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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 천년의 제왕학 교과서
오긍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월
평점 :
정관정요 1
2025. 10. 10일~22일
오금이 지은 『정관정요』는 당나라 시조인 태종의 치세에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를 기록한 역사서로 리더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운다.
요약한 글 분량이 a4 8쪽, 10,000자다. 다 옮겨두고 읽기를 바라는 것은 폭력일지 모른다.
브런치에 2회로 나누어 옮긴다.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요동 안시성에서 패하여 돌아간 이세민, 당 태종을 바라보는 민족주의적, 역사적 감정을 잠시 놓아두고 리더십이란 관점에 따라 읽으면서 2024년 12월 이후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와 견주니 당 태종의 리더십은 그저 옛날 일이라고 치부하고 나 몰라라 하기엔 아까운 책이다.
권1 군주의 도
군도君道 군주의 도
군주가 바르면 나라가 안정된다. 몸이 곧은데도 그림자가 기울고, 윗사람이 훌륭히 다스리려고 노력하는데 아랫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경우는 없다. 다스림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위지치無爲之治가 상책이고, 덕으로써 다스리는 것은 차선책, 군주가 선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사물의 종말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며, 화려함만을 쫓으며 만족할 줄 모르고 다스림은 가장 낮은 계책이다. 처음에 훌륭했던 자는 확실히 많지만, 끝까지 훌륭한 행실을 한 이는 아주 적다. 백성들의 원한을 부르는 것은 일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두려워할 것은 민심에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고 뒤집을 수도 있으므로 마땅히 신중해야 한다. 무위지치의 열 가지 방법을 상술한다 (p.42~43)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와 같다. 군주는 편안함을 경계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둘이 탄핵된 것은 군주의 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다. 물과 배, 물고기와 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다. 맹자의 사상이나 당 태종과 위증을 비롯한 신하들과의 대화를 공부했다면 좋았을 것을. 권한의 크기와 상관없이 리더에게 주는 가르침을 생각한다.
정체政體 정치의 요체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비유하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다룬다. 당 태종은 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알겠는가라고 자기를 낮추고 위징을 비롯한 신하들과 토론하며 나라 다스림에 골몰한다. 창업의 단계를 지나 수성의 단계에는 무예보다 유학과 도덕 규범, 아름다운 풍속을 중시해야 한다. 신하의 침묵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고, 군주가 지나치게 꼼꼼하면 사리에 밝지 못하다. 구중궁궐을 벗어나기 위해 신하와 토론의 빈도를 높인다. 직간하는 신하를 원하라. 뿌리가 흔들리지 않아야 가지와 잎이 무성해진다. 공정하고 국가의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등이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다룬 문장이다. 탁월한 기술자가 다듬어야 보옥이 빛을 보듯 신하들의 조언과 간언이 자신(태종)을 만들었다고 인식한다. 21세기 한국 정치에 적용해도 타당한 글로 고전은 낡은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권2 인재관과 간언 수용
임현任賢 현신을 임용하라
어질고 현명한 신하를 얻어 곁에 두는 일은 쉽지 않다. 당 태종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과 역량을 다 바쳤고 비난에 가까운 간언도 서슴치 않음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던 여덟 명의 신하를 소개한다. 방현령은 창업의 공신으로 두여회를 천거했고, 함께 은태자 이건성의 반란을 평정하고 공동으로 조정의 정서를 관장해 조정 기구의 규모, 법령, 제도, 문물에 이르기까지 상의해서 정했다. 당대인들은 두 사람을 합쳐 ‘방두房杜’라고 일컬었다.
위징은 『자치통감』에서도 언급하는 신하로 충심으로 간언한다. 300회가 넘는 간언을 한 위징이나 이를 받아들인 태종은 당의 수성을 위해 진심이었다. 태종은 간의대부로 활동한 왕규가 인물의 그릇을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변론에도 탁월했다고 평가한다. 이정은 북방 돌궐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고, 우세남은 태종과 고금의 정치를 평했다. 태종은 우세남의 덕행, 충직, 박학, 문장의 준수함, 서법의 청준함을 칭찬했다. 전략가 이적(서적인데 태종이 이씨를 하사함), 변론가 마주까지 기록하였다.
