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 역사와 문화가 보이는 서양 건축 여행
스기모토 다쓰히코나가오키 미쓰루.가부라기 다카노리 외 지음, 고시이 다카시 그림, 노경아 / 어크로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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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사람과 공간으로 기억된다. 함께 한 사람들과 공간을 채운 자연과 건물들이다. 국내 여행을 하든 해외 여행을 하든 늘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머릿 속 추억을 가득 채우는 건축물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었다. 그나마 국내 여행은 안내판이 있어 다행이지만, 해외 여행을 할 때는 언어 문제로 까막눈을 벗어날 수 없으니 더욱 아쉬웠다. 비가 내리던 포로 로마노에서 느꼈던 지적 갈증과 안타까움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래서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가 더욱 반가웠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여행 전후로 르네상스 미술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는데, 그 때는 주로 회화와 조각, 미술가들에 대한 것들을 봤었던 것 같다.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다큐 영화를 메가박스에서 보기도 했다.(주로 졸았지만^^) 아무튼 부족했던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책은 시대별로 나누어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의 5부로 구성되어 있고, 총 65개의 소챕터에 69개의 건축물을 다루고 있다. 사진은 한장도 실려 있지 않다. 대신 420여컷의 일러스트 그림이 실려 있다. 디테일이 풍부한 일러스트는 건물의 외관과 세부, 단면과 구조 등을 다채롭게 실어 건축의 특징과 관련 용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만약 고시이 다카시의 그림이 없었다면 이 책은 그 매력을 크게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림은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의 시대 풍경과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 형태로도 제시되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서양 역사상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대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꾸며진 대중 교양서로, 일본의 문화적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건축의 대표적 양식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의 특징,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의 비교,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차이 등을 글과 그림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구별은 가장 간단한 것이었다.



책을 통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오렌지색 지붕과 플라차 거리에 담긴 사연도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게 되는 가우디의 걸작 카사 바트요는 카달루냐판 아르누보였고, 크라이슬러 빌딩으로 대표되는 뉴욕의 마천루들은 전세계에 확산된 최초의 건축 양식인 아르데코 스타일이었다. 파리의 루브르에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진 사연도 알 수 있었는데, 이로써 첫번째 챕터와 마지막 챕터가 모두 피라미드가 되었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와 건축물들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유럽 여행이라곤 달랑 한 나라 밖에 간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 건물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오더와 아치를 결합한 장식 오더의 완성을 보여주었고, 판테온(2세기)의 초대형 돔이 가능했던 것은 로만 콘크리트와 아치 구조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파리 한복판에도 판테온이 있었고(18세기 생트주느비에브 교회), 베를린의 알테스 무제움 박물관에도 판테온이 있었다. 건축물에도 영화계처럼 '오마주'가 있는 것일까?



피렌체의 두오모(산타마리아 델피오레 성당)는 브루넬리스키의 이중 구조 돔 설계로 완성될 수 있었고,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 있는 팔라초 델세나토레에서 미켈란젤로가 구사한 자이언트 오더와 수직적 분할은 후대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다면 다음 여행지는 역시 영국과 프랑스라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고딕과 바로크 건축의 성지를 두 눈에 담고 직접 밟아보고 싶다. 19세기에 재건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고딕 리바이벌이었고, 베르사유 궁전의 주역 루이 르보가 설계한 보르비콩트 성의 정원은 가슴이 웅장해질 것 같다.


책은 부록으로 서양 연표와 서양 건축 지도를 실었다. 연표 옆에는 건축사의 흐름을 요약해 실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해하도록 배려했고, 서양 건축 지도에는 본문에서 다룬 건축물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번호를 붙여 표시했다. 다만 아쉬운 건 색인이 없다는 것이다. 책이 글과 그림으로 건축물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을 잘 이해시켜 주고 있으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몇 챕터 뒤를 읽을 때는(혹은 하루이틀 뒤에 읽을 때는) 헷갈리거나 생각나지 않는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앞의 내용들을 뒤적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에게, 여행을 통해 접했던 기념비적 건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욱 반갑고 재미있는 책이다. 하나의 소챕터당 4~5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건축물과 관련된 사연과 인물의 이야기를 좀더 보강해서 6페이지 정도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히 평한다면 이 책을 읽고 건축에 대해 새롭게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분명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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