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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스무 해가 돼 간다. 수업을 끝내라는 종이 울리자, 한 학생이 “미제는 물러가라!”라고 소리치며 복도로 나갔다. 아버지는 농민회 활동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이 무엇을 알아서 미제는 물러가라’라고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미국, 아메리카...... 오십이 넘어가며 원망과 고마움이 함께 하는 나라다. 가쓰라-데프트 밀약과 분단의 원인이자 두 차례나 쿠데타를 묵인한 점에서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기 각종 원조 제공과 군사적 보호막이 돼 주었고 브레튼우즈 체제 덕분에 수출로 이만큼 먹고살게 된 배경을 생각하면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이자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박에 없는 상황이다. 결자해지! 38선을 그었으니 통일에도 제 몫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 보수 진영의 입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라고 한다. 『The Absent Superpower』는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입을 통해 미국의 국제외교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지정학은 “결국 선택지들과 제약들 사이의 균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 나라의 지리적 여건이 대체로 그 나라가 직면하는 취약점들과 그 나라가 쓸 수 있는 방편들을 결정한다.”(p. 406)
차례를 살펴보면 1부는 ‘셰일이 창조하는 신세계’로 셰일은 너무나 미국적인 에너지라며 석유가 에너지의 지위를 점하는 세계에서 셰일의 가치를 살펴본다. 2부 ‘무질서’에서 셰일의 등장은 ‘구세계의 종언’과 미국의 전략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게 되고, 유럽과 러시아의 가상 전쟁,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가상전쟁, 동북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 타이완의 석유를 둘러싼 각축을 예상한다. 3부 ‘미국의 역할’에서는 미국의 가용 수단을 살펴보고, 동남아시아와 중남미가 여러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개편될 새로운 세계에서 낙관적이라는 미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피터 자이한은 석유를 둘러싼 동북아 각축전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일본 편이 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본다. (피터 자이한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고, 중국을 과소평가했다. 지정학적 평가는 지리학과 다른 각도에서 내리니 눈여겨 볼만하다. 그럼에도 페르시아 만의 혼란은 석유를 100% 수입해야만 하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를 생각할 때 뼈아픈 지적이다.)
제1부 - 세일이 창조하는 신세계
2007년~2014년간에 셰일의 에너지 특성과 미국 셰일 산업의 진화로 미국의 에너지 체계를 변화시켰다. 미국은 더는 페르시아 만에서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셰일 생산의 효율성 증대가 셰일 산업의 성공을 이끌어 미국의 산업 기반을 개조하고 있다. 소비지 인근에서 생산하는 세일 유정은 가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 낮은 가격, 안정적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셰일 가공 부문과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된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는 세일 덕분에 가정의 소비지출이 절감되고, 풍요로운 소비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미국은 지질적으로 지리적으로 최대 셰일 매장지역이고, 기술 인력도 풍부하다. 더구나 지하 광물권을 토지 소유 민간인에게 부여하는 나라라 사익 추구를 위해 개발에 노력한다. 세계적 금융대국으로 자본 공급이 수월하고, 트럭 운송비의 1/10 수준인 파이프라인을 100만 마일 이상 깔고 있다. 아직 미국 말고는 셰일 산업을 발달시킬 역량이 있는 나라가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할 때 세일 혁명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대단히 미국적인 사건이다. 세일 혁명으로 미국은 더는 세계 에너지시장과 엮여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세계에 어떤 모습인가?
제2부 - 무질서
미국은 망하려고 발버둥 쳐도 망하기 힘들다. 미국은 2차대전 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세계의 경제와 군사동맹을 유지해 왔다. 인구구조의 변화 등의 요인으로 앞으로 미국은 수입국의 지위를 버려 세게 무역 체제의 외곽으로 물러나고 있다. 여기에는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게 된 요인의 비중이 크다. 1973년부터 2007년까지 자국의 석유 수입을 위해 석유 시장의 안전과 유통망을 관리하던 미국이 흥미를 잃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세계로부터 손을 떼는 과정에 있다. 그 증거로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 타국과의 무역 연관도가 최소 수준이다. 21세기 석유의 주요 소비지는 동북아시아다. 세계 석유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주요인을 셋으로 분석한다.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동북아시아의 석유를 둘러싼 각축전인 유조선 전쟁이다.
러시아 국경선은 12,000마일이다. 러시아는 인구구조상 인구 급감이 예상된다. 이 여건에서 유럽과 전쟁을 시작한다면 지구전이 되고 러시아가 이기든 러시아에 저항하는 연합국이 이기든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피터 자이한이 예상하는 러시아의 유럽 침공은 1단계 우크라이나 침공은 쉽게 달성하고, 2단계로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할 것이며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필사적 저항은 러시아 해군을 궤멸시키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3단계로 폴란드를 침공하나 독일의 저항에 직면하고 4단계로 코카서스를 침공할 텐데 터키는 저항 능력이 있고, 터키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러시아는 터키를 잡아 두려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 간 지구전에서 미국은 어찌할까? 직접 개입할 명분과 실익은 없지만 저항국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은 미국의 전략이 작동하게 하는 핵심지역이었다. 카타르에 미중부사령부가 있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에너지 자급은 미국을 페르시아만에 엮어 두었던 논리를 구성하는 연결고리를 끊어가고 있다. 미국이 발을 뺀다면 40여 년간 이 지역에 존재해 온 전략적 평형상태는 봄날 강 표면의 얼음 갈라지듯 깨진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결이 예상된다. 둘 다 문화적 자부심이 높다. 사우디의 전략은 이슬람주의자 전투원을 수출해 저항운동을 양산하고 돈으로 이란의 대리자들을 매수해 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을 폐쇄할 것이나 장기적으로 봉쇄하기에는 역부족하고 되레 이란의 석유 수출이 곤란해질 것이다. 이란의 페르시아만 봉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나라는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뿐일 거다. 현재 해군 역량의 순위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호주>한국>타이완 순이다.
