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전에는 한국 전쟁 때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교수를 비롯한 몇 사람이 제기한 주장들을 믿을 수 없었다. 당시 그들은 미국인들이 한반도를 새로 개발한 대량 살상 생화학 무기들의시험장으로 이용해 왔다고 고발했다. 나는 그러한 공격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점에 대해 늦게나마 니덤 교수 및 몇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1963년쯤 되자 나는 그들의 주장이옳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도 그러한 짓을하고 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해 초, 나는 《뉴욕 타임스》지에기고한 글에서 , 미국인들이 베트남에서 하는 짓은 "독일인들이 동유럽에서, 일본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자행한 전쟁 행위를 떠올리게하는 만행이라고 표현했다. 그 당시로선 너무 지나친 발언이었던지《뉴욕 타임스》지는 먼저 사설을 통해 나를 공격하더니 이어 내가 보낸 답변서를 잘라버렸고 결국에는 자기네 칼럼 난에 아예 쓰지도 못하게 했다. - P469
...우리는 이듬해에 여러 주에 걸쳐 공개 ‘법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정에 앞서, ‘법정‘을 대신하는 국제 팀을 인도차이나에 연속 파견하기로 했다. 잔학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멤버들을 선정, 파견하겠다고 ‘법정‘이 최초로 제의했을 때 미국 측은 잔학 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제의를 비웃었다. 그러나 이 설전이 부각되자 미군 당국자들이 처리할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저명한 법조인들이 그런 일을 맡아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했다. 한술 더 떠, 잔학 행위를 처벌하지 말고 내버려두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언론, 군당국자들, 미국 및 영국의 많은 법조계 권위자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 적용되었던 기준들을 채택하는 것보다, 장교들이 부녀자와 아이들을 불태워 죽이도록 내버려두는 쪽이 자신들의 명예와 인간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히틀러의 유산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 P471
내가 이념보다 인류의 생존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립국들은 나의 견해를 꾸준히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새로운 위험이 전면에 부상했다. 러시아는 이제 세계 제국의 꿈을 접었으나 그 꿈이 이제는미국 쪽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베트남전의 기원과 상황들을 파헤친 나의 연구에서도 드러났듯, 미국이 착수한 군사적 모험으로 이제는 러시아 대신 전쟁이 점차 세계를 위협하는 주 요인이 되었다. 시장과 자원의 끊임없는 모색과 결합된 미국의 광신적 반공주의 때문에 어떤 진지한 중립국도 미국과 러시아가 똑같이 세계를 위협한다고 보기 힘들어졌다. 미국의 군사, 경제 정책과 냉전 정책이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은 베트남전에서 보여준 더러운 욕심과잔혹성에 의해 서서히 드러났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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