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가다 - 사소한 일상의 세밀한 기록
전지영 지음 / 소다캣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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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승무원, 책 디자이너, 만화가, 동물보호 활동가, 작가, 1인 출판사 대표.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연결이 쉽지 않다. 27년간 한 직종에 근무한 경험으로 볼 때 작가의 변신과 경력은 놀랍다.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삶에서 기본이기 때문이다. 잠재능력(potential)과 결단력이 있어야 변신할 수 있다. 책방으로 가다는 작가의 일상을 책과 연결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방으로 가다를 읽다가 독특한 책의 구조, 구성력을 본다. 에세이라서 읽다 보면 내 마음에 가까이 와닿는 문장이 있다.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이 문장은 다음 장의 문 앞에 걸렸다. 책 열 권에 관한 글에서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한 문장은 다음 장의 디딤돌이 되고, 첫 장의 어느 한 문장은 다음 장의 디딤돌이 되도록 책을 엮었다. 작가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나 같은 독자에겐 놀랄만한 일이다. 작가가 선택한 문장 중 80%를 골랐으니 하는 말이다. 여성 작가의 섬세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거로 생각한다. 장간 연결은 색깔이 다른 천을 모아 만든 화려한 패치워크가 아니라. 비슷한 색깔인 진주 목걸이처럼 이야기가 책과 연결돼 있다. 어쩌면, 따스한 봄 햇살과 가볍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백색 셔츠 10장이 걸린 빨랫줄을 보는 듯하다.

 

10개 문장은 나열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고, 10개 문장을 이어보면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공자의 말, 철학으로서의 불교, 포스트 모더니즘, 스토아 철학, 실존주의 철학, 본질과 실존의 문제, 에포케 등을 쉬운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삶의 어떤 부분은 말할 수 없다.

햇빛이 비추는 곳에 그림자가 생기듯 우리는 각자 자신의 그늘을 짊어지면서 산다.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삶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삶의 과정에서 일어난 그 사람의 태도뿐이다.

모든 것이 이처럼 선명한 날, 나는 오히려 희뿌연 먼지처럼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정말이지 삶이란 억지로 해야 할 일과 참아야 할 일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무의미했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빛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이라는 순간뿐이다.

관계의 이면에는 보이는 것과 다른 진실이 있다.

내가 원한다고 여기는 삶이 정말로 원하는 삶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프롤로그에서 찾은 첫 문장의 그것은소설이다.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기획 출판했지만,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고백은 몰라서 읽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보내니 위안 삼기를 바란다. 에필로그의 한 문단(책방으로 가다는 잠깐이나마 손에 쥐었던 어떤 인상에 대한 기록이다. 타인을 위해서 그다지 기억될 필요 없는, 그래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두어도 상관없었을 그런 것들을 썼다)은 겸손한 작가의 마음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로 본 사람이라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야 할 동기를 준다. 에세이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거다.

 

몇 년 전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읽어 대단한 서사나 괴기한 사건, 영웅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글이 편안함과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음을 안다. 책방으로 가다도 경쟁 사회에 어울리는 확실한 목표와 성취적인 행종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잠깐 쉬어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자고, 그래서 번 아웃이나 자신을 해치는 결정을 할 순 없다고 이야기한다. 작가의 속내와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다른 에세이와 차이를 만들었다. 표지와 본문을 채워 준 그림이 남자가 보기에 모두 이쁘다. 책의 크기와 부피가 주는 부담은 요즘 표현으로 0에 수렴한다. 여성 독자가 책방으로 가다를 놓친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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