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소유냐 존재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눈에는 소유한다는 것이 삶에 포함된 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당연히 소유한다. 그뿐이랴, 사물을 즐기기 위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유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는 사회,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백만 불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소유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 어찌 양자택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그래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 P31
또한 마르크스는 사치야말로 빈곤과 마찬가지로 큰 악덕이며,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내가 여기에서 언급하는 마르크스는 철저한 휴머니스트로서의 진짜 마르크스이며, 소련 공산주의에 의해서 실천된 변조된 다른 종류의 마르크스가 아니다). - P32
지금 내가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실존양식을 의미한다. - P35
"박사님,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몇십 년 전이라면 이 환자는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분명히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현대의 언어양식은 오늘날의 소외현상의 한 증거이다.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주체적 경험은 배제된다. 경험적 자아가 그가 소유한 그것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감정들을 내가 소유한 무엇으로, 즉 문제로 변형시키고 있다. "문제"란 모든 종류의 어려움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다. - P39
생명이 있는 유기체는 생성을 겪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한에서만 실존할 수 있다. 생장과 변화는 삶의 과정에 내재한 특성인 것이다. - P44
근본적으로 신(神)은 우리가 내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고(至高)의 가치의 상징이다. 그러나 소유양식에서의 신은 하나의 우상이 된다. 예언자들이 말하는 의미로는 인간이 만들어낸 한날 사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자신의 힘을 투영함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굴종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소외형태에 빠진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 우상은 한낱 사물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굴종하고 있음으로 해서 우상 역시 동시에 나를 소유하는 것이다. 일단 신이 우상화되어버리면, 흔히 말하는 신의 특성들은 소외된 정치적 강령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된다. - P65
무엇보다먼저 우리는 자신이 지닌 사물과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소유하고 행하는 것에 - 심지어는 신에게조차 묶이고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 P94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남자라도 자산가였다. 아내, 자식, 가축을 소유하고서자신이 절대적인 지배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최소한 남자한테만은 자식을 많이 가지는 것이 자본을 투자하거나 몸소 수고할 필요 없이 인력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다. 그러나 출산부담은 여자 편에서 전적으로 짊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가부장제 사회에서 후손을 생산하는 일은 여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행위라는 사실을 아무래도 부인할 수없다. 한편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들에 대해서 아이가 아직어릴 때까지는 단호한 소유주 노릇을 한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끝없는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은 아내를 착취하고 착취당한 아내는 자식을 착취하고, 성장한 남자들은 그들의 부친의 대열에 가담하여 다시 아내들을 착취하는 것이다. - P102
우리의 자아는 지식이나 능력 같은 실질적 자질과, 실재하는 핵심의 언저리에 우리가 쌓는 허구적 자질의 혼합물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점은 자아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각기 소유물로 느낀다는 점, 그리고 그 "사물"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 P103
배고픔처럼 생리적 조건의 한계를 가진 육체적 욕구와는 달리, 정신적 탐욕 - 그것이 설령 육체를 통해 충족된다고 해도 모든 탐욕은 정신적인 것이다 - 은 아무리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정신적 탐욕이 애초에 극복해야 할 내적인 공허, 권태, 고독, 억압 등은 그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제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 P156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hic et nunc)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 P175
명백히 할 점은 지금 여기서 말하는 "종교"의 개념이 반드시 신이나 우상을 상대하는 체계, 그래서 종교로 공인받는 체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개인에게 지향할 틀과 헌신할 대상을 제공해주는 어떤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사고 및 행동 체계를 포괄하는 말이다. 이렇게 넓은 의미로 본다면, 과거나 현재, 미래에까지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회란 사실상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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