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은 인문학이다 - 흥미진진 영어를 둘러싼 역사와 문화, 지식의 향연
고이즈미 마키오 지음, 홍경수 옮김 / 사람in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어원은 인문학이다

2019.1.25.(금)


<어원은 인문학이다>를 고를 때 우리보다 번역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일본의 시각에서 나올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원을 찾아가는 것은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메이지시대 이래로 서구사상을 통째로 번역했던 경험이 가능하게 한 책이다. “서구인에 의한 일영사전 출간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인들이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일사전을 만들었다”는 사례에서 보듯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다. 

앞부분을 읽다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만하는 시간에 읽기에 딱 맞겠다 싶어 미루어 두었다. 단어마다 1000자 내외로 풀어 놓아 짬이 나는 대로 읽기 쉽고도 좋게 편집돼 있다. 여행 계획이 취소돼 한달음에 읽는다. 

신화를 포함한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면 400쪽이 넘는 분량과 172개 어원이 뒤죽박죽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편집 경력자인 저자는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중세, 근세(전), 대항해시대, 근세(후), 아메리카 대륙의 개척시대, 근대, 세계대전, 전후 21세기로 장을 나누어 세계사 흐름에 따라 어원을 배치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찾은 어원 12가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요약한 느낌을 받으며 반가운 마음으로 카오스부터 가이아, 아프로디테, 니케, 뮤즈, 아마존, 아킬레스, 멘토, 세이렌, 판을 만난다. 이후부터는 학교에서 배운 그리스 역사에 따라 어원을 풀어간다. 강연자라면 강연 중 에피소드로 활용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어원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신화와 역사, 문학, 전쟁, 과학기술과 연관된 내용이다. 다독자라면 과거에 읽은 책에서 봤던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밟을 거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모든 것을 초월한 아름다운 그 자체’‘아름다움의 본질과 원형’을 ‘아름다움의 이데아’라 정의하고 이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결론 내렸음을 소개하며, ‘남녀 간의 육체관계 없는 정신적인 사랑’으로 사용되는 플라토닉 러브는 오해라고 밝혀낸다. 11세기 초 Doomsday Survey가 세계 최초의 토지조사 기록이라는데 우리역사 보다 앞선다. ‘광대한 플랜태저넷 왕조’에서 마그나카르타를 인정할 수박에 없었던 존 왕의 처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는 하루 시간 노동, 의료비 무료, 안락사 승인이라는 복지 정책을 그려냈음을 배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G. 오웰의 <1984>가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Dystopia를 그린 소설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새로운 단어와 표현 3,000여개 중 유명한 것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으로 be 대신 다른 동사를 넣어 재치 있게 쓰는 표현을 소개한다. 아메리카의 추수감사절은 필그림스가 1620년 가을에 도착해 겨울 동안 반이나 죽어나갔으나, 이듬해 가을에 풍족한 수확에 감사하며 식량을 원조해 준 인디언을 초청해 벌인 잔치였단다. 공식을 외우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체감 방법에 따르면, 화씨 60도는 섭씨 15.6도로 날씨 좋은 가을날 온도, 화씨 90도는 섭씨 32.2도로 한여름 평균온도, 화씨 100도는 37.8도로 한여름 가장 더운 날 정도다. 골드러시 당시 일본에서 표류해 간 어부 ‘만지로’는 ‘료마가 간다’에서 언급된 일본인이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미군 포로에게 공산주의를 믿으라고 강요한 행위를 중국어로 세뇌(洗腦)라고 하고, 그대로 직역해 brainwashing이 됐다. <Dear John letter>라는 노래가 ‘이별의 편지’고, 2개월 후 <Forgive me, John>이 나왔다는 ‘전쟁과 여인’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영어를 업으로 살아야한다면 어원별로 용례를 요약해 두고 쓰면 좋겠지만 나는 아니다. 저자 고이즈미 미키오는 역사와 어원을 결합한 이런 종류의 책은 세계 최초라고 자부한다. 옮긴이와 저자의 인연으로 한국에 번역된 책이다. 사람인출판사에서 2018년 11월 본문 415쪽 분량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내용은 깊이가 얕지만, 책을 쓴 저자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가 있어야만 가능한 책이다. 많이 팔리는 이유로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추천한다는 광고 문구 덕도 있을 듯. 극장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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