이란은 정보 체계의 우수함을 이용해 사우디내 소수 민족을 부축이고 사우디도 이란의 쿠제스탄 민족봉기나 아제르바이잔 봉기를 유도하거나 지원할 것이다. 두 나라의 전면전을 가상할 때 이란이 승리하려면 사우디로 진격하는 길의 인프라가 부족해 지체될 것이다. 이라크의 바스라를 점령하고 가야만 한다. 쿠웨이트로 점령해야만 사우디로 진입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이란의 병참 능력이 안 된다. 탱크, 공군 등 군사장비가 구식이다. 이란이 지형적으로 침략당하기 어렵지만 침략을 강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개입을 꺼린다. 이라크 국경에서 이란을 제압하거나 공군력을 동원할 수는 있다. 이란, 사우디 간 전쟁은 지구전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고 중동 여러 나라의 산업 기반, 전력 공급 시설, 농업 기반 시설을 망가뜨릴 것이다. 전쟁 후 누가 이기든 중동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피터 자이한이 분석하는 일본의 힘은 세다. 2016년 현재 내수 중심 경제를 운영 중이며, 필요한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나 바닷길을 구축하고 관리할 해군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해양 능력은 탁월하다. 미국보다 10년 앞선 1922년 세계 최초로 특수 목적용 항공모함을 건조했었다. 일본의 주요 도시는 독립적이다. 도시마다 독립적인 인프라를 갖고 있어 어는 도시의 에너지 문제는 지역의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00일 만에 전력 에너지의 충격을 흡수했다. 사할린이라는 에너지 자원에 접근성이 높다.
이에 비해 중국은 취약하다. 중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는 절대량으로 보면 일본의 두 배다. 개방된 바닷길을 이용ㅎ야 한다.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체제를 구축, 유지할 군사적 역량이 없다. 중국은 갇혀있다. 에너지 공급 경로를 열어 줄 해군 역량이 없다. 중국은 답을 석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 간 전쟁이 벌어지면 타이완은 일본 편을 들 것이라고 본다.(한국 독자의 생각과 크게 다른 지점이다) 캄란만, 수빅만, 나투나해가 격전지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 미얀마에게 동북아의 유조선 전쟁은 돈을 벌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자원 부국으로 중국과 일본에 양다리를 걸칠 것이다. 태국도 cash-carry 프로그램(현금 수수후 구매 당사국이 물자 수송을 알아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돈을 벌 거다. 인도의 사략선(私掠船: 민간무장선, 해적선)도 예상할 수 있다. 피터 자이한이 보기에 한국의 경우 인구구조나 군사력 면에서 걱정스럽다. 한국은 미국 시장 개방 덕분에 성장했는데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면 가장 잃을 것이 많은 나라다.
슈페메이저(엑손모빌, BP아마코아코, 토탈피나엘프, 코노코필립스, 셰브론텍사코)와 셰일 에너지 기업은 다르다. 슈퍼 메이저의 손익구조는 셰일과 다르다. 셰일 기업은 협력을, 슈퍼 메이져는 담합이라는 관행을 우선한다. 유럽-러시아 간 지구전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을 거다. 아마도 과거 식민지와의 관계를 복원해 지구전의 피해를 줄여가려 할 것이다. 미국이 철수한다고 미국인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은 아니다.
제3부 - 미국의 역할
미 해군은 미국이 고립시키려는 나라나 지역에 경쟁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미국은 특수작전단과 드론, 항공모함을 이용해 자국이 관여하고 싶은 어는 경쟁지역이든 원하는 대로 틀을 짤 수 있다. 이는 군사 경쟁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경쟁 지역에도 해당한다. 미국의 소비 시장은 인구구조상 세계에서 앞으로 유일하게 성장할 대규모 시장이며, 수출 주도 성장을 하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든 미국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미국은 대체로 세계 에너지 상황에 무관심할 것이나, 미국 기업이 성장할 기회가 있거나, 경쟁 상대를 전략적으로 방해할 필요가 있다면 개입할 것이다. 세계 해양, 세게 무역, 세계 에너지를 장악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안보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군사 역량은 국가의 보조 기구이자 기업의 보조 기구도 된다.
동북아시아 유조선 전쟁에서 지리적 약점이 강점을 이길 수 있다. 중국과 일본 중에서 누가 이기든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에 대항할 경쟁자는 없다.
중남미는 미국이 먼로주의를 적용하는 지역으로 지리적으로나 정치적 조건이 열악하다. 전쟁 걱정이 없고, 미국과 가깝다는 것은 장점이다.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협상에 응해야만 할 것이다. 중남미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써먹을 지렛대가 없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트리니다드토바고(천연가스 정제력 우수), 콜롬비아, 페루, 카리브해 연안국의 장단점을 분석한다. “중남미 지역에서 반미 정서가 마연한 까닭은 과거에 미국이 이 지역을 자기 놀이터 취급을 한 적이 있다.”(p. 498)
피터 자이한은 미국은 과연 의도적으로 세계에서 손을 뗄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손을 떼게 될지 지켜보라 한다. 자이한은 동남아시아는 전망이 밝지만 중남의 전망은 더 밝다고 본다. “나머지 지역은 어디든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단다. (앞 문장처럼 본문 544쪽 분량에 번역자 홍지수의 걸쭉한 재치가 보인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는 김앤김북스에서 2019년 1월 초판을 내놓았고, 나는 3월 3쇄 본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