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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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원제 : BIG BUSINESS AND HITLER
2023. 4.1(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블랙 호크 다운,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 위워 솔저스, 라인언 일병 구하기 등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손에 꼽는 영화다. 역사는 왕조사, 경제사 문화사가 주류겠지만 미시사에 주목하는 연구도 있다. 밀덕이 선호하는 영화나 미시사 연구는 ZOOM IN의 관점으로 전쟁과 역사를 본다. 나태주의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표현처럼 ZOOM IN 하여 세상을 보는 것이 ZOOM OUT 하여 보기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ZOOM OUT 한 책은 비교적 각주와 참고문헌이 방대하다.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라는 60여 쪽이 달하는 주와 참고문헌으로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영화가 다룬 것과 다른 차원의 관점을 보여 준다. 거대 기업가, 금벌(金閥), 재계로 부를 수 있는 자본은 전쟁에서 수익을 크게 얻기에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종전보다 전쟁의 지속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전쟁을 만든다는 풍문이 사실이라면 스매들리 버틀러가 서술한 “전쟁은 사기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밑줄 치고 메모한 내용이 많은 까닭은 기존의 관점과 다른 각도, - 2차대전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전체주의 파시즘과 나치즘의 대결, 혹은 식민지를 갖지 못해 산업화의 한계에 직면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도발이 빚은 거라는 –에서 서술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문맥상 자본주의의 속내를 까발리는 내용이 적지 않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장 폴 샤르트르가 “부자들이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그로 인해 죽는 이들은 빈자이다”. 라 말한 것도 이 책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대 자본가들은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 평화라는 이상을 위해 노력한다. 전쟁을 통해서 더 높은 수익이 생긴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전쟁의 신 마르스를 숭배할 것이다. 미국 자본은 초기 단계에 히틀러를 지원했다. 미국 기업들의 공급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전격전은 결코 실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포드는 쾰른에 있는 포드-베르케라는 자회사에서 자동차를 생산 공급했다. 미국 자본가들은 독일 자본가들이 나치스에 협력했던 사실을 용서하고 또 망각함으로써, 자신들이 협력했던 사실 또한 스스로 용서하고 은폐했다. 전쟁이 미국의 대기업과 대형은행에 믿을 수 없는 만큼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저자는 지구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미국 재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서문에서 독일과 미국의 기업과 은행, 즉 양국의 재계가 히틀러와 맺은 관계를 고찰한 것이라고 밝힌다.
~~~~ (여기까지만 읽어도 주제는 파악할 수 있음) ~~~~
열등 민족이란 용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진화 심리학」,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에서 밝힌 사실이다. 우생학은 미국에서 독일로 수출된 개념이다. 히틀러가 유대인과 집시를 상대로 갖은 비극을 저지르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히틀러의 재무장 프로그램은 수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한 것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클라우스 가울에 따르면, 독일 노동자들은 1933년에 주당 평균 42.9 시간을 일했지만, 나치가 통치하던 1939년에는 47시간 이상을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전쟁 기간에는 56~58시간 정도 일해야 했다(p. 138) 2023년 한국 주당 69시간이란 정책변화 조짐은 어떤 의미인가?
독일 재계가 히틀러의 집권을 도운 것은 사회주의 노동당 당수라는 벼락출세한 천박한 인간에게 활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득권층, 가톨릭교회, 공산주의에 대한 우려를 한 사람들이 판단 주체였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1930년대~40년대 유럽대륙 모든 나라의 대자본가들은 파시즘에 매혹되어, 파시스트의 집권을 돕고, 파시스트 정권이 추진한 퇴행적인 사회, 경제 정책, 범죄, 전쟁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달려들었다.
