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과 책을 가슴으로 읽어보자고 하는 것은 우수운 작업걸기이다. 난 늘 그런 작업걸기를 한다. "야, 이 책 참 이쁘지?" 자그마한 크기의 책이 맘에 들었다. 러시아의 어디쯤으로 여겨지는 겉 장의 그림도 마음에 쏙 들었다.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이야기들, 혹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들이지만 여전히 삶의 가치를 알려주려는 작가의 노고는 살아있었다.  

 톨스토이가 실제로 어떤 작가였던 간에 단편집 속에서 내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요, 믿음이었다. 또 하나 깊이 경계하는 것은 남음이며, 욕심이다. 다 안다. 다 알지만 또 마음을 울리기에 마음에 담아두기로 한다. 내가 늘 연모해 마지않는 '여유'가 날 타락시킬 지도 모른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여유와 남음은 즐길 것을 찾는다지 않는가? 즐길 것을 찾던 사람들은 그 속에 있던 늑대를 드러내서 포악해진다니 참 다행이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없는 책이며, 해도해도 더 해야하는 수업준비며, "오늘 엄마 아무데도 안 가요?"라고 묻는 아들의 음성에 "엄만 책 봐야 하니까. 넌 저기 가서 기초계산 풀어."라고 말 해야하는  순간이 미치도록 싫어지는 내게 '바쁨'이 도리어 나를 건강하게 한다는 이야기는 위로 그 자체다.  

 더 많이 가지려다 죽음에 이르는 모습은 더 넓은 집에 살려다가 좌절하는 우리와 비슷하고, 죽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절제의 마음을 되새겼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 전에 보험설계사를 만났다. 노후를 위해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을 하기에 "맞다, 맞지만 돈을 적게 쓰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서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겠노라."고  했다. 모두가 부자가 되라고 외치는 요즘 '부자? 글쎄'라고 말`해 주는 이 책이 참 좋았다. 다만 에핌을 닮은 내가 엘리사를 부러워해야 하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마음에 마음에 꼭 담아두라며 말한다. "악마가 우리를 유혹할 때 쓰는 방법은 고난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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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커피를 마시며  "구원 받았잖아요?" 라는 나를 향한 말소히가 들렸다. 그렇다고 내가 답변했을 때 또 다른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했다가 우린 다 가고 혼자 지옥 가면 어쩌냐"고 했다.  내 대답은 "혼자 지옥 가는 건 괜찮은데, 거기서 같이 만나면 좀 챙피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지옥에 있다면 챙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아무도 만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내가 열심히 교회가고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고 그러다가 지옥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참 많이 챙피하겠다. 

 또 한마디  "난 사실 천국을 대가로 주지 않으셔도 지금 내 삶에 믿음이 주는 유익이 너무 크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난 42년 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았다. 속상할 때, 아플 때, 부끄러울 때, 가난할 때, 기쁠 때, 감사할 때 무수히 많은 삶의 자락자락에서 난 하나님과 함께 했다. 그뿐인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없었다면 내 자신의 부끄러운 죄 때문에 난 한 시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난 꽤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남에게 상처를 준 듯한 말에도, 잘난 척 하는 말에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있었다. 이런 내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음 - 난 죽음으로 대신하자고 나섰을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결국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덕이다, 지금 이 곳에서 나는 충분히 하나님 덕을 보고 있으므로 더 바랄 것이 없다. 오늘 톨스토이를 배웠는데 - 그 분은 왜 하나님이 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하나님의 긍휼함 속에서 살면 내내 평안했을 거 아닌가? 그리고 내 안에 조금씩 생기는 자신감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같다. 아직은 두고 가면 아쉽고, 또 불안한 것들이 있어서 완전히 평안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내려 놓음과 맡김을 더 배우면 죽음에 대해 아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같은 기대감이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에 믿을 수 없다는 그 분께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묻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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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바이러스 안철수 꿈을 주는 현대인물선 3
안철수 지음, 원성현 그림 / 리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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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니 싶지 않은가? 이 분 안철수씨에 대한 인상은 솔직히 그렇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데 - 의대 교수에서 회사 대표로 거기서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된 이 분은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머리가 정말 좋은 것일까?  

