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미술관 - 생각을 바꾸는 불편하고 위험한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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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관

2023.6.15.()

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 이은 김 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관을 만난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기 전에 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의 내공이 미술과 역사 공부에 터를 두고 있어 탄탄하다고 여겼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 이은 뜻밖의 미술관도 그가 모더니즘이 단계를 뛰어 너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임을 확인하게 한다. 정규교육이 품지 않았거나, 품지 못한 영 교육과정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시선에 기대 이를 발견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교양 예술이다.

 

첫째, 전통적이고 교과서적인 미술(그림) 세계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사 학계 권위자의 관점을 소개하면서도 작가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유홍준의 화인 열전시리즈가 그러하듯이 13개의 명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노출하고 있어 독자의 지적 호기심까지 자극한다. 11명의 화가를 재조명하는 과정도 화가의 삶을 바탕으로 하기에 화가별 대표작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보통사람, 이른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오주석의 한국의 특강이 도화지에 12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열악한 경험을 가진 독자에게도 동양화를 읽는 법을 알려 주었듯이 역사, 시대적 배경과 함께 풀어가는 이야기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란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셋째, 정형화된 그림 해설이 아니다. 독자는 그림을 보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곁가지를 만들어 독자의 독서 경험을 떠올리게도 한다. 고갱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떠올리고, 한 걸음 나아가 손철주, 이주은의 , 그림이다를 읽으며 느꼈던, 화장실에 가기도 아까운, 그런 기분을 맛본다. 오늘 신문기사에 등장한 클림트의 <부채를 든 여인>을 보며, 우키요에에 감동한 프랑스 미술가들이 미술사 조를 만들었음까지 연상하게 된다.

 

고전 조각의 이상적인 남성상이 투사된 흰 피부의 키 크고 잘생긴 남성’(p.26)이라는 예수의 전형이 탄생하는 과정과 BBC의 합리적 추론(검은 피부의 육체 노동자)을 소개한다. 어떻든 위대한 성인이자 스승임은 틀림없지만, 외모지상주의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작가의 시선을 본다. 독일의 미술사가 빙겔만에서 자리 잡은 백색의 미학은 과학의 발전으로 고대 조각이 대부분 채색되었음이 밝혀졌으나,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경로 의존성은 쉽게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한다. 피그말리온을 리얼돌의 창시로 보는 관점은 교육계에서 중시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관점이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생은 교사가 기대하는 대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라파엘파의 그림 속 판타지아’(P.51)를 읽으며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떠올린다. 고바이다의 이야기는 통치와 내조의 모델로 가르치고 배우는데, 김 작가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아름다운 신화로 본다.

황금비율에 대한 여러 논의와 작가의 생각은 숫자의 일치(?) 같은 수학적, 과학적 시각이 아닐까? 황금비인 1:1.618과 다비드 1:1.535, 밀로의 비너스 1:1.555는 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을까? 수치에 차이가 있으니 황금비는 거짓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지나치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인간은 세상에서 어떤 패턴을 보고 의미를 찾는 존재”(P.75) 라는 작가 관점에 동의한다. 유럽 중세에 대한 평가는 이슬람 학문이 번역돼 소개된 시점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누고 구분해 준다면, 브뤼헐의 작품을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웃어가며 코드피스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플랑드르의 캉탱 마시를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린 대표 사례로 보여주고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렸음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그로테스크한 인물을 흥미있는 대상으로 보았음을 작가는 안타까워한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에 페르소나가 있음을 알려주며, 가면 뒤에 숨겨진 모습을 추측해 보인다.

 

희대의 호색한이었던 제우스에 대한 평가에 100% 공감하며, 제우스에 비하면 카사노바는 수준 이하다. 미켈란젤로가 여성의 몸을 남성처럼 그린 이유(P.197)로 열거한 남성의 몸을 표현하는 데 만족감, 여성 누드모델의 희소성, 여성의 몸이 불완전하다는 고대 그리스 미학, 남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미적 취향 등에서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스페인에 가면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가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봐야 한다. 작가가 르네상스의 천재는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P.225)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서 소개한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두고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인지,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는지 알아보자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생학에서 언급하는 합스부르크 턱도 소개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린 마담 르브룅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 초상화가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갖는지 소개한다. 18세기 이전 초상화가 입을 굳게 다문 까닭은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충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며칠 전 여권 재발급 반려 사유가 이가 보인다는 거다) 작가는 앙투아네트와 르브륑의 관계를 우정으로 해석한다. 고갱의 그림과 함께 학계 일부에서는 그를 문화 식민주의자 혹은 미성년 소녀들을 성 착취한 소아성애자라 비판하는”(P. 302) 관점을 소개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아름답지 못한 측면, 소설 롤리타가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있었던 구습이자 유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던 독자의 시선이다.

 

왼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 오른손은 음부 위에 얹고 있는데”(P.228)는 그림을 몇 번 보아도 알 수 없다. 관람자의 시선이 기준인지, 그려진 잠자는 비너스가 기준인지. 조르조네는 기대어 누운 여성 누드의 원조”(P.230) 라는 지식은 기억해야 그림 비너스의 연대기를 만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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