구간求諫 간언을 장려하라
간언에 대한 태종의 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현명한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만나는 것만이 물고기가 물을 만나는 것과 같아 천하가 안정될 수 있소. 나는 비록 현명한 군주라고 할 수 없으나, 다행히 여러 대신이 끊임없이 나를 보좌해 잘못을 바로잡아 허물을 보충해주고 있소. 여러분의 정직한 간언과 바른 논의에 의지해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기를 바라오.”(p.105)
간언하는 신하가 있어야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고 적이라도 심복으로 받아들이려 했으며, 게으름과 감정적인 화를 경계하며, 간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문제의 싹을 미리 잘랐다.
납간納諫 간언을 수용하라
태종이 반역자의 여자를 빼앗고, 건원전을 중수하고, 애마를 죽인 사육사를 죽이려 하자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태종은 신하의 간언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격하고 절박한 간언은 비방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달콤한 말로 가득 찬 상소문을 경계하라. 장점을 보고 등용해야 한다. 태종이 신하의 솔직하고도 거침없는 비판을 수용하려고 애썼으며, 이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
권3 관리 선발론
군신감계君臣鑒戒 군주와 신하가 거울삼아 경계함
수왕조의 무고한 주살을 교훈 삼아 신하된 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말한다. 나랏일을 처리할 때는 신하를 각자의 능력에 따라 중대한 임무는 대신들에게 맡기고, 작은 일은 소신들이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적재적소에 관리를 배치하는 방법이다.
택관擇官 관리 선발
위징은 말한다. 천하가 혼란할 때에는 오직 가진 재능만을 요구할 뿐 그들의 덕행여부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태평성대에는 재능과 덕행을 모두 갖춘 사람난이 기용될 수 있다. 다스림의 근본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다. 포상과 징벌에 공정하여야 한다.
봉건封建 봉건제
태종은 봉건제가 자손 대대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시행하려 했다. 신하들은 친척을 살리는 길이며, 제후의 자제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부친이나 선배가 이룬 창업의 어려움을 잊고 음란하고 포악한 행위를 일삼게 되어 나라의 기강이 뒤흔들리게 되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관직과 작위의 세습을 폐지하면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을 등용할 수 있다고 간언하자 태종은 신하의 의견을 수용한다.
권4 태자 교육과 위계질서
태자제왕정분太子諸王定分 태자와 왕자들의 서열 정하기
속담, ‘가난한 사람은 절약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절약하고, 부귀한 사람은 사치를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치한다.’ 군주의 아들 가운데 적자인 태자와 서자인 여러 왕의 신분상의 차이에 관해 논한다.
존경사전尊敬師傳 스승을 존경하라
현재의 주역은 군주이나, 미래의 주역은 태자다. 태자의 능력과 인품 여하에 따라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태자를 태자답게 만드는 스승의 역할이 크다.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존재와 가르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태종은 예부상서 왕규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아 사부를 황제대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스승의 신분을 높였다. 전적과 문장도 배우고 궁궐내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신하들을 보내 담소하고 토론하도록 명한다.
교계태자제왕 敎戒太子諸王 태자와 왕자들을 교육하고 훈계함
권5 도덕규범
인의仁義 어짊과 옳음
공자는 인은 인간의 마음이고 의는 인간의 길이라고 하였다. 태종은 이러한 인과 의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으로 인식했으며 이는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태종이 신하에게 말하기를, “인의 준칙은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여 그곳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오. 만일 잠시라도 마음이 나태해지면 인의로부터 멀어질 것이오.”
충의忠義 충성과 의리
충성과 의리 충의 충이란 자기의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충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일 경우는 자기의 가능성을 전부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 대상이 타인일 경우는 진실되고 거짓 없는 마음으로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당 태종이 고구려 사람을 칭찬한 내용이 담겨 있어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정관 19년 태종이 요동의 안시성을 공격하자 고구려 병사와 백성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태종은 고연수 고혜진 등에게 투항할 것을 명령했다. 당나라 군대가 안시성 아래에 진영을 치고 병사를 움직이지 않으며 그들의 귀순을 권하였으나 성안은 움직임 없이 견고했고 태종의 깃발을 볼 때마다 성 꼭대기로 올라가 북을 두드리고 외쳤다. 태종은 매우 노여워하여 강하왕 이도종에게 토산을 쌓아 성을 공격하도록 명령했지만 끝까지 함락시킬 수 없었다. 태종은 병사들이 퇴각을 준비하면서 안시성을 견고하게 수비하여 신하 된 자의 지조를 지킨 것을 칭찬하고 비단 300 필를 내려 군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격려했다”라고 기록하였다.
