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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그래도 괜찮은 하루>. 작가는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참 긍정적이고 밝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제목 같다고 생각했는데, 따져보고 또 생각해보니 작가는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제목을 짓지 않았을까 한다.

 

자신은 귀가 안 들리게 되었어도,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살았다고.

그리고 이제는 앞을 못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구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토끼 베니에게 대입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그림 에세이다. 토끼 베니는 구작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구작가의 꿈을 미리 그려보기도 하면서 책 속에서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조금은 아프게 꼬물거린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글들은 마치 독자에게 일대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해듣는 이야기는 딱딱한 글보다 훨씬 친근감 있게 다가오고, 그것이 구작가의 긍정적 생각이 독자들에게 더 깊이 다가오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책은 읽기 쉽고, 읽히기도 잘 읽힌다. 거침없이 쭉쭉 페이지를 넘겨가서 채 2시간도 안돼 맨 뒷장을 볼 수 있지만, 책을 다 읽은 뒤엔 꼭 다시 한 번 더 책을 펴보게 된다. 베니의 모습들 속에 숨어 있는 구작가의 모습이라든지, 행간의 아쉬움이라든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1장에서 구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태어났지만 다르게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 와중에도 답답함을 견뎌내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던 시간들, 그리고 좌절을 겪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에게 다시 찾아온 시련에 그녀는 슬픔에 빠진다.

 

왜?

어째서?

왜 나야?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청각장애 하나로도 이제까지 충분히 버겁게 살았는데... (p 66)

 

"엄마...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고 속상했어요.

그냥,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어요. (p 77)

 

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어요.(p 79)

 

 

당신은 타의에 의해서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또다시 타의에 의해 시력을 잃게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누군가를 원망하는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냐고 악을 쓰면서 울었을 거다 만약 나라면. 목소리가 안 나올때까지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면 또다시 울다가 쓰러질만큼. 

 

아주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 거라면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테고, 그 사이에는 아마 폐인처럼 지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다음 수순은 아주 밑바닥까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 뿐이 아닐까. 일단, 어찌됐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책에는 구작가가 겪었을 그 시간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구작가가 그 시간을 얼만큼 겪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구작가는 그 과정을 잘 이겨냈고, '아직까지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구작가는 자신이 아팠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리고 싶은 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2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확고하게 굳혔다.

 

그래, 이제부터 나를 위해...

앞으로의 시간은 행복하게 살아보자.

아무런 후회도 없이...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미련이 안 남게 살자. (p 83)

 

눈이 보일 때 할 수 있는 걸,

그리고 하고 싶은 걸

모두 해 보자. (p 85)

 

2장부터는 구작가가 하고 싶은 것들과 이미 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소위 버킷리스트라 이름 붙여진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면서 느낀 점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작업실을 갖게 된 이야기,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줬던 이야기, 헬렌켈러를 대신해 3일간 보고 싶은 것들을 봤던 이야기 등의 이미 자신이 해봤던 경험들과 오르세 미술관 가기, 유우니 사막 가보기, 소개팅 해 보기, 플리마켓 참여해보기, 운전면허 따보기 같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막 섞여 나온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루 하루가 소중하기에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동안에 다가오는 하루 하루가 또 소중하기에 구작가는, 그리고 일러스트 속 베니는 여러가지를 해보리라 다짐한다.

 

책을 보고 있자면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눈이 나쁘긴 하지만 안경을 쓰면 안 보이는 것 없이 잘 보이고, 귀는 예전부터 예민해서 조그마한 소리도 잘 캐치해 낸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기 싫은 것이 더 많고, 세상사 귀찮은 것도 많은,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청력을 잃고 시력을 잃을 지도 모르는 구작가의 삶과 비교해 보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참 많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작가는 어떤 의미로 적은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담담해서 더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도 있었다. 작가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해준 어떤 사람 덕분에 자신은 듣지 못하지만 목소리를 녹음해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던 '나의 목소리 녹음하기'편.

 

"구작가님의 글도 좋고, 그림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구작가님의 목소리가 정말 좋아요."

"어? 왜요?"

"구작가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진심이 느껴져요.

열심히 말하려고 하는 진심이요." (p 212)

 

스마트폰에 목소리를 녹음을 하고 있는 베니 일러스트에 적힌 단어들이 참 마음이 아팠다. 그 말들은 '엄마 고마워, 사랑해' '코코 아프지마' 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리 남겨두는 말- 아직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진심을 가득 담아서 목소리를 녹음하겠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마음에 훅 와 닿았다.

 

또한,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며 예쁜 썬그라스를 꺼내 끼고, 지팡이도 찾아서 드는 베니는 울컥하게 만들었다. "저는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고요!" 라고 말하는 것도 담담해서, 그게 너무도 진심이어서 울컥한다. 썬그라스 끼고 지팡이를 들고 걷는 베니의 곁에 콧노래를 부르는 듯 음표가 옆에 그려져 있어서 더더욱.

 

 

책을 다 읽고 나선 서툰 위로나마 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그녀는 현재 스스로를 잘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보다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에게 위로라니, 당치않다. 그저, 그녀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저 다 할 수 있도록 나는 뒤에서 응원하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묵묵히 응원하려고 한다. 그녀가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잘 완성시킬 수 있도록, 생각해뒀던 버킷리스트를 다 끝내서 또 다른 리스트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조금 더 긴 시간이 그녀에게 주어지길 말이다. 할 수 있는 게 바라보는 것 뿐인데, 참 따뜻해진다. 위로를 전해야 하는 상대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는 느낌.

 

베니는 늘 밝고 명량할 테니,

나는 베니를 응원할게.

 

 

 

* 알라딘 공식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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