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 종교 이후의 종교 종교문해력 총서 1
성해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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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2025. 6. 17()

2024년 가을에 불광출판사에서 기획한 <종교문해력 총서 1 종교 ~ 총서 5 원불교>를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123일 비상계엄 이후 국가란 무엇인가,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읽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해 불확실성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여 종교문해력 총서를 읽는다. 총서는 1 종교, 2 불교, 3 기독교, 4 이슬람교, 5 원불교로 구성하고 있다. 1종교<종교 이후의 종교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여러 종교 전통의 책을 총서로 묶어 출판한 까닭에서 시작한다. 선례가 없는 일임으로.

 

오늘날 종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에만 국한하지 않고 세속에서 좋은 삶곧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과 행복이라는 가치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대적 문제의식으로 세계 종교와 원불교 전통 고유의 해법과 방향을 제시한다. 전통적 신도나 신자뿐 아니라 나 같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기획하였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무슬림 혐오 현상을 우리 사회의 무지로 판단하며, 종교 문해력은 필수적인 시민역량이라는 관점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엑스터시(ecstasy)황홀경이라 번역하며 내 밖에 선다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엑스터시는 살아가면서 늘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한다.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희소한 일이기에 황홀하게 여긴다. 내면에 있는 내가 아닌 나, 내 밖에 선 나, 우리가 아직 모르는 그 무엇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육체적인 사랑이다. (p.145) 욕망의 대상과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일은 기쁨과 더불어 나를 잊게 만든다.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와야만 물을 인식할 수 있다. 즉 엑스터시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엑스터시라는 종교적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종교는 앞으로 여전히 우리 앞에 존재할까?’라는 첫 질문을 다룬다. 종교가 사회의 걱정과 고통을 어루만지기는커녕 사회가 종교와 종교인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종교만 어는 자는 아무 종교도 모른다.’라는 막스 뮐러(19세기에 힌두교 경전을 서양에 소개한 학자)의 주장으로 인문학으로서 종교학이란 여러 종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종교 이후의 종교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는 종교의 정의를 다루고, 현대 사회의 세속화와 탈종교현상, 종교가 주는 위안인 엑스터시, 세속적 신비주의, 현대에 인간의 종교성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현상인 템플스테이’, 대학 교양 과목으로 개설된 명상과 수행’, 순례를 살핀다. 끝으로 개인의 심리적 발달에 따른 종교의 심층화와 종교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다룬다.

 

여러 학자의 주장을 소개하여 종교란 인간이 물을 수밖에 없는 삶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과의 관계에서 찾으려는 시도’(p.45)로 정의한다. 세계관의 개념을 활용하여 인간의 인식행동이라는 차원에서 종교의 의미를 찾아간다. 세계관에서 본다는 단어는 시각적 인식과 이해, 해석이라는 인지적 과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사물을 그대로 본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세계관이라는 해석의 틀을 통해 파악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아돌프 히틀러,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 사실, 배우자 선택할 때 기피 조건 중 하나였던 종교 등을 사례로 소개한다.

불교에서 성불이 된다거나 힌두교에서 범아일여을 알아차리기 위해 지성, 윤리, 명상에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불교에서 계정혜 戒定慧 삼학 三學, 그리스 철학은 인간이 추구할 가치로 진선미를 제시한다.

참된 종교의 판별 기준은 이상적인 교리의 선언에 있지 않다. 핵심은 그것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 삶에 미치는 실질적인 결과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면 세속화, 경제적 풍요, 교육 수준의 향상, 정치의 민주화와 같은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적 풍요, 높은 교육 수준, 민주주의 제도의 확산은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의 삶을 결정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 주체와 관련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개념도 언급한다.

종교비판에 관한 사실을 배운다. 종교비판은 역사에서 있어 왔고 근대에 이르러 본격화된다. 프랑스 합리주의 철학자 콩트는 19세기 초에 사회 발전에 따라 합리적인 종교가 등장할 것이라 주장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성에 기반을 두고 종교를 이해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진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신의 존재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투사(projection)‘시켜 만든 이상적 이미지를 모아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이라 보았다. 종교가 아편처럼 삶의 고통을 도외시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 결과로 현실 개선 의지를 약화해 불공정한 사회질서를 고착시킨다는 것이다. 리처드 디킨스는 삶의 위안과 사회질서 유지와 같은 목적을 위해 인간이 신을 고안했다고 본다. 종교비판의 주된 초점은 종교를 인간적인 현상으로 본다는 것과 종교가 인간 소외와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참된 종교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은 종교의 이상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개인이다. 특히 개인의 삶에 미치는 실질적 결과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 더 큰 차원과의 연결, 윤리적 실천의 근거를 제시한다(p. 110)는 것이다. ‘시애틀 추장(1786~1866)’의 연설(p.115)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숲.- 은 가끔 읽어볼 일이다.

 

명상과 수행은 자신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반복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습관처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거나 불교의 머무르는 바 없이 베푸는 보시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문제의 원인으로 드러나는 결정적 이유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경전의 문구대로 세상과 타인을 바꾸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공공성이 지혜롭게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가 몸담은 현실 세계가 초월적 차원 혹은 보이지 않는 차원과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

종교는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종교는 지성적, 윤리적, 명상 분야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독자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세 분야의 수행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를 어떻게 믿을까? 묻고 과거의 내가 죽을 때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을 낳는 불가결한 사건입니다. 동일한 원리로 재결합을 위해서는 분리가, 온전한 앎을 위해서는 망각과 무지가 꼭 필요합니다. 역설은 대립 쌍의 한쪽만을 추구해서는 진정한 성정과 발달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p. 261)라고 언급한다.

 

행복을 찾는 길에서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는 성경 구정리 이를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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