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감 -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작가 시리즈 1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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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도 결국엔 사람. 괴롭고 힘들고 싫은 것은 매한가지다.


한 장의 원고를 위해 네댓 장의 파지가 나온다. 식구들에게 언성을 높인다. 몸을 돌보지 않은 무리한 집필 탓에 건강을 해친다.

꾀병을 핑계 삼고, 책상 정리에 진을 빼고, 술로 시간을 허비한다. '싫다, 싫어, 안된다, 안돼' 하면서도 아무튼 써보려 애를 쓰는 모습은 측은하다.


'쓸 수 없다. 아아~ 그래도 써야 한다.'

이렇듯 작가가 갈팡질팡하며 괴로움에 치를 떠는 사이, 어느새 내 귓가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이 자동 재생된다. 한순간에 교차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작가의 고뇌가 생생히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은 몸부림에 가깝다. 작가 내면의 양가감정과 자기 비하, 내적 갈등의 몸부림이 산문, 편지, 시, 일기, 그리고 대화 형식으로 담겨있다.

가볍게 읽고 미소 짓게 하는 글도 있으나 대부분은 '쓸 수 없다'와 그런 자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있다. 대문호의 자아비판에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이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읽어야 할 것 같다ㅋ;)


그래도, 그래도 결국은 쓰게 되리라.

쓸 수 없다면 쓸 수 없는 이유라도 쓴다. 글 쓰는 재주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그거라도 글로 옮긴다.

문학에 대한 애정과 뼈에 사무치는 가난이 작가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덧,

『달콤한 배의 시』 -오구마 히데오

(부분)

...

"예술은 땀을 흘리는 일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달콤한 즙은 굳건히 흐르고 껍질과 살을 떼어 내려

내 이는 쐐기와 지레가 되어 배의 살을 푹 베었다.

내 잇몸은 터지고 배는 피투성이

그래도 배란 녀석은 즙을 뚝뚝 흘리는 걸 멈추지 않는다

...

이런 태도로 현실에도 달려들어 물고 싶다,

한 방울의 즙도 흘리지 않고 탐욕스럽게,

배처럼 현실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덧2,

『매문 문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요약해보자면ㅋ)


편집자 : 써 주세요.

- 작가 : 무립니다.

아무거나 쓰면 돼요.

- 양해해 주세요.

당신 이름만 있으면 됩니다.

- 욕먹어요.

작가 책임이니 괜찮아요.

- 그럼 더 싫어요.

한두 번 망한다고 큰일 안 나요.

- 농담 마세요.

독자 생각도 해주세요.

- 헛소리 마쇼.

팬입니다.(태세 전환)

- 속 보여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편집자의 대화는 실로 창과 방패의 대결, 이 책의 묘미로 꼽을 만하다.

'쓸 수 없다 vs 써 달라'의 한 치 양보 없는 팽팽한 기싸움은 마치 무림 고수의 정신적 대결을 보는 것 같다. 육탄전은 없지만 정신이 약한 쪽이 지고 만다. 그러면 패자는 엄청난 대미지를 입게 될 것이다. 이거야말로 운명이 걸린 필생의 전투이다ㅋ



덧3,

편집자놈(?!)도 보통이 아니구나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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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ang1001 2021-07-14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고뇌가 실려 있을 것 같아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dollC 2021-07-14 13:45   좋아요 1 | URL
부디 thkang1001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저 대단하신 작가분들도 결국엔 매 순간 나약한 마음을 다잡는 미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