미국은 1차대전 기간 은행과 기업 금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자본을 투자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미국 언론은 다수의 미국인을 상대로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히틀러의 비난은 정당하다는 식으로 독일 친화적인 관점에서 보도했고, 독일과 미국 자본의 상호 진출 규모는 방대했다. 대다수 미국인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혐오했으나 미국 재계의 주요 인사들은 파시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산 진영애 맞서는 자본주의 진영의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헨리 포드, 듀폰 가문, 록펠러 가문’ 등 수많은 미국 기업가에게 심정적,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히틀러의 재무장 프로그램은 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었고 미국 기업의 독일 자회사도 노다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전쟁을 준비하며 비축한 석유의 상당량은 미국 석유 트러스터가 공급했다. 포드의 포디즘을 통한 트럭 생산, 고무공급, 여러 기업의 엔진 부품, 크랭크축, 자동 조종장치, 자이로스코프 나침반, 대공 방어용 기술 등의 장비가 판매되었다. 미국의 대공황을 끝낸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p. 241)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성공 결과가 아니란다. ‘루스벨트(독일식 로젠 펠트)보다 히틀러’라는 소제목을 달아 미국 기업가들이 히틀러를 좋아하고 높이 평가한 이유는 헨리 포드의 지독한 반유대주의, 미국의 우생학적 조치, 미국 재계의 반사회주의, 반유대주의, 반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쟁에 필요한 많은 차량과 비행기는 제너럴모터스와 포드의 독일 자회사에서 생산되었다. (p.258) 통신장비, 기관총도 독일 내 미국 자회사에서 생산하였고, 필수 원료인 석유와 고무의 비축도 지원했다. 미국의 조력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원했던 전쟁 기간에 필요한 탱크, 비행기, 트럭을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기대여법(LEND-LEASE)에 따라 미국은 영국에 전쟁 물자를 신용으로 제공할 수 있었고, 영국은 이 막대한 빚은 2006년 12월 29일에야 완전히 갚을 수 있었다(P.269) 역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일본의 배를 채워주는 일임이 명약관화하다. 미국 대기업과 은행가들은 히틀러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재계가 원한 것은 전쟁이 가능한 한 오래 지속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지켜보며 쉽게 끝나지 않을 거로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은 1941년 11월에 소련과 무기대여 협정을 체결했다. 저자는 ‘소련의 승리는 미국의 대규모 원조 덕분이다’에 대한 논란을 제기한다. 미국의 원조는 소련의 전쟁 물자 총생산량의 4~5%에 불과했고, 이것도 전쟁 후반기에 영향을 미쳤으며 소련은 이미 경화기와 중화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소련군이 2차대전에서 가장 많이 죽어간 것은 사실이다.
히틀러가 1941.12.11.(진주만 기습은 1941.12.7.)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미국 기업들의 독일 내 투자는 어떻게 되었나? 상식에 반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미국 기업들이 독일 내 해당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실제로는 나치스가 미국 기업의 지사 공장을 몰수한 적도, 미국 본사가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적도 없단다. 미국 기업들은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 등 중립국 내 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거래를 유지했다. 전쟁 기간 내내 사업을 평시와 다름없이 진행했다(p.285)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은 적국 영토에 있는 자신의 자산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관리자의 적절한 관리를 받고 있으며, 전쟁이 끝나면 온전하게 반환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치스도 국제자본주의 체제의 성문율과 불문율을 존중했다. 어릴 적 마셨던, ‘환타’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내 코카콜라가 미국에서 시럽을 수입할 수 없자 1942년 노란색 청량음료를 만들었고, 한 영업사원이 ‘환타’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미국 기업의 독일 내 자회사들은 전쟁 중 엄청남 수익을 실현했고, 이 수익은 나치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소유주와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여기에는 포로를 활용한 강제노동력,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원천이 되었었다.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는 “전쟁은 서로 잘 알면서 서로를 죽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살육하는 사건”으로 정의한다.
루스벨트는 적국이나 적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립국에서 사업활동을 벌이는 것을 허용하는 대통령령을 발령했다. 독일 내 미국 자회사가 경영하는 기업의 공장은 연합국의 폭격에서 제외되었고, 오히려 전쟁 종료 후 독일 내 자회사들은 소소한 피해에 대해 보상금을 받았다.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미군이 점령한 독일지역에서는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미국이 독일의 배상금과 관련해 소련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이 소련과 기나긴 냉전을 시작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대가로 영국, 미국, 소련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합의가 깨지면서 일어난 일이니, 국제 정세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맞는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독일 내 최고 수준의 과학자, 기술자, 관리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동부 독일의 브레인들) 수천 명을 서부로 이주하도록 강제했고, 최소 1,600명을 미국으로 이주해 정부 기관이나 대학,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은 기업에서 일하도록 배치했다. 이로써 미국은 패전국 독일의 가장 중요한 지적자원을 손에 넣은 것이다.
