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 문명과 문명의 대화, 개정판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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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2

2019.4.2.()

한 분야, 영역의 전문가가 아니고 독서가이기에 다양한 책들을 보려 애를 쓴다. 학문을 시작하며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철학이나 과학이나 문학조차도 역사를 알지 못하고 파고들면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문사철로 칭하는 뜻에 담겨있다. 수년간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 이슬람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읽어왔다. 학창시절 필수로 배웠던 세계사는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시각에서 쓴 것이었다. 냉전이란 시대 상황을 반영하였고, 한국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과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서로 알게 된 일이다. 분야별 전문가들의 연구와 노력이 세계사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현재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세계사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은 독서 경험을 토대로 점검해보자는 생각을 해왔다. 수년간 아직은 아니다.’ ‘역사책을 더 읽고 해보자고 미루다가 2019년 봄밤에 일을 벌였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선생님 열두 명이 쓴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2>를 기준으로 삼았다. 선생님 중에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문항 출제, 고입선발고사 문항 출제 기간에 만났던 분도 있다.

 

머리말을 통해 열두 명 선생님들은 ‘21세기를 살아갈 한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세계사를 새로 썼다.‘고 밝힌다. 1986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일본 동해대학 교수 사세휘가 쓴 <세계사를 서양인의 눈으로 보지 말고 동양인의 눈으로 보자>를 번역해 냈었다. 이걸 읽으면서 한국에도 이런 학자가 있기를 바랬다. 대안 교과서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3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2005년에 11쇄가 내놨으니 역사 선생님들이 해낸 거다.

전공인 지리는 역사와 함께할 때 재미나게 풀어가고 읽을 수 있음을 느낀다. 세계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가며 내 학창시절에 배우지 않았었던 것을 알게 됐다는 만족감은 지적 호기심의 대가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읽어가며 역사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생각했고, 교과서에 반영했음을 확인하는 반가움은 만족감을 두 배로 키웠고, 아이들에게 복된 일임을 확인한다.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발전된 문화는 인간 불평등과 자연환경 파괴라는 문제란 서술에서 자연환경 파괴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유발 하라리도 언급한 것이자,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에서 상술한다. 키루스 대왕은 업적을 최초의 세계 제국, 페르시아에서 등장하는데 <키루스의 교육>에서 만났었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중에서 선과 악의 대결,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구세주 등의 내용이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대승불교에도 영향을 미쳤음은 학창시절 소홀하게 취급됐었다. 물론 니체의 철학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었음을 밝히는 역사책은 지금도 없다. ‘그리스의 철학과 헬레니즘의 과학은 이슬람 세계에 의해 계승, 발전된 뒤 유럽으로 역수출되었다.’는 기술은 서구 중심 역사관에서 벗어난 객관적 기술이다. 313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가 공인 된 의미를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에 국가를 유지하는 데 기여함까지가 배운 바인데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억압하는 위치에 서게 돈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유가 사상이 한나라의 국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를 잡는데 동중서 건의가 주효했다. 이슬람교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고, 대립한 과정을 간략하지만 알기 쉽게 요약해 두었다.(p. 97) 서남아시아의 지역성을 이해하는데 시아파와 수니파를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로 바르게 접근할 수 없다. 코란을 통해 이슬람 세계가 남녀가 동등함과 유산의 합당한 몫에 관해 기술한 것은 종교를 치우치지 않게 보게 하려는 바른 태도다. 당과 고구려의 충돌은 세계관의 충돌이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경고는 칭기스칸이 아니라 돌궐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에 있다. 몽골에 의한 유라시아의 통합은 초원의 군사력, 중국의 경제력이 결합하고, 이슬람 상업권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칸이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에게 보낸 편지에 영원한 하늘의 힘에 기대어 대몽골 제국의 바다와 같은 군주의 칙령, 복종하지 않는 백성들이여. 이를 경외하라!” 17세기까지 오스만 제국 사람들의 자부심은 유럽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크리스트교를 열등한 종교로 보았다. 옥시덴탈리즘의 기원도 여기부터이지 싶다. 중국인이 유목민을 열등하고 봤던 것처럼, 19세기에 유럽인이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 사람을 열등한 것으로 봤던 오리엔탈리즘이란 것이 19세기에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백인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마치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사명인 양 백인의 짐으로 표현하였다. 1793년 건륭제가 영국 왕에서 너는 멀리 해외에 있으면서 이번에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천자의 장수를 축복하고 선물을 바쳤다. 그 공손한 태도에 매우 만족한다. 중국은 물자가 풍부하여 없는 것이 없으니, 너희 물건을 얻을 일이 없다. 다만 우리의 차와 자기, 비단은 너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 하여 은혜를 베푸니, 잘 쓰도록 하려라.”라는 국서를 보냈다. 센 놈이 약한 놈을 깔보는 것은 고래부터 있었던 일이다.