본인도 글 속에서 밝히고 있지만 운이 좋은 것도 머리가 좋은 것도 결정적인  이유는 아닌 것같다. 그는 일찍이 열정에 대한 집중력을 잘 길러낸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안철수처럼 열정이 있고,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미켈란잴로 바이러슨가 암튼 대형 바이러스가 돌았는데 본인은 내일 군대에 입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단다. 입소하면 훈련 기간 동안 적어도 3개월은 백신을 개발할 수 없을 것같아서 입소 하루 전말 새벽까지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단다. 그리고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 하고 군대에 깄다지 않는가 이건 보통의 열정도, 보통의 집중력도 아니다. 그는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머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최고의 열정을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기억에 역시 남는 부분은 군대에서 행군을 위해 가방을 싸는 이야기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겉으로 표시나지 않도록 하면서 여러가지를 빼는 것이 아마도 일반적인가 보다. 예를 들어 삽을 넣을 때 삽자루만 넣는 식이다. 안철수씨는 그러지 않았단다. 그가 실로 정직해서 라기보다는 이 기회에 자신의 인내력을 한계를 시험에 보고 싶었단다. 쉬운 길이 아닌 최선의 길을 선택할 줄 아는 것이 그가 가진 능력인 것이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나로써는 위인들 이야기, 롤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의 글을 자주 읽게 된다. 맨날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근데 곰곰히 그 인물들을 따져보면 그 인물의 위대성은 열정을 집중함에서 나온다. 그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이겨내는 가가 아니라 그 과정을 이뤄나가는 열정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뽑으라면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에게 강조한다는 " 자신만이 성공의 기준을 가지라."이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나도 아이들에게 강조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말고, 나만의 성공의 기준을 가지라. 자신의 성공의 기준을 찾고, 그 성공을 위해 열정적으로 산다면 우린들 안철수가 못 될까? 후후 나는 고로 열정을 키우는 선생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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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012-10-0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말이 사실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전부 거짓말이라네요. 안철수의거짓말 요렇게 검색해보세요.
 

두물머리를 오른 쪽으로 두고 한참을 달려 용문산에 왔다.  주말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수업을 장열하게 옮기면서 수양회에 왔다. 20년 째 이렇게 봄, 여름, 가을 빠짐없이 수양회에 온다. 밤부터 시원하게 비가  내렸고, 처마를 길게 뺀 숙소에 묵는 덕에 빗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 큰 창 너머로 용문산이 보인다. 좋다.  

수양회 자체에 대한 소견은 아니다. 수양회관의 배경이 좋을 뿐. 수양회 자체는 나를 무력하게 한다. 3박 4일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소비적으로 보내야함에 가슴이 아팠다. 이 시간들을 보내면서 다시 또 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 사람은 이기적이어서 그들에게 이익을 허하지 않는한 어떤 조직도, 모임도, 단체도 고스란히 세월의 힘 앞에서 무너지리라.  

본래의 정체성이 과거에 힘을 발휘했다면 그 힘을 주어먹지 말고, 치열하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또한 문제의 해결책을 잘 모를 시에는 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학원생들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감지될 때 내가 제일 먼저 사용하는 방법은 내가 열공하는 것이다. 내 안에 열정이 되살아나고 내 안에 퍼 줄 양식이 많아지면 아이들은 그 물을 마시려고 당연히 모여든다. 뿐만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가 충분히 먹일 만한 양식이 준비 되었다고 느끼면 그 분께서 나를 인정하시면 학원에는 아이들이 오게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적어도 그 논리가 맞았다.  

고로 교회의 정체성도 그렇지 않을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성경은 실로 위대하여 그 자체로도 힘이 있고, 우리가 그 안에 충만히 젖어드는 것이 우리의 첫째 과제이다. 그런데 그 일에 앞서 몇 안되는 사람들을 자꾸 굴리려고 하면 삐그덕 거리고 상처날 수밖에 없다. 아프다. 수양회에는 말씀도 없었고, 사랑도 없었다. 당연히 은혜도 없다. 빼어난 말씀이 없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존재 자체의 위협이 아닌지 -   

암튼 이렇게 수양회를 다녀온 뒤 정신 없이 바빴다. 일하며 공부하며, 방학 중에 있는 아이 둘과 비비대를 치다보니 일주일이 지났다. 개인적으로라도 원론으로 돌아가야지 싶다. 원론이야 번하지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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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서화 과도기 낙동강 석공조합 대표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4
최서해.이기영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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