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 논픽션 전라도 1000년
정남구 지음 / 라의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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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가을 무렵 책이 나올 때부터 사보자 했던 책이다.

내 삶의 터전이 충청도 공주다. 삼남길에 있어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 사랑하던 이몽룡이 과거 급제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목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러 전라도로 내려가던 길목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거리가 소백산맥 너머보다 가깝고, 차를 갈아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인지거리도 멀지 않다. 어떤 지방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없다. 멍청도, 뺀질이, 감자바위, 문둥이, 개땅쇠가 비하하는 단어란 정도만 인식하고 산다.

안암동에서 최영준 교수가 강의 시간에 문둥이의 어원이 文登이로 보이며, 이는 과거 급제를 통해 중앙 권력에 들어가려는 성향을 품은 말이고, 개땅쇠란 開土者(는 놈, ), 이는 해안 저습지 간척을 통해 땅을 얻고 살아가려던 성향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영남대로><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을 내놓은 존경하는 분이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렇다. 전라도는 천대받은 땅이다. 차별받은 사람들의 땅이다.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전라도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중략) 하지만, 빼앗은 자들은 상대를 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양심을 달래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전라도에는 빼앗아갈 것이 너무 많았다. 전라도가 폄훼를 당한 진짜 이유가 이것이다.”라고 전라도 사람의 아픔을 적어두었다.

독자로서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나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속상해 하지 마세요.” 그리고 산업화가 가져온 환경오염의 폐해가 다른 지방보다 적고, 언젠가 신문 기사와 통계는 산업화된 지역보다 효와 가족 유대가 강한 성향이 남아있다는 부러운 내용이 있었음을 말 해 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논리적으로 글을 써서 왜 차별하고 있는가를 소리치지 않고, “전라도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구만이라고 생각해 주길 기대한다.

독자로 나는 그래요. 언제 어디서나 권력을 쥔 기득권자들의 근거 없는 부정적 인식이 폭력으로 나타난 것일 뿐 입니다. 헬기에서 광주 시민에게 기총소사를 명령한 놈들이 사람이 아니지요.”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각 장마다 66, 40, 49, 40, 75, 58, 57, 60 합계 445개 각주를 달아 근거를 밝히거나 보충 설명한다. 미처 알지 못했다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옮겨둔다.

1장 코 없는 사람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전라도 상황을 중심으로 왜의 침입과 패주과정을 설명한다. 선조의 무능함과 논공행상에 대한 평에서 명의 지원만 강조하고 조선 내의 관군과 의병에 대해서 저평가하는 모습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진주성이 포위된 날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이순신의 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라 쓰고 호남을 지킨 상황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곡창을 지킬 수 있었기에 왜의 공격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2장 불이문(不二門) : 조선 초기 보우 스님의 역할과 전횡과 유학자의 연기설 비판, 왜의 침입에 승려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초의선사, 진묵대사의 이야기는 양념이다.

3장 신선 : 허균과 전라도의 인연, 여러 선사들의 이야기다.

4장 땅 : “곡식이 익지 않은 것을 기라 하고, 채소가 익지 않은 것은 근이라 한다.” 백제 시대의 기근, 조선조 정전법(자 모양으로 땅을 구등분, 유교에서 이상으로 삼은 토지제도), 벽골제, 눌제, 활등제 등 전라북도 저수 시설의 규모와 세금, 소출을 역사 자료를 갖고 소개한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은 부안에서 살면서 지은 것이라.

5장 선비 : 조선조 전라도 선비들의 이야기로 저자는 이인좌의 난(1728, 무신난)’이 호남 사족들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완전히 밀려난 시기로 파악한다. “이후 권력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될 때까지 기호 노론 세력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p.265)

영조 때 고창사람 황윤석(1729~1791)53년간 일기를 썼다. “집권 사대부들은 호남의 고을 수령으로 부임하는 이들에게 호남의 풍속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주입했고서울에서 편견과 차별을 마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한다. 역적은 한성에서 많이 나왔고, 이인좌의 난만 하여도 삼남에서 일어났고, 끝까지 저항한 곳이 영남인 것으로 보아 권력자들이 전라도를 반역의 기운 있다고 한 것은 호남인을 등용하지 않는 핑계거리라고 적었다. 독자가 판단하기에 선비장은 책의 핵심이다.

6장 혁명 : 삼정의 문란, 18세기 조선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 변화(조선 군인과 일본 군인의 비교와 조선 왕이 일본의 노비가 될테니 살여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포함된 극장 공연,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극 공연 등), 전봉준과 보국안민을 기치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한다.

7장 개벽 : 강증산, 차경석, 박중빈 등이 만들고 이끌어간 신흥 종교에 대한 이야기다. 차경석은 고려 광종과 조선 세조, 대한제국 고종만이 지냈던 고천제를 지냈다. 이는 일제 초기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핍박받던 사람들에 대한 부응이었다. 강증산은 해원상생을 목적으로 했다. 강증산의 후계자 차경석이 이끈 보천교는 한 때 신도가 수백만이었다는데 본소(경복궁 근정전에 버금 가는 규모로 대들보를 만주에서 3년에 걸쳐 가져옴)가 정읍에 있었다. 흔적이 남아있는지 가봐야겠다. 보천교도들이 독립군과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주었다는 사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친일세력(시국대동단)으로 평가 받았고, 일제에 의해 세가 급격히 약화된 보천교 정보는 인터넷에서 조작으로 떠다니던 정보로 들던 바이다. 1920년대 개벽은 천도교 잡지였고, 이에 대응하려고 보천교는 보광을 창간했다. 김규식, 여운형이 모스크바 세계약소민족회의에 참석하고, 김좌진 장군이 무장하고, 조만식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는 데는 보천교가 지원했다. 이시기 원불교가 만들어졌다

8장 밥 : 장성의 하서 김인후가 정조 대에 문묘에 배향되었으니 호남의 대표 유학자다. 1900년대 초 호남의 지주들이 토지를 확대한 과정을 다룬다. 개항이후 일본인들이 전라도에 들어와 토지를 사들여 대농장을 경영했던 사레들도 제시한다. 논문을 쓰며 봤던 불이흥업을 만든 일본인이 후지이 간타로다. 암태도 소작 쟁의와 해방후 미군정, 대한민국의 토지 개혁을 파악할 수 있다.

 

책 뒤표지 전라도에는 빼앗아 갈 것이 너무 많았다!‘는 잘 뽑은 카피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는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가 쓰고 20181015일 라의눈에서 본문 470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논리는 딱 떨어지지 않지만, 저자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전라도를 이해하는 책이라는 가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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