경계 짓기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것, 현실의 세계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존할 때 더욱더 풍요로워진다.

 

14세기 초 일한국의 재상 라시드 앗 딘이 칸의 명을 받아 몽골제국의 기원부터 세계의 역사를 기록한 <집사集史> 편찬, 이는 역사상 최초의 세계사다. 번역본이 없다. 베트남의 끈기는 13세기 몽골에 대항한 쩐 흥 다오부터, 대프랑스 비엔디엔푸 전투, “우리보다 1,000배 강한 중국도 1,000년 동안 우리를 삼키지 못하였다.”는 베트남 유학자들의 인식, 일본과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 20세기 중국과의 전쟁 등에서 볼 때 한국보다 쎄다. 아메리카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사냥해 온 까닭은 유럽에서 온 전염병으로 원주민인 인디언수가 급격하게 줄어 노동력이 부족해진 탓이다. 영국인들이 17세기 후반부터 150년 동안 340만 명의 흑인 노에를 실어 날랐다. 산업혁명의 종자돈은 아프리카인의 희생 위에서 쌓인 것이다. 신과 교회의 권위, 절대왕권의 억압이라는 답답한 사회 현실에 분노한 유럽 지식인들이 중국철학에 과심을 가졌다. 볼테르는 공자와 유교의 도덕 정치를 이상적 정치 철학으로 여겼고, 중국은 유럽의 철학과 제도가 지닌 문제를 정확히 짚어 낸 거울이자, 도덕적, 정치적 개혁의 모델이었다.(p.294)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보청이란 법으로 지방 다이묘들이 에도에 성과 부속 건물을 지어 바치게 하였다. 조선의 서당처럼 일본에서 서민을 위한 학교로 데라고야가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와의 무역에서 유럽인이 차지한 비중은 10% 남짓.

 

16세기 유럽 사람들이 해외로 나간 까닭은 땅이 척박하여 농업 생산성이 낮은 게 큰 원인이다. 빈곤과 필요에 따른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에 쑨원, 네루, 심지어 안중근조차 감격스러워했다.(p.23) 일본이 제국주의의 침략 의도가 있음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제국의 폐허에서>에 상술하고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 멋지지만, 부르주아들과 함께 낡은 세력에 맞서 싸웠던 가난한 민중과 여성은 여전히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 학교는 사회적 봉사와 협동의 분위기 속에서 아동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지만, 한국 교육은 봉사와 협동보다 경쟁하게 하고 있다.

19세기 과학 발전에 따른 성과를 경험하고는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권리가 있으며,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 진보라 생각했다. 경찰은 노동자, 가난한 사람, 범죄자들로부터 자본가들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시의 치안을 24시간 담당하게 되었다.(p.64) 안타깝지만 진실이다.

미국인들은 크리스트 교도인 자신들이 이교도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지배할 명백한 운명을 신에게 부여받았다고 생각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바나나 공화국을 세우고, 아시아를 침략한 것도 명백한 운명을 따른 것일 뿐이었다.(p. 79) 이는 촘스키가 자백하고 비판하는 점이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 포르투갈에서 왕실과 귀족 등 1만 명이 브라질로 도망을 왔었다. 미국 대통령 월리엄 태프트의 발언 우리가 인종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서반구 전 지역은 도의적으로 이미 우리의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미국의 바나나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다. 스메들리 버틀러의 <전쟁은 사기다>를 교과서에서 인용하고 있다. 와하브 운동의 시작은 오스만 제국은 아랍인이 아니고 이슬람교를 변질시켰기 때문인데, 제국을 반대하는 정치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란의 이슬람 사상가 아프가니를 2 쪽에 걸쳐 소개하는 파격은 세계사를 보는 관점이 넓어졌음이다. 영프연합군이 베이지의 원명원을 파괴한 것은 중국이 느끼는 가장 큰 수치의 하나란다. 19세기말 중국의 함대는 북양함대, 남향함대가 있었는데, 청프전쟁(북양함대가 출전 거부)과 청일전쟁(남양함대가 출전 거부)에서 각각 출전을 거부하여 궤멸됐다. 5.4운동 당시 베이징 학생 천안문 대회 선언문에 조선인들도 독립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독립을 하지 못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파시즘은 우리를 강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냈고, 애꿎은 유대 인을 학살 대상으로 삼았다. 에스파냐 내전은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대결장. 메카시 선풍과 스탈린주의는 극단적인 증오를 부추겨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를 짓밟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둘은 적대적 의존 관계를 유지했다. 반둥회의의 10대 평화 원칙 중 ‘6. 대국에 유리한 집단 방위 배제는 과거에 중시하지 않았던 것이나 이것만으로도 중립적임이 보인다. 알제리 독립사(1954 알제리인 무장봉기를 프랑스 정규군 50, 치안 부대 30만을 동원하여 진압 : 알제리 봉기군 8만 체포, 3만 포로수용, 5천 명 암매장/드골이 자치권부여 움직임/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의 폭동과 알제리의 프랑스군도 쿠데타를 일으킴/ 1962년 독립)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날개 글에 소개함. 사회주의 국가도 산업화에 열을 올려 성장을 우선시하니 생태, 환경 따위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이다. 우리가 건설할 미래에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기아와 빈곤, 불평등이 없는 세상,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이 가능한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 덧붙인 잡다함 -----