히틀러와 협력한 기업들로는 포드, 제너럴 일렉트릭, 아이비앰, 아이티티, 코닥, 코카콜라 등이 대표적이다.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 수익을 창출하는 탁월한 도구라는 관점은 전후에도 미국 정부가 스페인, 그리스, 터키, 이란, 대만, 필리핀, 아르헨티나, 칠레, 남베트남 같은 국가의 독재 정권이나 그와 유사한 권위주의 정권을 지원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도 언급된다. 책의 결론은 “돈이 말한다(MONEY TALKS)”라는 격언을 언급한다. 독자는 돈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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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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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5.(토)
누구는 성취하는 삶을 살고, 누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누군가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때로는 루저로 보이는 삶을 살기도 한다. 똑같은 삶은 없어 제각각의 삶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정재찬은 “정답이 있다거나 고통이 전혀 없는 인생은 재미와 가치가 없는지도 모른다”라고 쓰고 있다. ‘양변을 여의라’라는 육조단경의 말씀만으로 살아가기도 벅찬 것이 인생이 아닌가.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과정과 결과를 일곱 가지로 나누어 그에 잘 어울리는 시를 읊어가며 인생을 성찰한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다. 차례를 훑어보다가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 ’상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먼저 눈에 들어와 읽는다.
나쁜 일은 깡패처럼 몰려다닌다는 설상가상을 풀어쓴 문장이고,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마의 크기는 온기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누군가가 내 이마를 짚어본 기억과 내가 누군가의 이마를 짚어본 기억이 없음에 온기를 나누지 못한 삶을 깨닫는다. The color of Snow, The Taste of Tears로 표현된, 밥벌이의 대가를 소환하는 이야기에 표현의 힘을 본다.
아흔을 넘긴 엄니의 발톱을 깎아 드릴 때의 느낌을 저자도 공유하고 있다. 어릴 땐 돌봄을 받고, 성장해선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귀를 열고 입은 닫는 것이 건강에 좋으며, 꼰대의 의미를 오만과 올드의 합성어로 본다.
탐식의 즐거움과 절식의 미덕 사이에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며 건강을 이야기한다. 에세이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문장을 발견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들 밑에서 일하던 수많은 요리사가 혁명으로 인해 길거리로 쫓겨나와 개업하기 시작하면서 레스토랑이 유행(p.118)하게 된 거란다. 근대사회 대중문화의 풍요는 평등도 가져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이 대신 보낸 존재가 엄마란 표현은 이 책에도 나온다. 건강과 관련지어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고, 살아갈 나에 대한 긍정으로 풀어본다. 인생은 클로즈 업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롱 숏으로 보면 희극이다.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선재의 붕어빵이란 에피소드와 예수의 기적인 ‘오병이어’를 연결해 배움을 이야기한다. 관찰은 세계의 숨겨진 질서와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이자 삶의 경이를 일깨우는 힘이다. 힘들수록 즐거울 수 있는 것이 工夫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조선 문장가 유한준의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퍼뜨린 유홍준과 같은 맥락이다. 창의성이란 ‘준비된 우연’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며, 하브루타를 한두 번 강의로 전달하고 익히려는 교직 사회의 시도는 헛수고 임을 확신한다. 창의성은 지식을 토대로 발휘될 수 있다. 스캠퍼, 시냅틱스 기법이니 육색 사고 모자 기법, 자유분방, 양산, 비판금지, 결합과 개선이란 브레인스토밍, PMI는 방법일 뿐이다.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다. 장자의 양생주편을 들어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를 노력하라는 해석과 위태롭다는 해석을 병치해 두고 있다.
