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로 물든 하늘은 단조롭지만 웅장한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세상이 근엄한 망토를 펼치자 먼 솔밭에서는 우수가 샘솟았다. 저녁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신비로운 기분이 스며들었다...... 드넓은 대지가 금빛으로 출렁이니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먼 지평선은 밤을 꿈꾼다. - P31
시뻘건내장을 드러낸 채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황톳길은 피맺힌 절규를 토해 내고, 아득히 먼 곳에서는 잿빛 구름과 태양의 포효가아련히 들려온다. 평원은 때때로 홀로이 저 풍경을 가득 채우는 꿈을 꾸지만, 그럴 때마다 작은 언덕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 P56
우리가 죽고 나면 사물의영혼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육신이 도리어 무덤이 되는 것일까? - P112
안달루시아의 태양이 불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온 세상이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인다. - P136
시인은 손을 들어 머리를 더듬어본다. 그 많던 머리숱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슬픈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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