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 눈과 의식은 어쩔 수 없이 사각형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세계가 원래 사각형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각형이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눈이 사각형인 것이다. - P8
뱀은 약탈에 기반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존재의 야비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뱀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유전적인 비非수직성, 그것이 ‘영원히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 P20
두 손바닥을 한데 붙이는 기도는 눈꺼풀을 붙여서 눈을 감는 것과 흡사한 일이다. 그것은 손과 손 사이의 공간을 없앰으로써 손의 기능을 일시 정지시킨다. 팔을 뻗치면 이제 화성의 돌멩이까지 집어올릴 수 있게 된 손의 활동 영역과 권능은 잠시 원점으로 되돌려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식물의 상태에 다가간다. 몸통에서 외부세계를 향해 뻗어나간 두 손은 외부에 개입하지 않은 채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순환고리를 이룬다. 외부세계와 절연된 그 고리 안에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 P50
집은 비밀이 만들어지는 공장이고 그것이 보관되는 창고이다. 집이 허술하면 빗물과 바깥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비밀이 흘러나간다. 권력은 내가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한 사람이 갖는 권력의 크기는 집의 크기와 그 밀폐성의 정도에 비례한다. - P82
가방 속에 예를 들어 어떤 천사가 내게 맡겨놓은 한 상의 날개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그 가방이 열리지 않으므로 그것을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에 나는 그것을 가지고 비행기에 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미술작품과 서술언어의 관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시작적인 예술작품이 언어로 완전히 설명되고 대체될 수 있다면 그것이 왜 미술작품으로서 존립해야 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로는 덮어지지 않는 어떤 고유의 부분이 있음으로써 미술작품은 존립의 근거를 갖게 될 것이다. - P113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인과론적인 설명만으로 세계는 충분히 명료해지는가? 어떤 현상에 관하여 그 원인들을 전부 알게 되기만 하며, 세계가 그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가 모두 다 파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현상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읽히고 해석되는가 하는 질문들은 그래도 전혀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 않은가? 바꿔 말하면, 불을 때니까 연기가 난다고 하는 이 명료한 세계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존재는 어디쯤에 있느냐는 것이다. - P116
그러나 묻건대, 과연 무엇으로 우리는 기록되어야 할 사건과 그럴 가치가 없는 사건을 구별할 수 있는가? 무엇이 중요한 사건이고 또 무엇이 하찮은 사건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뢰할 만한 그 판단의 근거가 우리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다시 묻건대, 가치가 없다고 평가되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원할 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는 갖고 있는가? 무가치한 일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신만의 노동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전적으로 낭비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 P163
내가 미술 안쪽에 있는지 바깥쪽에 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그 경계선은 늘 유동적이었고 낯선 것들과의 접촉에 의해서 확장되어왔다. 내 작업의 결과물이 미술의 경계 안쪽에 있든 바깥쪽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일들을 통해서 내가 ‘생각‘을 전개시켜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작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각의 수단이며 그 과정이 낳은 부산물, 결과물이다. 그 결과가 대다수 사람들이 기대하는 양상이 아닐 경우가 많아서 유감스럽지만 달리 어찌할 수가 없다. 만약 작품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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