 PR시대를 넘어선지 오래된 우리에게 다시 생각하라 말한다. 말에도 날아가는 말과 새겨지는 말이 있다. 카톡방에 부고 문자가 뜨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수십 개의 동어반복은 클리쎄다. 날아가는 말이다. 동어반복하지 않고 부의금을 보내거나 조문함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리 살고 있다.

 

隨之時義(수지시의) 때가 중요하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은 위기를 통한 비연속적인 성장도 가능하다고 본다. 위기조차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수지시의를 실천하는 일이다.

 

無信不立(무신불립) 믿음 없이는 너도나도 세상 그 어떠한 일도 미룰 수 없다고 풀어준다. 1인 가구수의 증가 속도를 보며 떠올리는 단어다. 수십 세대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지만, 믿음을 만들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다. 국뽕이 차고 넘치는 유튜브에 절도 없는 한국은 믿음으로 가득 채워 만든 세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近思錄을 읽으며 배운 내용을 고서, 나를 울리다에서도 만난다. 서양이나 동양의 차이만큼 같은 점이 적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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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
마크 레빈슨 지음, 김동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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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 컨테이너의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

2022. 12. 7()

우리의 경제 규모 혹은 수준인가가 세계 10위 안쪽에 있다. 누구나 A 대통령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거나, B 대통령 때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거나, C 대통령 때 수직적 문화가 수평적으로 됐다느니 이야기 한다. 현재를 만든 과거 여건, 동력에 대한 논의는 학문의 영역일지 모른다. 경제지리학을 배우며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연결의 경제, 네트워크 경제, 상품사슬, 가치사슬,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GPN)들을 개념화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만난 이야기가 말콤 맥린이 주역이었던 컨테이너화라는 서사시다. 본문 503쪽에 부제가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이라서 평론가는 학문적이라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대서사시다.

 

1950년대 후반 화물 운송 작업은 수백만 명이 종사하는 도시산업이었다. 이야기는 트럭 운송 산업의 거물인 말콤 퍼셀 맥린이 사업을 키워가는 흥미진진한 논픽션이다. 그는 항구, 선박, 크레인, 창고시설, 트럭, 기차, 그리고 수송과정에 대한 모든 부분이 변화돼야 한다고 통찰한 사업가다. (구글어스를 띄우고 책을 읽어가며 지명을 확인하면 공간을 느낀다)

뉴욕의 브루클린이 1971년 무역항으로 누리던 과거의 영광을 뉴저지주의 뉴어크, 포트엘리자베스 항구로 빼앗기고 뉴욕시의 빈곤 자치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밝힌다. 뉴욕의 발전과 정체 과정에 고속도로의 영향이 있었으나 컨테이너가 이끈 변화는 뉴욕 제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뉴욕은 컨테이너 산업이 도입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범위에 걸쳐 경제적 타격을 받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해운 산업 거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하역 인부이자 철학자인 에릭 호퍼의 이야기가 나와 반갑다(p.178) 항구의 기계화 및 현대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하역 인부들과 노동조합은 선사와 힘겨루기를 다룬다. 1960년대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읽기 능력도 수학 능력도 없었다. 그저 생계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학력만 있었다. 당시 생산 라인에 있던 미국 노동자들의 반이 10학년의 학력이었다고 한다.

 

컨테이너 화물 운송에서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컨테이너의 표준화 과정이다. 컨테이너의 크기에 대한 철도회사, 트럭 운송회사, 해운회사의 표준이 달랐다. 1958년 미국 내에서 컨테이너의 1차 표준화의 기준은 너비 2.4m, 높이 2.55m 미만, 길이 문제는 보류였다. 1959, 1961, 1964, 1965, 1968, 표준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 간 협의를 거쳐 1961년에 길이 3m, 6m, 9m, 12m 규격에만 정부지원금을 주었다. 1968년에 길이 6m1 TEU로 정한다. 이 과정에서 말콤 맥린은 기차, 트럭, 선박은 모두 같은 사업체, 즉 화물 운송 산업임을 파악했고 회사 경영 방침으로 삼는 안목이 있었다. 철도가 늦게 복합 운송에 합류한 이유는 lock in 효과 때문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철도의 피기백(바퀴달린 철도 화물 수송용 대형 컨테이너) 방식이 3년에 30% 성장하는 실적을 올렸으니. 결국 트럭에 내륙 운송 수단의 영광스런 자리를 내줘야 했다.