관계에 관하여,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라며 서로 안아주자 말한다. SNS의 공감은 순기능이다. 성찰은 자기 변혁의 조건이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인지해야 한다. 페르소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하기 위한 마스크, 삶의 기준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지난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은 끊을 수 없는 거다. 정말 가치 있게 써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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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입문
목경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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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 입문
2023.3.12.(일)

   대승기신론에서 대승은 큰 가르침 혹은 전체적인 큰 틀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승은 중생심(衆生心)이다. 중생의 마음이 본래 부처의 마음이고, 괴로움 덩어리인 중생의 모습에서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방법을 설명한다.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신심과 수행이다. 비트켄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읽다가 지쳤던 기억이 되살아나게 만든 까닭은, 대승을 진여, 여래장, 법계란 생소한 용어로 설명하고 이들이 대승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행과 법의 의미, 유위법, 무위법, 유식무경, 제8 식, 제7 식, 일심, 이문, 심진여문, 심생멸문, 염정생멸, 염정훈습, 체대, 상대, 용대 등의 용어는 생소하여 자꾸만 읽기를 중단시키니 철학으로서의 불교 공부가 잘 될 리가 없다. 겨우 훈습의 뜻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원효 대사의 대승기신론소를 바탕으로 풀어주는 책이므로 원효의 높은 수준에 머리를 조아린다.

   제1부는 대승기신론의 이름을 풀어주고, 구조와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준다. 제2부는 대승기신론을 읽기 전에 알아둘 부처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연기법과 마음 작용 간의 관계, 行과 法의 의미, 연기와 열반, 분별과 무분별지 그리고 방편, 일체유심조, 마음의 분류와 제8식, 제7식, 보살의 계위를 다룬다. 연기는 「불교를 철학하다」에서 배운 것이라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연기법에 대한 내용은 자세하지 않다.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가 연기법을 이해할 수는 없게 풀어놓아 아쉽다. 一切唯心造는 대중들이 많이 아는 부처님 말씀이리라.

   다른 사상과 구별되는 부처의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이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한다. 법은 진리를 말하고, 법을 보는 자는 깨우친 자이니 부처님을 본다는 말도 깨우쳤다는 말과 동의어란다. 연기법을 알려면 자신의 견해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법을 ‘세상 만물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고 서로 관계하여 존재한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불교는 마음공부다. 연기법은 마음 작용에 대한 관계성에 중심을 두는 가르침이다.

   12 연기의 지분은 무명(無明 :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 행(行), 식(識), 명색(名色), 6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으로 인해 괴로움을 받게 되니, 수행을 통해 어리석음을 없애면 결국 괴로움이 사라지고 열반을 얻을 거라는 말이다. 행은 사물의 운동이 아니라 마음 작용이다.

   제행무상이란 모든 것은 변한다, 즉 내 앞에 드러난 세상은 내 마음 작용으로 이해된 세상이기에 분별하는 내 마음 작용에 따라 흘러간다는 뜻이라. 법은 세상 그 자체를 말함이 아니라 여러 여건 속에서 마음 작용에 따라 나에게 드러난 세상을 말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마음 작용과 판단 등을 총칭하여 불교에서는 분별이라 한다. 당연히 분별은 각자의 정보와 각자 분석한 조건을 근거로 분별한다. 당연히 그 분별은 절대적이지 않다. 이심전심이란 것은 진리의 세계는 언어로 전할 수 없으므로 쓴다. 마음의 분류 중 제8식과 제7식은 알 수 없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보살의 계위를 표로 정리하고 있으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훈습이란 향을 싼 종이에 향냄새가 스며들 듯이, 마음에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이 스며든다는 뜻이다. 세간의 옷에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사람이 향으로 스며들어 배이게(훈습) 하므로 향기가 있다.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가 쉽게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안내한다.

   제3부가 대승기신론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귀경게, 인연분, 입의분, 해석분, 일심과 이문의 관계, 심진여문, 심생멸문, 대승의 의미와 삼대, 그릇된 집착을 다스림, 도에 발심 수행하여 나아가는 모습, 신심을 닦아가는 부분(수행신심분), 이익을 보여 수행을 권하는 부분, 회향게로 구성하여 핵심내용을 설명한다. 제3부 대승기신론의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게 이해하였으니 메모한 내용은 당연히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중심이다.

   밑줄 친 내용을 옮겨본다. 대승기신론을 쉽게 풀이하면, 대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을 논하는 글, 즉 우리가 믿음을 일으키게 함과 동시에 믿음의 대상에 대승[진여]을 포함한다. 귀경게, 본론, 회향게로 구성된 것으로 귀경게는 삼보에 에를 올리는 게송(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대승불교의 중심 사상은 일승(一乘) 사상이다. ‘우리가 바로 부처’라는 말이다. 주된 내용은 일심(一心) 즉, 중생심, 이문(二門) 즉,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다.
