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란 이러한 일종의 사회적 제스처임에 틀림없다. 웃음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엉뚱한 행동들을 제어하고, 자칫 고립되고 둔화될 우려가 있는 주변부의 대수롭지 않은 활동들을 부단히 깨어 있게 하고, 서로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그리하여 사회 구성체의 표면에 드러나는 모든 기계적인 경직성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은 순전히 미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웃음이 보편적 개선이라는 유익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 P29
만약 많고많은 감정 중에서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만 남긴다면, 즉 그저 추억 속의 감정을 모두 다 제거해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신선하고 새로운 기쁨에 무감각해질지 모를 일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 맛보는 가장 감미로운 충족감이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것, 즉 점점 더 아득해지는 과거가 우리에게 불어넣어주는 향기로운 미풍인지 누가 알겠는가? - P76
희극성이란 즉각적인 교정을 요하는 개인과 집단의 결함을 나타낸다. 웃음은 이것을 교정한다. 웃음은 이런저런 사람이나 사건에서 보이는 특정한 방심 상태를 두드러지게 만들며, 그것을 응징하는 사회적 의사 표시인 셈이다. - P94
생명이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으로, 공간에 따라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 보인다. 시간의 차원에서 보면 생명은 한 존재가 계속 성장하면서 부단히 노쇠해가는 과정이다. 생명은 결코 시간을 거꾸로 되돌아가는 법이 없으며, 반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간의 차원에서 보자면, 생명은 공존하는 갖가지 요소를 동시에 펼쳐 보인다. 이 요소들은 아주 밀접하게 서로 결속되어 있고, 오로지 그들 서로를 위해서만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생명체에 속할 뿐, 동시에 다른 생명체에 속할 수는 없다. 생명체는 모두가 하나하나 닫힌 체계의 현상이며, 다른 어떠한 체계와도 중복될 수 없는 것이다. 외관의 계속적인 변화, 현상의 불가역성, 오로지 한 생명체에게만 해당되는 일련의 완전한 개체성, 이런 것들이 생명체를 단순히 기계적인 것과 구분해주는 외적인 특성이다. - P95
말은 사물의 가장 통상적인 기능과 진부한 측면만을 나타낼 뿐이다. 사물은 유용성에 따라 말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그 참모습이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이처럼 사물과 우리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 말은 사물의 참모습을 가려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외부 세계의 사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 상태도 마찬가지다. 비밀스럽고 개인적이며 나만이 경험한 감정이나 느낌, 그 모두가 우리에게서 벗어나버린다. - P155
서로 부딪히고 깨어지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동요하는 모습을 웃음은 순간적으로 포착해 그려주는 것이다. 웃음 역시 짭짤한 거품이며 혀를 자극한다. 웃음은 즐거움이다. 그러나 웃음을 그러모아 살짝 맛을 보면 철학자의 혀끝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감돌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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