효우孝友 효도와 우애
효도와 우애 인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근본이 되는 덕목이다. 불효 한다면 그것은 근본을 모르는 행위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돌궐 출신 관리가 당직을 서다가 음식을 먹다가 고기를 남겼는데, 왜 남기는가를 묻자 ‘이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어머님을 봉양하려고 하오’ 라는 말을 들은 태종은 감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질고 효성스러운 천성에 어찌 한족과 이족의 구분이 있으랴”라며, 그 관리에게 포상으로 말 한 필을 주고 어머니에게 고기를 보내도록 명령하였다.
공평公平 공평함
공평함이란 자기와의 친소 관계나 이해 관계를 떠나 정확한 기준에 근거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대공무사라는 고사도 있듯이 자기 자식 혹은 원수 지간일지라도 재능이 뛰어나면 주저 없이 임용해야 공평한 인사다.
인의가 근본이고 형벌은 그 끝이다. 사람들이 못 오게 하려는 것은 자기가 하지 않는 것만 못하고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은 자기가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성신誠信 성실과 신의
곧은 나무는 그림자가 굽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정관정요 2
2025. 10. 10일~22일
권6 도덕 교화와 풍속 개량
겸손과 사양
태종이 받아들인 주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군자의 준칙은 교만과 자만을 싫어하고 겸허와 공손을 숭상하는 것”이다.
인측仁惻 어짊과 측은함
궁녀들에게도 배필이 필요하다라고 판단한 태종은 후궁과 궁녀 3000여 명을 차례로 궁궐에서 내보낸다. 죽은 신하를 자기 자식처럼 애도하고 병사의 죽음에 천자가 곡을 한다.
신소호愼所好 좋아하는 바를 삼가라
위에 있는 자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아래에 있는 자들의 취향이 결정된다. 군주는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속내를 결코 보이지 말아야 통치는 더욱 견고해진다. 군주는 그릇이고 백성은 물이다. 이는 시대정신이란 국민의 삶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언어愼言語 말을 삼가라
법가 사상가 韓非가 말한 군주와 신하 사이에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글이다.
“저의 말이 주상의 뜻을 좇아 유창하고 아름다우면 보기에 화려하지만 부실하다 생각되고, 공경스럽고 삼가며 강직하고 신중하면 보기에 옹졸하며 순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말을 많이 하고 번번이 사물을 거론하며 비슷한 것을 열거하여 사물을 비유한다면 그 내용은 공허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정미한 부분만을 꼬집어 요지로 설명하며 간략히 말하고 수식을 더하지 않는다면 언사가 생경하여 말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상의 측근에 있는 자를 비판하며 다른 사람의 의중까지 살펴 안다면 남을 비방하며 겸손을 모른다고 여겨지고, 말하는 뜻이 넓고 심원하며 오묘하고도 멀어 헤아릴 수 없으면 과장 되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집안의 이익을 계산하여 상세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수를 헤아리려 말한다면 소견이 좁다고 여길 것입니다. 또한 말이 세속적인 것에 가깝고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다면 목숨에 연연하여 주상께 아첨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말하는 것이 세속과 동떨어져 괴이하고 허무 맹랑한 사실들만 늘어놓는다면 망령되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임기응변의 민첩하고 말재주가 뛰어나며 꾸밈이 많다면 사관(史官)으로 여길 것이며 문학적인 것을 특별히 버리고 진심을 말하면 천하다고 여길 것이고, 언제나 경전에 있는 말을 하고 고대 법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면 옛 사실들을 들먹인다고 할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삼가야 함을 말한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말을 하기가 두렵다. 말을 삼가라는 장은 군주의 모든 것은 기록된다라고 말하며 군주의 말과 백성의 말은 그 미치는 범위가 다르니 군주는 신중하게 말해야 함도 말한다. 또한 가장 뛰어난 말재주는 눌변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은 말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성인은 말하지 않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고 한다. 노자는 이를 가장 뛰어난 말재주는 눌변과 같다고 했고 장자는 지극한 도는 꾸밈이 필요없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모두 번거로움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아첨과 무고를 단절하라
인간의 선악은 확실히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당 태종의 말이다.