삼대(三大) 즉, 체대(자체), 상대(공덕), 용대(드러난 작용)다. 예로써 자동차(자체)의 특징과 기능은 상이고, 특징과 기능이 드러난 작용을 용이라 한다.
사신(四信) 즉, 네 가지 믿음은 근본에 대한 믿음, 부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는 믿음, 가르침에 큰 이익이 있다는 믿음, 승가는 바르게 수행하여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믿음이다.
오행(五行)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이란 다섯 가지 수행의 방편을 말한다. 바라밀은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한다.
육자(六字) 즉, 아미타불을 오로지 생각하라(나무아미타불)는 염불 수행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의 회향게는 논을 설한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는 것이다.

   부록으로 대승기신론 우리말 번역을 싣고 있다.

   대승기신론을 100% 이해하려면 스님의 강설을 여러 번 듣거나 집중해 가르침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라 판단한다. 용어가 생소하여 참으로 읽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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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 나무가 구름을 만들고 지렁이가 멧돼지를 조종하는 방법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 더숲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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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2023.3.5.()

철골과 시멘트, 유리로 만든 고층에 사니 앞뒤로 보이는 것은 주상복합 건물과 청사건물, 아파트뿐이다. 자연은 출퇴근이나 산책길에서나 만날 수 있다. 아니, 출퇴근길조차도 보도블록과 우레탄으로 꾸민 세종시 둘레길이니 자연을 만나는 건 산에 가야 가능하다.

4년 전에 사두고 읽지 못한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는 숲은 거대한 에너지 창고이고, 숲 밖에 사는 사람들은 숲속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전제 아래 독일 산림관의 전문적 이야기를 다룬다. 자연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조절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려고 저자의 생활무대인 독일과 미 서부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여러 연구물을 섞어 써낸 글이다.

 

16개의 소주제가 독립된 숲 이야기이지만 각각의 주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첫 주제는 늑대가 돌아왔다. 최상의 포식자의 유무가 생태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고 알려 준다.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독일 늑대 복원사업에 근거한 이야기다. 가축에게 피해를 준다고 늑대를 포획하거나 일제 강점기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멸종시킨 일은 자연 네트워크를 끊어 놓은 인간의 실수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손을 뗄수록 원상태로 복귀될 가능성이 크다.

연어가 숲을 떠도는 법에서는 연어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은 나무뿐만 아니라 여우, 조류, 곤충은 연어로 배를 채우고, 연어의 사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다. 많은 조류가 연어의 덕을 본다. 강 연안 식생 질소의 70%가 연어에서 유래한다. 이 질소는 나무 생장을 촉진한다는 거다. 자연의 힘은 일종의 분배 장치인 셈이고 대표적인 예가 물이다.

지하에도 완벽한 생태계가 존재한다. 최근 셰일 오일의 추출과 관련해 지하수에 가장 위험한 것은 수압파쇄법이다. 모닝 커피잔 속으로 들어온 작은 미생물이란 표현으로 자연의 순환을 설명한다.

노루와 스라소니는 평생을 혼자 산단다. 간벌은 햇빛을 받는 토양에서 약초와 풀이 자랄 수 있어 초식동물에게 유익하다. 울창한 숲에서는 초식동물이 먹을 영양가 높은 식물이 없기 때문이란다. 초식동물은 고열량을 좋아한다.

숲에서 개미의 역할을 숲의 경찰관이자 은밀한 정복자라고 표현한다. 해충을 잡아먹고 사체들까지 처리하기 때문이다. 개미, 진딧물, 비단벌레, 바구미, 무당벌레, 꽃등에, 깍지벌레 나무좀이 얽힌 자연을 신비롭게 그려준다. 독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 단일 수종의 인공조림은 숲 공동체 전체를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한다.

나무좀은 숲속의 악당이라면서도 숲의 건강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선입견을 깨라 한다. 나무좀은 병든 나무에만 피해를 주는 나약한 기생충에 불과하단다. 나무좀이 건강한 나무에서 번식하는 경우는 계획적 조림이나 기후 변화를 초래한 유해물질 방출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 자연의 미세한 균형을 깨뜨리는 존재는 나무좀이 아니라 인간이다.

