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 - 2500년 독서 잠언의 집대성
공자.주희 외 지음, 장밍런 엮음, 김명환.김동건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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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 讀經

2023.4.26.()

중국의 교육자 장밍런(張明仁)1940년에 고금명인독서법을 엮었다. 2,500년 중국 역사에서 독서란 무엇인가에 답한 공자와 주희 등 290여 명의 글을 모았고, 이를 번역한 책이 讀經이니 2500년 독서 잠언을 집대성했다는 광고가 허언은 아니다.

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는 을 배운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책을 읽는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의 의미는 오히려 과 가깝다. 또 하나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구술문화 시기엔 암송이 의 전부였다. 문자문화 시대에서 암송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칠 백 구십여 쪽 분량의 본문에서 수많은 현자의 견해를 만났지만, 讀經이전에 접한 思而不學則殆, 學而不思則罔을 으뜸으로 본다. 공자와 주희가 남긴 잠언을 비중있게 다룬다.

 

청대까지 은 암송을 전제로 하므로 꾸준하게 매일매일 일정 분량을 암송하기를 강조한다. 죽간을 맨 끈이 닳도록 혹은 백 번, 천 번 소리 내 입에서 귀를 거쳐 마음으로 전해질 때 암송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아둔한 사람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경험을 나열한다. 글자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송하기 위해 써보라 한다. 요즘 유행하는 필사가 구술문화 시기 공부법과 맥락이 닿아 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독한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도 강조하는 방법이다. 독서 노트, 독후감, 서평 등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자기의 언어로 요약하여 두는 일은 문자문화 시대에는 더욱 필요하다.

송대 이전에는 암송해야 할 책의 양이 적어서인지 어떤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글이 많다. 넓게 읽으려 하지 말고 정해진 몇 권을 암송하면 다른 책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밝힌 견해는 뒤에 옮기려 한다. 이치를 깨달으면 다른 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格物致知라는 단어가 이를 표현한다. 서적의 종류가 많아진 송대 이후에는 넓게 하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명, 청대에 이르면 博學多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의 범위가 넓으면서 깊이도 심오해야 함을 강조한다. 演繹에서 歸納으로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공자나 맹자의 글이 짧은 것에 비해 후대로 갈수록 을 논하는 글의 길이가 길어진다. 쉽게 설명하려는 뜻이 있으리라 여기지만, 讀經에서도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논리 절약의 원칙을 볼 수 있다. (이하 생략)

 

알지 못하면서 창작하는 자가 있는데, 나는 그런 일이 없다. 많이 듣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택해서 본받고, 많이 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알고 난 다음 일이다.” 여기서 지기록하다이다. 어떤 곳은 이를 述而不作이라고 한다. 할 때는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이미 품고 있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을 비어있는 상태()라고 한다. 현대 교육 방법론 중에 오수벨의 유의미학습에서 선행조직자가 있어야 새로운 정보를 포섭하여 의미있는 학습이 된다는 이론과 다른 대척점에 있다. 이것도 대척점이라고 보기보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공부()할 겨를이 없다라고 말하는 자는 비록 겨를이 나더라도 공부할 수 없다.

군자는 널리 배우면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할까 근심하고, 익히고 나면 실행할 수 없을까 근심하며, 실행할 수 있으면 겸손할 수 없을까를 근심한다. 한서를 쓴 반고는 기예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정립되고, 명성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겨울, , 장마철이 한가한 때이니 공부하라는 동아시아 몬순의 특성에서 나온 경험치다. 질문이란 자신이 배웠으나 깨닫지 못한 일에 관해 간절히 묻는 것이고, 근사(近思)란 자신이 미칠 수 없는 일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뜻을 세우지 않고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성취할 길이 없다.

 

()나라 때 갈홍이 말하기를 내가 여러 책에서 필요한 것만 베껴서 엮고 그 요점을 뽑으니, 공들인 것은 적으나 거둘 것은 많았고, 생각은 번거롭지 않았으나 보는 시야는 넓어졌다.” 독서 노트를 쓰는 습관은 하는 데 필수적인 방법이다. ‘마음에서 배우려는 뜻이 없으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책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학습태세에 관한 교육학 이론과 같다. 학문을 익히고 문장을 논하는 것은 봄의 꽃이요, 자신을 수양하고 행동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가을의 열매로 비유한다.

 

송대 독에 관한 문장을 요약하면, 사람의 재주와 학문은 적절하게 사용할 때 귀해진다. 많이 배우고도 활용할 수 없다면 배우지 않은 것과 같다. 이는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에 닿아 있다. 배움에는 자득自得보다 귀한 것이 없다. 자득한다는 것은 외부에 달린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터득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백 권의 책을 두루뭉술하게 읽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정밀하게 읽는 것만 못하다. 여력이 있는 이후에 여러 책을 보게 된다면 여러 편을 섭렵해도 또한 그 정밀함을 얻을 수 있다. 글짓기는 억지로 할 수 없고, 일을 겪어야 지을 수 있는 일이다. 반드시 가득 채운 나머지에서 드러내고 흠뻑 젖은 후에 흘러야 최고점에 이를 수 있다. 이른바 가득 채우고 흠뻑 젖는 것은 반드시 학문이 해박한 가운데 오는 것이다. 독서할 때는 많이 읽는 것에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되고, 항상 자기 역량이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 정독이냐 다독이냐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문장이다. “천하의 일에는 이익과 손해가 서로 절반씩 있는데, 완전히 이익만 있고 조금의 손해도 없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늙음과 젊음을 따지지 않으니, 책 한 권을 보면 곧 한 권의 보탬이 있고, 하루 동안 책을 보면 하루의 보탬이 있다. 그러므로 완전히 이익만 있고 조금의 손해도 없다는 송대 예사의 말이다. 독서할 때는 출입법을 알아야 한다.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것이 책에 들어가는 법이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책에서 나오는 법이다.