회과悔過 허물을 뉘우침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의 지적과 조언이 필요하다.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허물을 뉘우치는 데 있어서 배우지 않는 것은 담벽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명분을 지킬 때 안전하다. 자신이 잘못을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탐욕과 비루
구차스러운 재물을 경계하라. 재앙과 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권7 유학과 예법
숭유학崇儒學 유학을 숭상하라
유학은 공자의 학설을 숭상하는 유가학파의 주장이다. 당태종은 유학을 숭상하여 공자에 대한 남다른 존경을 표했을 뿐만 아니라 오경의 교정 작업에 착수하여 오류를 바로잡았다. 태종은 즉위 초기에 정전의 좌측에 홍문관을 설치하여 문인과 유학자를 선발하고 그 본관 이외에 홍문관 학사를 겸하도록 하였고, 정관 2년에는 주공을 이전시대의 성인으로 삼아서 존중했던 것을 중단하고, 새롭게 공자의 묘를 수도의 학교인 국학 안에 세워 이전의 제도를 본받고 공자를 선성先聖으로 삼아 존중하며 공자를 존중하는데 예의를 갖추었다. 국학에 강의를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1만 명에 이를 정도로 유학이 창성해졌다.
당태종때에 총 180권으로 ‘오경정의’라는 이름의 오경소의를 편찬했는데 국학의 주 교재로 사용해 했던 이 오경정의는 안사고라고 하는 학자의 노력에 힘을 입었다. 공부하는 자세와 관련된 아 일화를 소개하면 소진은 허벅지를 찔러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동중서는 책을 읽을 때는 휘장을 내렸고 3년 동안이나 정원으로 나가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사文史 문장과 역사
문사는 사관의 직설을 강조한 부분이다. 태종은 상소문 가운데 정사를 논하고 말과 이치가 적절하고 바르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익 있는 것들은 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모두 기록하라고 명하였다. 태종의 문집을 편찬하자라는 신하들의 그 청에 뭐라고 얘기했냐면 “군주의 훌륭함과 그렇지 못함은 도덕과 품행에 있는 것이니 어찌 문장에 종사할 필요가 있겠소?” 라면서 문집 편찬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악禮樂 예절과 유악
예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방법이고 악은 인간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휘는 죽어서나 피하라’(관직 명칭이나 인명 및 공문이나 사사로운 글에서 ‘세世’자와 ‘민民’자가 있어도 두 글자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모두 피할 필요가 없다고 명한다. 당 태종의 이름이 이세민이다)라고 얘기했다. 가족간의 위계의 질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상례의 규정도 마련하였고 스님이나 도사들도 부모가 최우선이다라고 하는 생각, 혼인은 당시 풍습에 반하여 장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졌고, 공주라 할지라도 시집을 가면 며느리의 예절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서자들은 분수를 지켜야 하고, 복상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의 깊이에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복상 제도를 개혁하였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생일은 부모가 수고한 날인데 연회를 열어 즐길 수 있는가라며 생일날 태종은 오랫동안 울었다고 한다.
권8 법규 정비
무농務農 농업을 장려하라
농사가 근본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길흉은 음향이 아인 인간에게 달려 있으며 농사철은 농민을 동원하지 말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형법刑法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법을 집행할 때에는 반드시 관대하고도 간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당태종 입장이었고, 4품 이상의 고위직 관원과 삼공, 구경들과 함께 심의해서 억울한 재판이나 지나치게 엄한 형량을 피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종이 주인을 고발하면 수리할 필요가 없다. 고발하는 자를 모두 사형에 처하게 했다. 사형은 5번 신중하고 일상 업무에도 살얼음 위를 걷듯 긴장하라고 신하들에게 명화였다. 재앙과 복은 행위의 선악에 따라 결정된다. 재판을 할 때는 죄의 근원을 파헤쳐라. 법을 집행할 때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재앙과 복은 서로 붙어있고 길함과 흉함은 함께 이어져 있다라고 생각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수양한 사람은 편안할 때 위험을 잊지 않고, 존재할 때 멸망을 잊지 않으며, 태평할 때 혼란을 잊지 않은 까닭에 자신도 평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당태종이 걱정하는 것은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가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해침으로써 귀함을 구하고 이로써 명예를 구하는 거다. 2025년 대한민국 사법부를 생각하니 천 년이나 뒤져 있다.