 

알파벳이란 페니키아어 알프()와 베타()에서 유래된 것.

1947년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서인 사해문서는 구약성서.

로제타석에는 같은 내용을 상형문자,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기록.

이슬람 세계의 이븐 시나가 집필한 <의학대전>17세기까지 유럽 의과대학교재.

칼리프와 술탄의 분리는 11세기 셀주크 투르크 시기에 일어남.

15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 때 다시 술탄-칼리프가 되어 정치와 종교를 아우른다. 20세기 터키 공화국에서 술탄과 칼리프를 분리.

인도 문학의 고전이라는 <마하바라타> 번역본을 찾아 읽어야 한다.

원주율, 지구 자전, 인력, (), 무한대 개념을 만든 것은 인도인.

남북조시대 북위는 선비족이 세움(왜 자꾸만 잊는지). 子貴母死(황태자가 되면 생무를 죽이는 제도)는 북위의 관습

연개소문의 아들이나 김춘추나 길 안내를 해 역사의 평가가 엇갈림.

현존 세계 최대 목조 건물은 나라의 도다이사(높이 47.5미터, 정면 너비 75미터)

송대(10세기)에 석탄이 널리 사용됨.

몽골의 역참수는 1,500개로 사람이 살지 않는 초원과 사막에도 40km마다 설치.

오스만제국의 록셀란, 당나라 양귀비, 청대 서태후등 역사에서 여자를 가볍게 볼 수 없다.

튤립은 터키가 원산지.

13세기 마자파히트 왕국 덕분에 오늘날 인도네시아인들이 하나의 겨레라 여기게 되었고, 인구의 70%가 자바에 산다.

자금성에 9,999개의 방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나가시노 전투는 조총부대를 3열로 배치.

병자호란 후 몸값을 바치고 풀려난 조선 백성의 수는 63만 명.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 기간(1891~1916)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한 나라는 1883년 뉴질랜드.

21세 남녀 보통선거는 영국조차 1928년에 시작.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고종황제 초상화가 인종전시장에 전시

아르헨티나, 칠레의 독립운동가는 산마르틴.

17세기 멕시코에서 수도원에서 크루스 수녀는 4,000권의 책을 읽고서 시와 희곡, 수필을 발표했다.

프런티어 정신의 해석(개척이냐 학살이냐)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19세기 말에 340만 부나 팔렸다.

태평천국 군의 중원 장악 기간은 14년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준 배상금은 일본 자본주의 발전의 종잣돈.

1871 이와쿠라 사절단의 규모(핵심 관리의 절반 이상)

캐테 콜비츠는 독일의 판화 예술가로 반전운동.

영화 전함 포템킨은 황제의 명령에 반발한 폭동.

피카소의 그림 중에 <한국에서의 학살>이 있다.

이라크 침공의 배후엔 네오콘과 크리스트교 근본주의자들이 있다(P.280)

 

아소카왕이 불교 포교 활동을 유럽까지 벌였다는 기술은 더 공부해 볼 일이다.(p.73) 마니교에는 조로아스터교, 크리스트교, 불교의 요소가 더해졌고, 중국 말고도 북아프리카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이도 더 공부해 볼 일이다.(p.93)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중앙아시아와 인도양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패권주의 침략으로 평가(<유라시아 견문>에서는 소련이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미국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슬림의 각성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평가하니 더 공부해 봐야 알 듯하다.

 

<살아있는 세계사 1. 2.>Humanist에서 2005년 본문 329쪽과 321쪽으로 내놓았고 내가 읽은 것은 201223쇄본이다. 학교를 졸업한지 20년 이상 지났다면 읽어보고 자신의 세계사 인식을 점검해 볼 기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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