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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종말 - 다른 세상의 시작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5월 7일 오후 10:13
‘권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며 통치자는 권력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히려 한다는 가설은 철학적으로 거의 의견 일치를 본 명제다. 마키아벨리는 “ 영토 획득과 정치적 지배는 사실, 아주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인간은 기회 있을 때마다 늘 그렇게 한다.”하고, 토머스 홉스는 “ 모든 인간은 대개 끊임없이 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욕망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멈춘다.”라고 하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나는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거기서 권력을 향한 의지를 보았다. 심지어 하인의 의지에서도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았다.”고 권력에 대해 말한다. <권력의 종말>은 권력을 잡기는 점점 쉬워지는데 권력을 휘두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못 해 먹겠다.”고 한 말이 트집거리가 된 적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의 상황은 미국 대통령에게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저자 모이제스 나임은 ‘미시권력’이 거대세력의 권력에 힘을 뺀다고 한다.
<권력의 종말> 1부는 새로운 힘의 등장이란 주제로 권력의 정의, 권력이 만든 진입장벽, 관료제와 파워 엘리트에 대해 풀어간다. 1부 4장에서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이 권력 쇠퇴의 원인으로 본다. 2부 거대세력과 미시권력에서 ‘정치권력, 군사력, 기업, 종교, 노동조합, 자선사업, 언론’과 같은 거대세력의 권력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권력,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례를 들어 주는데 모두 미시권력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종말’보다는 쇠퇴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는데, 거대세력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책 제목에서 종말로 표현한 거라 본다. 3부 권력의 종말, 그 이후의 시대에서는 권력의 쇠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라며 답을 내놓는다. 권력 쇠퇴의 원인으로 든 ‘양적 증가 혁명’이란 현존하는 국가의 수에서 인구 규모, 생활수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의 수, 시장에 나오는 제품의 수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양적으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동 혁명’이란 노동력, 상품, 돈, 아이디어, 가치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 혁명’은 이런 변화에 수반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 같은 우리 마음속의 큰 변화를 반영한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권력은 물리적 힘보다는 심리적 억압으로서 더 많이 다가온다. ‘완력(강압)’, ‘규범(의무)’, ‘선전(설득)’, ‘보상(유인)’은 권력이 표현되는 수단이기에 권력의 통로라 할 수 있다. 영향력은 권력의 일부다. 권력의 장벽이란 새로운 주자들이 경쟁력을 얻기 위해 완력, 규범, 선전, 보상이나 그것들의 조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다. 베버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의 핵심이 관료 조직이라 믿었다. 베버에게 관료제란 오늘날 통용되는 것처럼 지저분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성취한 가장 발달한 형태의 조직이자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었다. 2차 대전은 진행 과정과 결과를 통해 조직의 규모가 곧 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바닥 면적 만으로만 계산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은 펜타곤이다.
‘양적 증가 혁명’은 통제 수단의 무력화를 초래한다.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더 풍족한 삶을 살 때, 그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동 혁명’은 포박된 수용자의 소멸을 초래한다. 도시화와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 이동을 촉진하는 기술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더 수월해지고 기득권층은 더 어렵게 한다. ‘의식 혁명’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실천하게 한다. 의식 변화는 인구분포의 변화와 정치 개혁, 민주주의와 번영의 확대, 문맹률의 급속한 감소와 교육 혜택의 증가, 통신과 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권력을 쇠퇴시킨다. 기존 권력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권력의 재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권력의 종말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위험이 수반되기도 하며, 정치적 마비상태나 파멸적 경쟁을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무질서’, ‘탈숙련화와 지식의 상실’, ‘사회운동의 진부화’; 슬랙티비즘(최소한의 관여만으로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는 참여를 의미함), ‘인내심 부족과 주의력 분산’, ‘소외’라는 다섯 가지 위기를 예상한다. 권력의 종말에 따른 처방으로 ‘승강기에서 내려라’, ‘극단적인 단순주의 세력을 경계하라’, ‘신뢰를 회복하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라’고 한다.
교실에서, 집안에서, 언론에서 언급하는 갑질에 대한 분노 등 일상에서 권력의 쇠퇴는 크든 작든 느낀다. 이를 학문적으로 다듬은 책이 <권력의 종말>이다. [책 읽는 수요일]에서 2015년 2월 초판을 냈고, 내가 읽은 것은 2016년 3월 초판 4쇄, 본문 527 분량의 <권력의 종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