동물들의 장례식 만찬이란 주제로 생태계에서 덩어리가 큰 시체를 먹고 사는 동물을 소개한다. 동물의 사체가 부식토로 변하는 과정을 이끄는 존재로 곰, , 까마귀, 늑대, 독수리, 솔개가 있다. 쥐와 곰, 붉은 머리 파리는 뼈를 먹는다. 송장벌레는 쥐의 사체를 처리한다. 쥐의 놀라운 번식력(태어난 지 2주 만에 생식능력을 갖추고, 임신 2주 후 약 10마리 새끼를 낳고, 암수 한 쌍이 영양 생장기 동안 총 5세대가 태어난다)을 소개한다.

깊은 밤 숲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야행성 나비(밤나비라는 나방)는 달빛에 의지해 길을 찾는다. 인공조명은 생태계의 민감한 균형을 깨뜨린다. 밤나비는 가로등을 달이라고 착각해 헤맨다. 반딧불이의 야간 불빛 쇼는 사랑을 얻기 위한 것이다. 반딧불이가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라는 기간은 3년이고 성년이 된 반딧불이는 단 며칠 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수컷은 짝짓기한 다음, 암컷은 알을 낳은 다음 바로 죽는다. LED 램프는 넓게 퍼지지 않고 아래로만 향해 다른 램프에 비해 빛의 집중도가 높다.

자연 상태에서 활엽수림은 침엽수림보다 불에 잘 타지 않는다. 참나무는 유칼립투스 나무나 소나무보다 생장 속도가 느리며 돼지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산불 위험도 급격히 감소시킨다. 조류에게 겨울 먹이 주기가 철새의 이동 경로를 바꾼 사례(스페인에서 영국으로)를 제시한다.

성충은 30도까지 견디지만, 날이 추우면 유충의 입과 호흡기관 속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가 죽는다.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의 열매는 매년 가을이 아니라 3~5년 주기로 열린다. 이는 야생 멧돼지, 노루, 사슴, 조류, 굶주린 곤충무리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전략인 셈이다.” 사냥꾼이 동물 먹이를 대량으로 주는 것은 생태계에 마음대로 끼어드는 일이다. 이는 개체 수 조절 메커니즘을 작동하지 않게 한다. 지렁이를 먹는 야생 멧돼지는 지렁이를 따라 들어온 우폐충이 기관지를 공격해 염증이나 출혈을 일으킨다. 결국, 우폐충이 멧돼지 개체 수의 조절자인 셈이다.

독일에서 청솔모의 활동량이 많아지면 겨울이 춥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란다. 자연의 도토리의 공급량에 따라 수집하는 걸 볼 뿐이다. 숲속의 둥지는 딱따구리-까마귀-부엉이-들쥐-갈색거저리라는 세입자들이 교체되면 사용한다.

유럽의 서안해양성기후(Cfb)에서 침엽수림은 활엽수림보다 물을 아껴 사용해 잎의 색이 더 짙다. 침엽수림의 짙은 수관이 공기를 덥혀주기 때문에 더 빨리 봄맞이 준비를 할 수 있다. 나무가 성장하려면 여름에 덥다가 겨울에는 추워야 한다.

송진과 탄화수소는 침엽수림이 가진 위험한 가연성 물질이다. 이를 자연 재생 프로세스로 주장하는 설이 있다. 활엽수림에는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거대 초식동물 이론을 설명하나 수용하기 쉽지 않고,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가 숲에 심각한 영향을 끼침을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 겨울이 늦어지고 8월에 찾아오던 진짜 더위가 9월 중순으로 늦춰졌다.

인간도 자연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면서 살 것이고, 자연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조절한다. 키 작은 수목으로 구성된 산림을 왜생림(矮生林)’이라고 부른다는 걸 배운다. ()는 키 작을 왜 자다. 왜구(矮軀)는 키가 작은 체구, 왜구(倭寇)는 우리가 말하는 일본 해적이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를 읽어가며 자연이나 환경을 다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동기생 김준태의 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영사, 2019을 떠올린다.