사령赦令 사면령
사면을 경계하고 법령은 간결해야 된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정사를 보았고 주역에서 ‘명령을 하는 것이 마치 몸에서 땀을 흘리는 것과 같아 한 번 나가면 거둬들이지 못한다’라는 생각으로 명령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부貢賦 공물과 조세
정관 18년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했는데 연개소문이 사신을 보내 백금을 바쳤다. 그때 신하들은 반역자인 막리지가 보낸 백금은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을 받아들였고, 정관 19년 고구려 왕이 미녀 2명을 보내왔는데 사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들이 본국의 부모 형제를 떠난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만일이 여인들이 미색을 좋아한다면 그녀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오 나는 받지 않겠소라고 거절하고는 그녀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변흥망辯興亡 흥망을 변별하라
그림자는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는 소리를 따르듯이 나라의 희망 흥망 또한 군주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권9 변방 정책
정벌征伐
정벌은 창업 시기에 하는 것으로 그치고 일단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보존하는 일에 열중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모반자들은 은덕으로 어루만져야 하고, 군대는 흉기이고 전쟁은 불행이다. 헛된 명예를 위해 백성들을 상하게 할 수 없다. 장례 기간에는 토벌를 피한다. 이민족과의 화친 정책도 필요하다. 혼란을 평정한 뒤엔 무기를 쉬게 하라. 정벌보다는 어루만져라. 장수의 일은 장수에게 맡겨라. 장수의 결단력이 승리를 느낀다. 백성으로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 고구려 정벌은 나라만 상하게 한다는 신하들의 조언이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패했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 창업과 수성의 자세를 겸하라. 무력을 남용하지 마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궁궐 건축은 백성을 고달프게 할 뿐이다. 진귀한 세공물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도끼다라고 인식하였다.
안변安邊 변방을 안정시켜라
당태종은 회유정책으로 흉노를 다스렸고, 과도한 변방 수비를 경계하려고 했다.
권10 위기론과 경계론
행신行辛 지방 순시
태종은 정관 초년 대규모로 궁궐을 건축하고 지방 순시를 좋아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수나라 멸망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려는 뜻이다. 군주의 욕망과 민심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는 반드시 고달픔이 있다라고 여겼다.
사냥 畋獵(전렵)
사냥은 군주의 중요한 오락거리였다. 군주는 무분별한 사냥 행위를 금하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태종이 사냥을 나갔을 때 큰 비를 만나자 신하에게 묻기를 비옷은 어떻게 하면 새지 않게 할 수 있소?라고 묻자 신하가 말하기를 기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절대로 새지 않을 거라 답한다. 이는 태종이 자주 사냥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 말이었다.
재상災祥 재해와 상서로움
군주란 길흉에 근거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덕행의 수행과 대공무사함으로 다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愼終 신중한 끝맺음
‘시종여일始終如一’라는 말이 있다. 처음과 끝이 하나같다는 말로 일관성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든 공부를 하는 학생이든 간에 처음에는 큰 목표를 향해 한길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각오가 퇴색 뛰어 이전 사람의 전철을 밟는 경우가 숱하며 군주 또한 창업 초기의 마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편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끝까지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정관 13년에 위징이 10 가지 항목으로 태종에게 상소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는 것보다 실천이 최우선이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함이 어렵다. 그것을 실천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견지함이 어렵다. 둘째. 조심하고 삼가하라 라는 내용이며 셋째는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넷째 소인을 멀리하라. 다섯째 근본에 충실하라. 여섯째, 감정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지 마라. 일곱째, 빈번한 사냥은 재앙을 부른다. 여덟째, 군주와 신하 사이에도 예와 충이 필요하다. 아홉째, 겸손만이 교만과 탐함에서 구해줄 수 있다. 열 번째, 군주의 정성 앞에서는 재앙도 무색해진다라고 하는 할목으로 나누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위증의 상소 내용을 소개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태종은 다음과 같은 말로 위징에게 화답하였다. “만일 신이 제시한 이러한 말을 위배하면 나는 또 무슨 얼굴로 그대와 만나겠소? 또 무슨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릴 생각을 하겠소? 그대의 상소문을 받은 후 나는 계속 연구하고 토론하였는데 말에 힘이 배어있고 도리 또한 정확하다고 느꼈서. 그것을 병풍에 붙여놓고 아침 저녁으로 공손한 마음으로 보고 있소. 또 베껴서 사관에게 주어 천 년 이후의 사람들이 군주와 신하 간에 마땅히 준수해야 할 원칙을 알기를 바라오”(p.637) 라며 위징에게 황금 10근과 궁중의 명마 두필를 내렸다.
정관 16년 위증은 태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감정은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인 모두 한 가지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절제할 수 있어 한도를 넘지 않도록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방종하여 제어하지 못하고 부풀립니다. 폐하의 숭고한 덕행은 지극히 높고 원대하며 평안한 환경 속에서도 위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보니 폐하께서 항상 자신을 억제하여 끝까지 미덕을 지킬 수 있어서 자손만 대까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p.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