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커피를 마시며  "구원 받았잖아요?" 라는 나를 향한 말소히가 들렸다. 그렇다고 내가 답변했을 때 또 다른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했다가 우린 다 가고 혼자 지옥 가면 어쩌냐"고 했다.  내 대답은 "혼자 지옥 가는 건 괜찮은데, 거기서 같이 만나면 좀 챙피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지옥에 있다면 챙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아무도 만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내가 열심히 교회가고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고 그러다가 지옥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참 많이 챙피하겠다. 

 또 한마디  "난 사실 천국을 대가로 주지 않으셔도 지금 내 삶에 믿음이 주는 유익이 너무 크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난 42년 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았다. 속상할 때, 아플 때, 부끄러울 때, 가난할 때, 기쁠 때, 감사할 때 무수히 많은 삶의 자락자락에서 난 하나님과 함께 했다. 그뿐인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없었다면 내 자신의 부끄러운 죄 때문에 난 한 시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난 꽤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남에게 상처를 준 듯한 말에도, 잘난 척 하는 말에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있었다. 이런 내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음 - 난 죽음으로 대신하자고 나섰을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결국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덕이다, 지금 이 곳에서 나는 충분히 하나님 덕을 보고 있으므로 더 바랄 것이 없다. 오늘 톨스토이를 배웠는데 - 그 분은 왜 하나님이 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하나님의 긍휼함 속에서 살면 내내 평안했을 거 아닌가? 그리고 내 안에 조금씩 생기는 자신감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같다. 아직은 두고 가면 아쉽고, 또 불안한 것들이 있어서 완전히 평안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내려 놓음과 맡김을 더 배우면 죽음에 대해 아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같은 기대감이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에 믿을 수 없다는 그 분께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묻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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