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읽기는 글쓴이의 생각이 빚은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문장을 골라내려는 마음이 앞선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에 에세이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이 있다. 내 삶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오만이지만 아직은 그 오만을 놓고 싶지 않다.

데 메아 비타’ De mea vita 라는 과제를 받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던 많은 수강생의 칭찬이 강의를 글로 옮겨 놓게 한 동인이다. 성취적인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란 생각으로 살아온 독자에게 한 박자 쉬어가게 만든 책이다. 사 둔 지 몇 년이 되었으나 오만에 근거해 읽기를 미루다가 미뤄둔 책이 너무 많아 읽어보기로 선택한다. 90년생이 온다에 이어 읽으니, 90년생이 대학생인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라 수강생의 반응이 있었는지, 어땠는지 궁금함을 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라는 세네카의 말은 동양의 줄탁동시와 같은 말이다. 양의 동서 구분은 사람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라틴어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읽으려 36세에 라틴어를 독학으로 배웠다며, 저자는 수강생의 수강 이유를 물어본다. “있어 보이려고요” 90년대생다운 반응이다. 이를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며 위대한 유치함이라 관점을 바꾸어 준다. 강의 내내 로마를 기준 삼아 유럽에 관련된 교양 기초 수준의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다. 몇 가지를 옮겨본다.

 

라틴어가 가진 수평성에 주목하며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때 타인과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생을 위해 배우고, 나누기 위해 배우자. 나의 단점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찾으려면 성찰이 필요하다. 환경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자고 한다. 성장에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무언가에게 숨마 쿰 라우테(최우등)가 되려면,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천사가 되어야 한다. 공부에 대한 저자의 표현 회사는 그만두면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금을 받으나 공부는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가 와닿는다. 살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고통은 내가 살아있음을 표시이므로.

 

성경을 공부한 바가 없으니 로마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든가, 고린도전서가 코린트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임을 이제 안다. 평등의 의미를 철학과 신학에서 다르게 본다. 스토아학파는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평등, 크리스트교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근거한 모든 인간의 평등이란 차이가 있다. 교회의 권력이 약해지자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나는 한 개의 에 속한 시민이다.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향유하는 권리는 출발이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한다. “만일 신이 없더라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에게서 벗어난 서구의 역사를 함축한 표현이다. ’도 우트 데스‘ do ut des 네가 주니 내가(나도) 준다는 상호주의의 표현이며 타인을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일깨운다. 시간이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며,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이 문장은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니 이걸 경험해 보도록 노력해 보자 권유한다.

 

로마인의 서간문 인사를 통해 홀로 살기보다는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한다. ‘시 발레스 베네 에스토 에고 발레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Hodie mihi, Cras tibi 은 타인의 죽읆으르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를 몰랏던 것처럼, 오늘의 내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지 온전히 알 수 없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Si vis vitam, para mortem

 

Carpe Diem으로부터 문장을 현재 시제로 표현하려 노력하자 다짐한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불행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다. 라틴어의 유베니스 iuvenis가 만 20세에서 45세까지 였음은 국가의 필요에 의한 수단이었으나, 나이에 대한 강박을 줄여주고 인간의 가능성을 크고 길게 보게 하기도 한다. 모든 새는 저마다의 날갯짓으로 비행한다. 인간도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다. ‘우리가 아는 만큼, 그 만큼 본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는 늘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보다 스피노자의 Desidero, ergo sum이 나에게는 더 받아들이기 쉽다. 욕망이야말로 힘과 능력의 원천임으로. 설레임 없는 만남은 의미 없지 않은가?

 

유럽에서 대학이 탄생한 배경에는 중세인들이 성경을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 풀고자 했던 이유가 있다. ‘진리’ Veritas가 대학의 슬로건으로 쓰는 연원이 여기 있다.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는 문장에서 내 안의 약함과 부족함 탓은 아닌지 돌아보자 한다. 공감하네. 좋은 기억을 갖고 죽으려면,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한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치미는 분노의 마음을 내일로 미룰 수 있게 하자. 고통도 절망도 끝이 있다. 지나가는 것에 메이지 말자. 이 또한 지나가리. 완전이란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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