 

#자연의비밀네트워크 #페터볼레벤 #더숲 #김준태 #나무의말이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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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읽기는 글쓴이의 생각이 빚은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문장을 골라내려는 마음이 앞선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에 에세이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이 있다. 내 삶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오만이지만 아직은 그 오만을 놓고 싶지 않다.

데 메아 비타’ De mea vita 라는 과제를 받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던 많은 수강생의 칭찬이 강의를 글로 옮겨 놓게 한 동인이다. 성취적인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란 생각으로 살아온 독자에게 한 박자 쉬어가게 만든 책이다. 사 둔 지 몇 년이 되었으나 오만에 근거해 읽기를 미루다가 미뤄둔 책이 너무 많아 읽어보기로 선택한다. 90년생이 온다에 이어 읽으니, 90년생이 대학생인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라 수강생의 반응이 있었는지, 어땠는지 궁금함을 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라는 세네카의 말은 동양의 줄탁동시와 같은 말이다. 양의 동서 구분은 사람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라틴어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읽으려 36세에 라틴어를 독학으로 배웠다며, 저자는 수강생의 수강 이유를 물어본다. “있어 보이려고요” 90년대생다운 반응이다. 이를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며 위대한 유치함이라 관점을 바꾸어 준다. 강의 내내 로마를 기준 삼아 유럽에 관련된 교양 기초 수준의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다. 몇 가지를 옮겨본다.

 

라틴어가 가진 수평성에 주목하며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때 타인과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생을 위해 배우고, 나누기 위해 배우자. 나의 단점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찾으려면 성찰이 필요하다. 환경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자고 한다. 성장에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무언가에게 숨마 쿰 라우테(최우등)가 되려면,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천사가 되어야 한다. 공부에 대한 저자의 표현 회사는 그만두면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금을 받으나 공부는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가 와닿는다. 살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고통은 내가 살아있음을 표시이므로.

 

성경을 공부한 바가 없으니 로마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든가, 고린도전서가 코린트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임을 이제 안다. 평등의 의미를 철학과 신학에서 다르게 본다. 스토아학파는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평등, 크리스트교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근거한 모든 인간의 평등이란 차이가 있다. 교회의 권력이 약해지자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나는 한 개의 에 속한 시민이다.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향유하는 권리는 출발이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한다. “만일 신이 없더라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에게서 벗어난 서구의 역사를 함축한 표현이다. ’도 우트 데스‘ do ut des 네가 주니 내가(나도) 준다는 상호주의의 표현이며 타인을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일깨운다. 시간이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며,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이 문장은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니 이걸 경험해 보도록 노력해 보자 권유한다.

 

로마인의 서간문 인사를 통해 홀로 살기보다는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한다. ‘시 발레스 베네 에스토 에고 발레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Hodie mihi, Cras tibi 은 타인의 죽읆으르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를 몰랏던 것처럼, 오늘의 내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지 온전히 알 수 없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Si vis vitam, para mortem

 

Carpe Diem으로부터 문장을 현재 시제로 표현하려 노력하자 다짐한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불행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다. 라틴어의 유베니스 iuvenis가 만 20세에서 45세까지 였음은 국가의 필요에 의한 수단이었으나, 나이에 대한 강박을 줄여주고 인간의 가능성을 크고 길게 보게 하기도 한다. 모든 새는 저마다의 날갯짓으로 비행한다. 인간도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다. ‘우리가 아는 만큼, 그 만큼 본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는 늘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보다 스피노자의 Desidero, ergo sum이 나에게는 더 받아들이기 쉽다. 욕망이야말로 힘과 능력의 원천임으로. 설레임 없는 만남은 의미 없지 않은가?

 

유럽에서 대학이 탄생한 배경에는 중세인들이 성경을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 풀고자 했던 이유가 있다. ‘진리’ Veritas가 대학의 슬로건으로 쓰는 연원이 여기 있다.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는 문장에서 내 안의 약함과 부족함 탓은 아닌지 돌아보자 한다. 공감하네. 좋은 기억을 갖고 죽으려면,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한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치미는 분노의 마음을 내일로 미룰 수 있게 하자. 고통도 절망도 끝이 있다. 지나가는 것에 메이지 말자. 이 또한 지나가리. 완전이란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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