 

컨테이너 보급의 막강한 후원자는 베트남 전쟁을 치르던 미군이다. 1969년 기준, 54만 명이라는 미군을 먹이고 재우고 생필품을 보급해야 했다. 말콤 맥린의 기업가적 감각은 베트남에 화물을 내리고 가는 텅빈 컨테이너선을 일본에 들러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다. 1968년이면 일제 TV, 스테레오를 컨테이너에 가득 채워 태평양을 건넌다. 1950년대에 미국 해운업은 기차와 트럭의 맹공격으로 쓰러졌으나 컨테이너 상선이 정박하는 뉴어크, 잭슨빌, 휴스턴, 산후안과 푸에르트리크는 번창한다. 또한 컨테이너화는 지역적 한계를 탈피할 기회를 주어 서부의 시애틀,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가 신식 부두를 건설해 성장을 따라간다. 유럽에선 런던과 리버풀은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이 줄고, 로테르담이 빠르게 성장했다. 아시아에서 요코하마, 고베, 도쿄, 홍콩이 항구의 컨테이너화에 동참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후 전폭적인 투자로 동참했고, 2005년에 일반 화물 취급 규모 세계 1위가 되었다. 5,000군데 국제 회사가 싱가포르를 화물 무역 중심지로 사용했다.

 

1969년 컨테이너 화물 운송의 아버지 격인 말콤 맥린은 시랜드사를 완전 매각한다. 60년대 말 70년 대초가 되면 전쟁 잉여 선박인 군함을 개조하거나, 일반 상선을 부분 개조한 것에서 벗어나 순수 컨테이너 화물선이 주류를 이룬다. 한편, 컨테이너선의 폭증은 해운사 간 운임요율 전쟁을 유발한다. 여기에 오일 쇼크까지 겹치자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말콤 맥린은 1977년 그의 주식을 모두 팔고 돼지농장을 만들었으나 돈이 되지 않았다. 1978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는 해운사를 새로 인수한다. 규모가 더 크고, 속도는 좀 느렸던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쳤으나 1986년 회사는 파산한다. 타이완의 에버그린 해운선사는 1982년에 2,700 TEU의 컨테이너를 싣고 세계 일주 화물 운송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후 해운업계는 더 큰 컨테이너 화물선이 건조되고, 1분에 1개 컨테이너를 옮길 수 있는 대형 크레인이 속출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컨테이너 화물 운송비를 좌우하는 요소는 하역비와 화물을 배송하고 빈 상자로 돌아오는 경우 맡아야 했던 재정 부담 등의 고정 경비였다. 1969년 제2세대 화물선의 디자인으로 비용은 낮아지고, 70년대 초반 화물 운송 능력이 브레이크 벌크 화물선의 실적보다 4배가 늘었고 속도로 빨라졌다. 70년대 오일 쇼크는 업계에 충격이었다. 화물운송비 파악은 쉽지 않으나 정기선인 컨테이너선과 비정기 벌크 화물선인지가 중요했고, 환율, 인플레이션, 연료비 등의 요인이 작용한다.

 

1980년대 ‘JUST IN TIME 시스템’(적기생산방식)은 경제적 효율과 품질 향상을 이루어낸다. 이는 컨테이너 화물 운송 없이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JIT가 수월해졌다. 컨테이너 화물선은 세계 경제를 연결한다. 경제의 세계화, 노사 관계와 고용, 통상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한민국이 무역 국가로 성장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단순한 12m 길이의 직육면체 BOX 컨테이너가 낳은 수많은 결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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