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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평점 :
https://brunch.co.kr/@grhill/478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2025.1.19.(일)
당 테종의 태평성세를 담은 『정관정요』 에 ‘이창업(易創業)’, ‘난수성(難守城)’이란 글이 있다. 창업은 쉬우나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다.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에 벌어진 일은 해가 바뀌고도 일상을 혼돈 속에 가두고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ow Democracies Die』를 읽어가며 미국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며,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저자들이 ‘들어가며’에서 밝힌 ‘모든 민주국가에 던지는 경고’를 다시 읽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핵심 주장을 5~6페이지에 걸쳐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어 한국의 현실을 조망하고 바른 태도를 생각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라’라며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논증한다. 모든 독자가 제시한 자료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도 저자의 주장이 신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 저자의 문제의식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냉전 기간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죽음 가운데 75%는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 남미대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겪었고 한국도 여러 번 겪었다. 민주주의는 군부의 무력과 강압으로 순식간에 죽는다. 둘째,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자마자 그 절차를 해체해 버리는 것이다. 셋째, 당파적 정치의 양극화가 민주적 규범을 깨트리고 투표를 통해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민주주의를 허문다. 가장 많은 경우가 셋째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부패 정권에 맞서 싸운 정치 아웃사이더(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의회 다수당이 되어, 방송국 폐쇄, 야당 인사와 판사, 비우호적인 언론인 탄압, 의회 무력화(민주주의의 붕괴가 투표장에서 일어난다)를 통해 독재를 시작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틀은 그대로 보존하지만, 그 내용물을 완전히 갉아 먹는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잠재적인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저자는 세 번째 관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살펴 두 가지 기본 규범인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이해(understnading),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당정치에서 적용할 필수적이고도 시급한 저자의 주장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로 요약할 수 있다. 추상적인 두 표현은 본문을 통해 미국의 역사에서 수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규범이 약해진 원인을 당파적 양극화에서 찾는다. 미국에서 양극화는 정책의 차이를 넘어서 인종과 문화에 걸친 본질적 갈등으로까지 뻗어 있어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정치와 무관하게 읽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9개 장에서 핵심 주장의 논거를 살피며 미국과 남미, 아프리카, 한국 등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례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메모를 중심으로 기억할 내용을 남긴다.
≪이솝 우화≫ - <말과 사슴, 그리고 사냥꾼>은 한국의 여당이 겪은 상황과 다르지 않다. “아웃사이더 정치인들은 선거나 강력한 정치인과의 협력을 통해 권좌에 올랐다. 기존 엘리트 집단은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으며, 나중에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어긋나고 말았다.” (p. 21)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아웃사이더는 누구이고, 그를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세력은 누구인지 다 알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를 연구한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국민이 아니다”(p.28)라며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 집단, 특히 정당이 사회적 거름망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란 것이다.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 신호를 개발(도표 p. 32)했는데, 독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을 유심히 지켜보라 한다. 정당과 그 지도자들에게 잠재적 독재자를 걸러낼 일차적 책임이 있다며 정당은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고 억제할 힘이 있어야 하고, 정당의 조직 기반에서 극단주의자를 제거 해야 한다. 반민주적 정당이나 후보자와의 모든 연대를 거부하고, 극단주의자를 체계적으로 고립시켜야 한다. 끝으로 극단주의자가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를 때 주요 정당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트럼프의 충격적인 정치 성공에 정당의 문지기 기능 마비에 있다고 본다. 문지기 제도가 제역할을 하지 못할 때 주류 정치인들은 위험한 인물이 권력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독재자에게 순순히 권력이 넘어가는 이유는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선대위원장과 후보가 결별한 이유중 하나였다)과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에서 권력자와 의회가 대립할 때 권력자는 행정명령(미국의 경우가 그렇다)을 남발한 사례를 보여 준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선동가의 말에서 시작되어 가짜뉴스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포와 적대감, 불신을 부추긴다. 법의 테두리 안(위법만 아니면 된다는 방식으로)에서 의회의 승인을 얻거나 대법원으로부터 합헌 판결을 받는다. 경쟁자를 매수(광고 몰아주기 등)하거나 탄압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수세대에 걸쳐 그들의 국가가 신의 뜻을 따르는 선택받은 나라이며, 세상의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이라는 믿음 한가운데에 미국 헌법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p. 127)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규범에 의존한다. 규범은 시민사회에서 존중받고 미국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규범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일부 시기에 빈번한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동은 의회를 피하려는 조치로 규범(한국은 시행령으로 나타난다)을 어긴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의회나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헌법 체계가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필요한 시점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둘은 민주주의의 감시견이다. 동시에 행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사례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 당시 루즈벨트 행정부는 임기 동안 3,000번이나 행정명령을 활용했다. 1950년대 초 메카시즘은 상호 관용의 규범을 위협했고, 닉슨 행정부도 상호 관용 규범을 무시하고 독재를 향한 움직임까지 공식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민주당 인사에 대한 도청과 감시는 민주주의 규범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규범 파괴로 ‘거짓말’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일탈의 용인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p.251)며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의 통찰인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에 대처하는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장을 소개한다. ‘루이 16세가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 센 강에서는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문장과 같은 맥락이다. 예의, 언론에 대한 존경, ‘거짓말하지 않기’와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무너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그 흐름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점차 자극에 둔감해진다.(한국에서 12. 3 내란을 옹호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불면하게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야말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법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말해 준다.
칠레는 정당 간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고,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가톨릭민주동맹, 즉 기민당이 가톨릭과 개신교가 손을 잡고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것을 모범 사례로 인정한다.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한 정치의 양극화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이 겪어야 할 문제라고 한다. 저자의 논거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죽어가고 있다.(2025. 1. 19. 지금 이 시각 법원이 파손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