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
오구라 기조 지음, 조성환 옮김 / 모시는사람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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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부제: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
2025. 12. 7.(일)
수년 전 신문광고를 보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으나 잊고 있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라는 책 제목이 끄는 힘이 있었다. 8년간 한국에서 공부한 일본인이 연구하고 경험한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다. 서구의 이론으로 한국 사회를 해석하며 연구비를 타는 방식이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쉽지 않은 리理와 기氣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였다.
문고판 후기에 저자가 밝혔듯이 “단 한 권의 책으로 한국을 일격에 아웃시키고, 가능한 한 철저하게 한국을 발가벗겨 주겠다”는 각오로 쓴 글이다. 덕분에 일본에서 한국을 다시 보려는 시도를 촉발시켰다고 하나, 이 때문일지 모르나 1998년 일본에서 출간했으나 2017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구입한 중고판이 2019년 5쇄이므로 한국어판도 적게 읽힌 것은 아니다.
“자기를 보기보다는 남(=외국)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 모든 좋은 사례는 외국에서 가져오려는 습성에 젖어든 한국인, 바깥의 틀을 빌려와서 자기를 설명하려는 한국인 등등. 이러한 자기비하, 자기무시로 점철된 비주체적 태도에 대해 오구라 기조는 애정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p.262)”라는 문장에서 역자가 받은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리理와 기氣로 한국 사회를 해석한 본문 내용에 일정 부분은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라는 첫 문장에 공감했다. 몇 년 전 정치인 한 사람이 언론과 사회로부터 지탄 대상이 되었을 때 페이스북에서 ‘도덕적 우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조작된 부분으로 몰아세웠던 것이어서 정치적으로 재기했지만, 아픔은 오래도록 괴롭힐 것이다.
독자가 알지 못했거나 일본인 저자의 시각이 반영된 내용을 주로 메모해 본다.
“한국은 수백 년 동안 주자학의 나라였지만, 일본은 메이지시대가 되어서야 유교적 국가의 완성을 지향했을 뿐이다.(p.15)” 메이지의 근대 일본 구축은 봉건 체제로부터의 탈피이지 유교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꾀한 것은 아니었다. 중앙집권과 국가 시험에 의한 관료 선발을 추진한 것은 국가를 전체적으로 유교체제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자유민권운동은 사대부의 권리인 ’언론의 자유‘ 등을 주장하며 일본의 유교사회화를 추진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국인은 비뚤어진 것에는 올곧은 것으로 맞서고, 올곧은 것을 상대할 때는 올곧음을 겨룬다.“ 이는 아마도 맹자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조선 혹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이란 리理를 말한다. 理란 보편적 원리다. 천天, 즉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도덕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절대적 규범이다. 한국에서 도덕의 최고 형태는, 도덕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가 된 상태다. 도덕이 권력과 부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손상될 수 있다. 도덕이 상처를 입으면 다른 세력이 굶주린 늑대들처럼 도덕 지향적인 공격을 해 온다. 이 때문에 한국의 도덕은 영원히 풋풋하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2025년 한국 사회의 도덕에 대한 평가는 저자가 봤던 수준에서 한참이나 하향하였다. 저자는 도덕 지향성을 갖게 된 까닭을 지정학적 위치에서 찾는다. ‘힘’에 대항하기보다는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리理는 도덕성이고 기氣는 물질성이다. 리는 형이상학적 원리이고 기는 형이하학적 재료이다. 인간도 리와 기가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육체는 기이고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은 리이다. 인간은 하늘로부터 리를 부여받아 100% 선하나 기탓에 악하기도 하다. 기는 精(순수)한 것과 粗(조잡)한 것이 있다. 정과 조에 精, 通, 偏, 塞, 美, 惡, 淸, 濁이 있어서 이들의 조합으로 만물의 다양성을 낳는다. 탁한 기가 리를 흐리게 한다. 악이란 선과 길항하는 실체가 아니라 본래의 선이 조화를 잃어버린 상태다. 탁한 기도 극기나 수양하는 노력을 하면 맑게 할 수 있다. ‘말’은 코스모스이고 ‘소리’는 카오스이다. 우리가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상승 지향성이 유교 사회에 내재하는 원동력 중 하나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는 15,547명이다. 일본에서 이 제도를 모방하여 문관고등시험을 실시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일이란다. 리의 세계와 기의 세계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붙어 있어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다. 리는 수직이고 기는 수평이다. 천부경은 9×9=81자다.
“조선 유학자는 공리공론을 일삼았다”라는 말을 유포시킨 일본인들은 유교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다.(P. 129) 한국인은 문약文弱하다고 규정한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은 문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지 못했다. 한국의 지식인은 문약하지 않고 오히려 문강文强했던 것이다.(p.130)
양반은 도덕과 권력, 부를 모두 가졌고, 사대부는 도덕과 권력을 가졌으며 선비는 도덕만 가지고 있었기에 투쟁하는 구조였다고 해석한다. 조선시대 삼품이상은 4대까지 제사를 지내지만 서민은 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냈고, 갑오개혁 이후 1895년부터 모든 사람이 4대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저자는 가정을 사회의 큰 시스템(신분 질서, 정치 질서)을 유지하기 위한 완충장치로서의 작은 시스템으로 보았다. 상승 지향 사회에서 상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효도를 강조하는 가정에서 ‘님’이 될 수 있도록 유교 사회가 배려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교활한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축소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산업화에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리드하자’는 슬로건으로 이룬 정보화 사회의 형성은 한국의 ‘리’의 승리로 해석한다. 일본에서는 가해자로서 죽은 자가 아직도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조상을 불명예로 더럽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본은 과거 문제를 독일처럼 아주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다(p.243)고 말한다.
“한국을 대등한 상대로 간주하지 않는 뿌리 깊은 자세, 상상력과 포용력과 윤리가 결여된 정치가나 일부 국민의 편협한 발상, 한일의 과거와 일본인의 죄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사람들... 이것들은 일본인 자신이 변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지 않는 한, 지향해야 할 미래 같은 것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p.245)
책의 구성은 낯설다. 중요도를 고려하지 않고 소제목과 내용을 나열한 방식이 일본의 책 출판 방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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