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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야트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오마르 하이얌.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 그림, 윤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2월
평점 :
루바이야트
2025. 5. 29.(목)
“페르시아 니샤푸르 태생의 11~12세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얌은 오늘날 19세기 영국 빅토리아기 시인 피츠제럴드의 <루바이야트>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어 ‘루바이’는 ‘4행시’를 뜻하고 ‘루바이야트’는 그 복수형으로 ‘4행시 모음’을 가리킨다.”(루바이야트 해설 p.153) 피츠제럴드의 번역은 하이얌의 루바이 정신과 정서를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시로 재창조했다고 평가한다. 해설을 옮겨두는 까닭은 1, 0000년 전 페르시아라는 시공간이 현재와 한참 떨어졌고, 영시로 번역된 시를 다시 번역한 시를 감상하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개인적 경험 탓에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공감하는 시가 있다. 75편의 시 중에서 공감하거나 와닿는 시 몇 편을 옮겨둔다.
“그들은 떠나고 여름이 새 꽃들로 장식한 방에서
지금은 흥청거리며 즐거워하는 우리,
다름 아닌 우리가 저 아래 흙 침상으로 내려가
스스로 누군가의 침상이 되어야만 한다네.”
22번째 시. 루쉰이 한 말이 떠오른다. 루쉰은 기성세대는 주검으로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맞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 아직 쓸 수 있는 것은 한껏 써라
우리 또한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흙에서 흙으로, 흙 속에 눕게 될 테니,
술도 없이, 노래도 없이, 노래하는 이도 없이, 또-끝도 없이.
23번째 시. 내일은 태어나지 않았고 어제는 죽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남긴 ‘까르페 디엠’이 유행어가 된 고도성장 시대를 살아온 베이비 부머에게 하는 말이다. MZ 세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오, 현자들은 떠들게 내버려두고, 늙은 하이얌과 함께 오라.
인생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그 한 가지는 확실하다네.
한 가지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네-
한때 피었던 꽃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인 법.
그들과 함께 지혜의 씨를 뿌리고
내 손으로 애써 키워 보았지만
거둔 수확이래야 오직 이것뿐-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네.”
26번째 시, 28번째 시는 생명이란 유한함을 읊고 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이는 동양 사상의 뿌리에 해당한다. 생명의 유한성은 전 존재에 해당한다.
지구의 중심에서 솟아올라 제7문을 거쳐
토성의 옥좌에 앉을 때까지
길을 지나오며 숱한 매듭을 풀긴 했지만,
인간의 죽음과 운명의 매듭만은 풀지 못했네.
51번째 시. 공자는 천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 도덕과 정치를 중심으로 한 인간사회와 인간의 힘 저편에 있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법(理法)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고 도는 하늘에게 소리쳐 물었네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는 제 어린아이들을
인도할 어떤 등(등)을 운명은 갖고 있는가?”
그러자 하늘이 대답했네- “눈먼 지성뿐이로다!”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려는 사고는 창세기로부터 베이컨의 <신기관>을 거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를 추동해 온 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발전하고 있는가? 역사는 우상향하는 진보가 아니라 그냥 선일 뿐일지도 모른다. 눈먼 지성이 판단한다.
만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 버리는 사막에서의 한순간,
생명의 샘물을 맛보는 것도 한순간-
별들은 지는 중이고, 무(無)의 새벽을 향해
카라반은 길을 나서네- 오, 서둘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럼에도 “오 서둘러라!”는 진취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자고 해석하고 싶다.
이렇게 노력하고 저렇게 논평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끝없이 찾아 나섰던가?
열매 하나 없이, 아니면 쓰기만 한 열매 찾아 슬퍼하기보다는
차라리 무르익은 포도로 흥겨워하는 게 나으리라
쾌락의 가치를 중시하는 스토아 철학자의 삶과 실존주의자의 삶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