주자는 6가지 조목으로 독서법을 정했다. 순서점진順序漸進 : 순서에 따라 점차 나아간다. 순서를 따르는 것이 근본적인 기초를 쌓는다 방법이다. 숙독정사熟讀情思 : 익숙하게 읽고 정밀하게 생각한다. 허심함영虛心涵泳 : 마음을 비우고 깊이 몰두해서 읽는다. 절기체찰切己體察 : 절실하게 여겨 체득하고 살펴야 한다. 착긴용력착緊用力(책에 착을 로 표기 하고 있고, 착은 아래 한글에서 찾을 수 없다) : 빠듯하게 힘을 쏟는다. 읽는 기한을 넉넉하게 하되 독서 과정을 빠듯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푼다. 거경지지居敬持地 : 에 처하여 뜻을 유지한다. 몰입해야 함을 말한다.

 

원대의 독에 관한 글을 요약하니, 뜻에 정해진 방향이 없으면 끝없는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머무른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 그렇게 하고도 망령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뜻을 세우는 것(立志)을 가장 우선시하는 까닭이다.

명대의 독에 관한 글을 모아 본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깨닫는 바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그때마다 기록해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어 막히게 된다. 책을 읽어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는 것은, 약을 먹어 병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배움은 의심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핵심이다. 배움은 꾸준함이 중요하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은 꾸준함과는 다른 것 같겠지만 꾸준함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학문이 두루 통달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 때는, 자기의 견해와 합치되면 옳게 여기고 자기의 견해와 어긋나면 그르다고 여기니, 마치 남쪽의 배를 기준으로 북쪽의 배를 비웃고, 의 정강이가 긴 것을 기준으로 오리의 정강이가 짧음을 미워하는 것과 같다. 책을 볼 때 많이 읽기를 탐하거나, 일 할 때 빨리하기를 구하는 것은 모두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많이 읽기를 탐하면 정밀해지지 않고, 빨리하기를 구하면 오류가 많아진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어리석음에 가로막히고, 독서만 하면 문자에 가로막힌다.

 

이제 청대의 을 살핀다.

학문하는 것은 젊었을 때 해야지, 나이가 들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더라도 노력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독서에는 죽도록 열심히 하는 공부는 있어도 즐겁게 하는 공부는 없다.’는 위제서가 한 말이다. 독서는 반드시 정밀함과 익숙함을 귀하게 여겨야 하니, 빨리 읽으려고 하는 것이 독서의 가장 큰 변이다. 이는 현대에 들어 정보량을 핑계로 속독법을 강조하는 강사들에게 청대의 학자가 일침을 놓는 격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지식을 깊이 추구하는 길은 널리 배우기(博學), 자세히 따져묻기(審問), 신중히 생각하기(愼思), 분명하게 분별하기(明辯)으로 독서라는 말이 없다. 독서는 지식을 깊이 추구하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다.

모든 일이 지나치게 각박하게 하는 것이 마땅치 않으나, 독서와 같은 것은 철저히 해야 한다. 모든 일이 욕심 내는 것은 마땅치 않으나, 책을 사는 일은 욕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을 읽을 때 철저하게 읽지 않으면, 많이 읽어도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하지만 많이 읽지 않고 철저하게 읽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은 해가 나올 때의 빛과 같고 장성해서 배우는 것은 촛불의 빛과 같으니, 비록 배움이 늦은 자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지 않는 자보다는 낫다. 학령기와 서구 조기 교육의 개념과 같다. 독서를 잘 하는 자는 항상 부족하다고 여겨 지혜롭게 되고, 독서를 잘 못 하는 자는 항상 자만하여 어리석게 된다. 청대 저명한 학자인 황본기는 항우본기項羽本紀가 사마천의 가장 숙련된 문장이라고 평한다. 일반적으로 독서할 때는 반드시 과정을 세우고, 아침에 이 책을 읽었으면 아침마다 이 책을 읽어야지 저녁으로 옮겨서 해서는 안 되고, 저녁에 이 학업을 익혔으면 저녁마다 이 학업을 익혀야지 아침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일정한 시각과 일정한 과목을 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순서대로 점차 나가야 한다. 현대 교육학의 위계학습, 프로그램학습에 닿아 있는 문장이다. 공부방(가숙)의 과정에는 훑어보기(), 읽기(), 베껴쓰기(), 글짓기()을 주요 목표로 산는다.

 

讀經을 읽으며 배움, 독서, 교육을 생각할 때, 近思錄이 위대한 책임을 다시 확인한다. 근사록은 여러 판본이 있지만, 2004년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내놓은 近思錄이 가장 좋다. 역자 서문만 읽어도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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